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불혹을 넘긴 동생이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직종으로 옮겼을 때 나는 걱정했다. 동생은 젊어서부터 식품유통업을 20년 넘게 했지만, 본사와 거래처 사이에 끼여 오래 고생했다. 원인은 대기업 횡포였다.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선 GM이나 인텔 같은 자동차회사·전자회사가 식품유통에 뛰어들면 미쳤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CJ나 LG, 현대 같은 대기업이 식품유통을 다 장악했다. 한국은 학교 급식에 납품할 부식을 자동차나 냉장고 만드는 회사가 독점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본사의 물량 떠넘기기와 거래처의 외상깔기에 시달리던 동생은 어느 날 일식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일식집과 호텔 식당 주방에 들어간 지 10년쯤 됐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옮겨 다녔다. 어머니 제사 때나 얼굴 보던 동생이 지난달 갑자기 전화해 퇴직금과 실업급여 받는 방법을 물었다.

동생은 6월 말이면 부산 광안리에 있는 호텔 일식당에서 일한 지 만 1년 계약기간을 채우는데 최근 호텔이 영업 부진을 이유로 일식당을 중식당으로 개조한단다. 사용자가 업종 변경을 이유로 권고사직을 요구하면 당연히 실업급여를 받는다. 그런데 호텔은 동생에게 중식당으로 바뀌어도 일해 보라고 했단다. 동생은 일식과 중식은 요리법이 확연히 달라 일하기 어렵다고 했다. 동생은 고용센터에 가서 업종 변경시 퇴사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고용센터는 업종 변경만으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고, 회사가 업종 변경에 따른 권고사직을 요구했을 때에만 실업급여를 받는다고 했단다. 호텔은 이를 교묘히 악용해 일을 못할 게 뻔한데도 중식당에서도 일해 보라고 권했다.

문재인 정부였으면 실업급여 받는 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정권에 따라 고용노동부 입장도 널뛴다. 어떤 게 노동부 역할인지 궁금하다. 나는 힘들더라도 호텔에 계약기간 1년 만료에 따른 퇴직금을 요구하라고 했다. 계약기간이 종료돼 그만두면 실업급여도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도 알려줬다.

동생은 고용센터를 한 번 더 찾아가 어렵사리 퇴직금과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얻었다. 보수언론은 올 들어 노동자가 고용과 실직 사이를 오가며 실업급여(고용보험기금)를 반복해서 챙겨 간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매우 특별한 사례를 일반화시켜 마치 노동자들이 공적기금인 실업급여를 탕진하고 있다는 투다. 이런 기사에는 동생처럼 실업을 앞둔 노동자의 불안 같은 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매일경제는 지난 12일 1면에 이들 노동자를 가리켜 ‘얌체 퇴사족 차단 … 실업급여 손 본다’는 기사를 썼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를 거쳐 아무리 적게 줘도 ‘최저임금의 80%’는 줘야 하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폐지하고 현재 180일인 실업급여 수급요건(피보험 단위기간)을 1년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윤 정부는 이를 ‘고용보험기금 건전화’로 표현했다. 이들도 노동자의 불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노동부는 소득보다 실업급여가 많은 수급자가 전체의 27.8%라고 했는데, 이를 뒤집으면 실업급여를 받는 노동자 70% 이상이 원래 받던 소득보다 적은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소리다.

실업급여로 주는 고용보험기금은 노사가 월급에서 갹출해 적립한다. 이 기금에 한 푼도 안 낸 정부와 정치권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당사자는 가만 있는데 객들이 설치는 꼴이다. 언론은 고용보험기금을 얼마나 안다고 ‘얌체 퇴사족’ 같은 신조어까지 만들어 진실을 호도하는가. 일식 요리사에게 중국음식을 만들라는 흰소리나 하는 언론 때문에 나라가 망할 판이다.

언론은 달콤한 ‘시럽급여’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고용안전망의 최후 보루인 실업급여를 희화화한다. 국민일보는 당정협의 내용을 매경보다 하루 늦은 7월13일 2면에 보도하면서 “‘일해서 번 돈보다 많아’ … 달콤한 ‘시럽급여’ 손본다”고 제목을 달았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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