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에게 여름휴가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가족센터 이주여성들은 11%만 호봉제를 적용받는 탓에 십여 년을 일해도 늘 최저임금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지난 몇 년을 보냈더니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와 항공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많이 받아봤자 주말을 포함해 3일 휴가인데 고향에는 못 가죠.”(섹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
“제조업이든, 농업이든 그나마 휴가를 준다면 무급이고 비행시간이 긴 서남아시아는 특히 다녀오기 어려워요.”(우다야 라이 노조 위원장)
짧게 주어지는 휴가 동안에는 고향을 방문하는 대신 정주민처럼 강원도 같은 휴가지를 찾기도 한다. 어쨌거나 휴가는 달콤하다. 멀리 가지 못해도 맛있는 음식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음식은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는 힘이 있다. 고향이 그리울 때 고향의 음식을 찾는 건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냉면, 삼계탕, 화채, 콩국수 대신 이주민이 추천하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여름 보양식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 맛있다면 그저 좋은 우리는 음식 앞에서 만큼은 평등하다.

몽골에서 온 온드라씨의 허르헉

염소나 양고기를 채소와 함께 끓여 만드는 몽골 음식 허르헉. <셔터스톡>
염소나 양고기를 채소와 함께 끓여 만드는 몽골 음식 허르헉. <셔터스톡>

“저는 2004년에 몽골에서 온 결혼이민자 온드라(42)입니다. 지금은 수도권의 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물가도 많이 올라 돈이 마치 종잇장 같네요. 고향에 가고 싶은데 코로나19 때문에 3년 동안 못 갔고, 코로나19가 끝나니 아이가 셋이라 항공료가 만만치 않게 들다 보니 쉽지 않아요. 친정 식구들 생각하면 빈손으로 갈 수 없고, 아이 아빠 생각하면 빈손으로 올 수 없으니까요.

여름이 되면 허르헉(Khorkhog)이 생각나요. 요새 한국사람들도 몽골에 여행을 많이 가서 허르헉을 먹는 모양이더라고요. 말젖으로 만든 술(Kumis)도 많이 마셔요.

대학원 여름방학 때 동기, 선배 20명을 제가 인솔해 몽골 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큰 버스를 빌려 사막과 초원, 별을 보고 양을 잡아 허르헉을 먹었던 기억이 나요. 게르 안에서 잠들기도 했고요. 그때 함께 여행 간 친구들이 너무 좋았다고 또 가자고 하는데 인솔했던 게 너무 힘들어서 피하고 있어요(웃음).

허르헉은 양이나 염소를 잡아 당근, 감자, 양파 같은 채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는 요리예요. 돌멩이를 달궈서 고기 위에 돌멩이를 놓고 그 열로 익혀 먹는 요리죠. 손님들에게 대접하기도 하고, 한국의 여름 삼계탕 같은 보양식입니다.”

네팔에서 온 아난다씨의 요구르트

집에서 직접만든 요구르트.<셔터스톡>
집에서 직접만든 요구르트.<셔터스톡>

“저는 2017년에 고용허가제 비자로 한국에 온 아난다(43)입니다. 지금은 경기도 여주 근처에 살고 있어요. 한국에 오기 전에 인도에서 일도 하고, 네팔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다가 조금 늦게 오게 됐어요.

네팔도 여름엔 정말 더워요. 그래도 히말라야 가까운 지역은 별로 안 덥고, 인도 근처는 매우 덥죠. 한국에 오기 전에도 한국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여름에 삼계탕을 먹고 냉면도 먹는다는 걸 알았어요. 네팔에는 특별히 여름에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전통은 없지만 너무 더우니까 과일이나 요구르트를 주로 먹어요. 레몬이나 오렌지로 만든 음료수나 요구르트를 먹죠. 요구르트에 찬물과 얼음, 설탕을 넣어 갈아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저는 예전에 인도에서 요리사로 일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요구르트를 만들어 팔 정도로 요구르트라면 자신이 있어요. 한국에 와서도 마트에서 요구르트를 사 먹지 않아요. 신선하지 않으니까요. 대신 우유를 사다가 냄비에 끓여서 요구르트를 직접 만들어 먹습니다. 요구르트가 쉬운 음식 같아도 온도 조절을 잘해야 해서 생각보다 까다로워요. 밤에 요구르트를 만들고 자면 아침엔 신선한 요구르트를 먹을 수 있죠.

