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시민사회란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가진 시민들의 ‘사회집단’ ‘조직된 결사체’들이 자신의 이익과 열정을 증진하기 위해 ‘갈등’하고 문제를 논의하는 공간을 말한다. 즉 공적 권력이 행사되는 국가와 가족·기업 같은 사적 생산단위와 구별되는 중간지대를 일컫는 것이지, 원자화된 ‘개인’들의 ‘중립지대’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를 이야기할 때 ‘이익’ ‘조직’ 혹은 ‘집단’ 이들 간 ‘갈등’의 의미가 취약해졌다. 1987년 이전엔 ‘시민사회’를 권위주의적 ‘국가’와 대립하는 민주적·민중적 운동의 장으로서 이해했다. 민주화 이후 지식인·전문가 중심의 시민운동과 노동자·농민 등 생산자집단의 운동이 분화되며 시민사회를 노동조합 같은 생산조직을 제외한 시민운동의 집합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다. 더욱이 운동세력 중 일부가 정부에 참여하며 ‘자율’적 시민사회의 의미가 퇴색한 측면도 있다. 그 역작용일까, 2000년대 이후 촛불운동의 담론들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진보의 가치를 옹호하는 이조차 시민의 의사와 참여,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원자화된 개인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개인이 어떻게 거대한 행정권력기구와 재벌 등 막강한 기업집단 사이에서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막연한 ‘관념적 이상’만 강조한다. 노동자와 약자일수록 숫자의 힘으로 조직하고 집단이 돼야 강자를 견제할 수 있고 자율성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지난 현대민주주의 역사가 증명해 왔는데 말이다.

집단과 조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흐름이 커지니 우리 정치도 사회세력의 다양한 이익추구도 이들 간 첨예한 갈등도 거북해한다. 분쟁이 생기면 차이를 조정하는 정치가 아니라, 급조한 ‘중립안’을 만들어 오히려 현장에서 수용성이 떨어지는 내용을 강요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 사회집단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이들 정상조직이 공적 기능을 아직 잘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겠다.

그렇다고 정당들이 전국조직과 부분별 위원회를 활용해 사회 부분이익을 수렴하고,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충실한 내용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선거 때마다 새롭게 꾸려지는 캠프의 공약이나 정책은 전문가 개인들의 아이디어 모음집에 가깝다. 현장과 괴리되기 쉽고 구체성도 실행방안도 빈약하다.

집권세력이 되면 방법이 있긴 하다. 엉성한 정책에 살을 붙이고 내용을 메꿔 주는 행정부 관료가 있어서다. 물론 정당이나 국회에도 유능한 실무진이나 숨은 고수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입법부는 행정부에 내용과 자료를 지원받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그럼에도 입법부와 행정부는 실력에서 차이가 있다. 바로 실제 정책 대상이 되는 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조직’과 ‘집단’의 힘의 격차가 너무 크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중 실제로 노동법안을 다루는 법안소위 위원은 8명이다. 그리고 이들 중 상임위를 옮기지 않고 노동정책을 계속 다루는 전문성을 갖춘 국회의원이나 보좌진, 당 노동정책 전문위원 등은 정당별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다. 입법지원기관도 있지만 지금의 인력으로는 의원들의 경쟁적 입법발의와 질의회신만으로 보통 벅차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2022년 기준 인원만 9천130명이고, 지방노동청과 지청을 비롯해 전국조직이니 노동자 개개인의 민원부터 현장 정보를 파악하기가 쉽다. 싫든 좋든 각종 위원회나 회의체에서 노사 단체와 가장 많이 접촉하는 이들도 바로 부처다. 정책을 집행하려면 현장 정보가 중요하니 역설적으로 시민과 가장 마주하는 정치권보다 오히려 행정부 공무원이 단체와 집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치가 시민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시작점은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조직과 집단에 대한 존중이다. 당의 전국조직과 위원회를 활용해 행정기관이 파악할 수 없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현장 내용을 집합해 정책화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갖추고, 안정적 전문인력의 규모를 지금보다 훨씬 키우는 과제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구체적 부문이익이 집합된 공익(公益)이 아니라 공익(空益)에 가까운 막연한 지향과 설익은 정책을 나열하며 국가 차원의 목표나 지표를 설정하고, 이를 급진적으로 추진하려는 풍토가 얼마나 위험하고 오히려 시민사회를 파괴할 수 있는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haeyoonj@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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