▲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쏘아 올린 이른바 ‘시럽급여’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실직으로부터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받아야 할 노동자를 ‘놀고먹는 백수들’로 둔갑시켜 버린 고용보험 ‘제도개선’ 논의가 노리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현재보다 더 적은 실업급여를 더 받기 어렵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가 꾸린 제도개선 전문가TF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TF에 참여했던 전문가·공무원 중 실제로 실업급여를 받아 본 경험자는 필자가 유일했다. 필자는 대학의 비정규 교수, 즉 ‘시간강사’가 실업을 반복 경험하면서도 실제 실업급여를 받기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했다. 당시 대학 강사는 대체로 학기당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데 계약서의 기간은 대학마다 제각각 정해지곤 했다. 예를 들면 A대학에서 1학기에 강의 하나를 맡는다면 계약서에는 3월1일부터 6월20일로 계약기간이 적혀 있다. 같은 학기에 B대학에서도 강의를 하나 더 맡았는데 B대학의 계약서에는 3월1일부터 8월31일까지로 계약기간이 기재돼 있다. 하지만 계약기간은 각 대학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일 뿐이다. 어느 대학도 강사료는 강의를 하는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만 지급할 뿐 방학기간인 7·8월에는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강사를 4~6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것은 대학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인데, 학기 말마다 실직자가 되는 강사가 막상 실업급여를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위의 예를 보자면 A·B 대학에서 모두 7·8월에 임금을 받지 못했어도 B대학과의 계약기간이 8월까지로 돼 있기 때문에 출강하는 모든 대학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8월 말까지는 실업급여를 신청도 할 수 없다. 즉, 사실상 실직이라도 고용보험법으로는 실업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출강한 대학들의 계약기간이 어찌어찌 일치해서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실직한 날부터 직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고용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쉽게 말해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이전 최소 6개월치 이상 고용보험료가 납부돼 있어야 한다. 앞의 예로 설명하자면, 올해 1학기 강의가 끝난 후 운 좋게 실업급여를 받았다 하더라도 2학기 말 방학에는 실업급여를 또 신청할 수가 없다. 앞서 실업급여를 받은 후 180일치의 보험료 납부 실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강사는 고용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

대학 강사 예를 든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놀고먹는 백수들’로 취급되는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오래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전문직’이라는 강사들이 방학마다 실직자가 되는 이유는 해외여행 하고 명품 쇼핑하며 놀고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대학들이 강사를 4~6개월 단기계약으로만 쓰다가 버리기 때문이다. 강사들이 여러 대학에 출강하는 것은, 아니 출강하려 애쓰는 이유는 멀티잡을 통해 고소득을 노려서가 아니다. 강의시간수에 시간당 강사료만 곱해서 지급받는 현재의 강사료로는 월 최저임금만큼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간제·단기간 계약으로 소득과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보호받기 가장 어려운 시스템이 현형 고용보험이다. 플랫폼노동 확산으로 이런 일자리 쪼깨기, 고용파괴는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고용파괴의 비용, 취업과 실업의 반복, 노동빈곤의 위험은 고스란히 이들 불안정 노동자의 어깨에 전가되고 있다.

고용보험의 약화, 도덕적 해이를 진정으로 막기 위해서는 이런 불안정노동 남용을 규제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저임금·불안정노동을 남용하는 비용을 노동자와 사회가 떠안는 현재의 악순환을 멈출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한 노동시장 구조에서 실직한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소득을 상실한 기간 동안 버틸 수 있도록 실업급여가 더 확충돼야만 한다. 현재 정부의 실업급여 개편안은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