최근 두 달 전에 경기 여주에서 열린 축제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요구르트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 줬어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와서 먹어보곤 모두 맛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요구르트를 만들었죠.”

미얀마에서 온 킨메이타씨의 타마린드

타마린드.<셔터스톡>
타마린드.<셔터스톡>

“저는 미얀마에서 온 킨메이타(58)입니다. 현재 경기 수원이주민센터 대표를 맡고 있어요. 처음엔 한국에 공부하러 왔는데, 1997년 결혼하면서 정착하게 됐죠.

미얀마는 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생겨서 여름에도 북쪽은 조금 춥거나 시원해요. 대신 중부지방은 아주아주 더운 열대 날씨죠. 그래서 지역마다 여름에 먹는 것도 조금씩 달라요.

중부지방은 새콤한 열매 같은 것을 주로 먹어요. 몸에 좋은 대추나 타마린드 열매를 물에 담가 먹기도 해요. 타마린드는 태국에서도 유명한 콩같이 생긴 열매인데 몸에 아주 좋아요. 더운 한낮에 먹기 위해선 아침부터 항아리 안에 타마린드와 물을 함께 넣어두죠. 나중에 타마린드에서 끈적거리는 액체 같은 게 나와요. 그러면 알맹이만 쏙 빼먹는 거죠. 소금도 조금 넣고요. 변비가 심할 때 약으로 먹기도 하고, 몸의 열을 식혀주기 위해 먹기도 해요. 사탕야자 열매도 많이 먹어요.

남부지방은 자연에서 나온 열매, 과일을 주로 먹어요. 망고, 두리안, 망고스틴, 람부탄 같은 계절과일을 먹으면 한국처럼 따로 보양식을 챙겨 먹지 않아도 힘이 난다고 하네요.

한국에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미얀마도 여름에 따뜻한 녹차를 많이 마셔요. 북부, 남부 가릴 것 없이 김이 폴폴 나는 녹차를 마시면 몸에서 땀도 나고 좋아요.

사실 한국에서는 과일을 바로 따서 시장에 온 게 아니라 저장한 걸 팔고, 가격도 비싸서 고향에서처럼 먹기는 어려워요. 또 사탕야자 같은 것은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우니 흑설탕을 물에 타서 대신 먹기도 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라셰드씨의 모글라이

방글라데시 간식 모글라이.<한국교육방송공사>
방글라데시 간식 모글라이.<한국교육방송공사>

“방글라데시는 항상 더운 나라라 딱히 여름이라고 특별히 먹는 음식은 없어요. 삼계탕처럼요. 물론 ‘날이 엄청 더우니까 시원한 냉면을 먹자’ 같은 문화도 없고요. 시원한 수박을 자주 먹긴 해요."

방글라데시는 쌀이 주식이니까 쌀밥을 많이 먹는다고 라셰드(31)씨가 말했다.

"더워도, 추워도 밥은 꼭 하루 세 번 챙겨 먹죠. 쌀밥과 소나 닭고기, 시금치, 호박으로 만든 반찬을 같이 먹어요. 어릴 적 배가 고프다고 하면 어머니가 간식을 만들어 주시곤 했는데요. 한국에 김치전 같은 게 있어요. 밀가루에 양파, 고추, 달걀을 넣고 프라이팬에 부쳐 먹는 거예요.

저녁에 먹는 모글라이도 정말 맛있어요. 방글라데시 길거리 음식, 식당에서도 파는 모글라이에도 양파랑 밀가루가 들어가요. 모글라이는 밀가루에 고기랑 달걀, 양파, 고추 같은 것을 넣고 튀겨 먹는 음식입니다.

방글라데시 사람은 밥을 꼭 먹어야 해요. 한국 사람들은 저녁에 ‘치킨 한 마리 먹었어’ 하면 ‘밥을 먹었다’는 의미지만 방글라데시 사람은 쌀밥을 꼭 먹어야 저녁을 먹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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