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가족을 동원해 지입차주 명의 회사를 만들어 ‘쪼개기’로 운영한 운송회사에서 해고된 화물기사가 3년여 만에 항소심에서 극적으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화물업계에서 성행하는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의 편법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서류상 다른 고용주, 운송사 ‘반장’이 지시

1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김대웅 부장판사)는 화물운송업체 B사에서 해고된 기사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지난 13일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문제의 발단은 A씨가 여러 명의 사업자로 쪼개진 운송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A씨는 B사의 ‘벌크 트레일러 모집 공고’를 보고 담당자로 적힌 B사 소속 ‘작업반장’에게 연락했다. 작업반장과 면접한 뒤 그는 2018년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밀가루 운송 업무를 맡았다. 잠시 일을 그만뒀던 A씨는 2020년 3월 다시 ‘기사반장’과의 면접을 거쳐 같은해 9월까지 트레일러를 몰았다. 근로계약서는 없었다.

그런데 B사가 ‘지입차주’ 명의로 개인운송업자를 만든 정황이 드러났다. B사는 ‘상시근로자 4명’으로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B사가 위탁한 C사가 등장했다. B사 대표의 아버지·누나·아내 명의로 돼 있었다. A씨의 고용보험상 소속은 B사가 위탁한 운송업체 C사였다. 면접관인 ‘반장’들 역시 명목상 C사 소속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로 다른 명의로 분산됐던 회사의 주소는 모두 같았다. 같은 사업장이지만 기사들의 서류상 고용주는 각각 달랐던 셈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B사 소속 작업반장을 통해 물량을 지시받아 일했다. A씨의 기본급도 매달 B사 대표 아내 명의의 계좌에서 입금됐다. A씨는 식대와 각종 수당도 ‘작업반장’으로부터 지급받았다. 작업반장은 B사 대표에게서 식대와 수당을 받은 후 기사들에게 각각 근무내용에 다른 수당을 분배했다. 나아가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작업반장이 B사에 전달해 차량 수리비를 지급했다.

‘실질적 사용자’ 노동위·1심 모두 외면

그러던 와중 A씨는 B사 관리자 D씨에게 직장내 괴롭힘을 호소했다. 작업반장이 퇴사를 종용하고 폭언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B사는 되레 2020년 9월 구두로 해고를 통지했다. 그러자 A씨는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은 B사가 아닌 C사가 사용자라고 알려졌다. 바로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그러나 부산지노위는 근로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고, 중노위 판단도 같았다.

A씨는 소송을 냈다. B사가 회사를 쪼개 설립·운영해 5명 미만 사업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상호 변경 전 B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했고, 직접 업무지시를 하는 반장과 관리자는 B사 소속”이라며 “실질적 근로관계를 맺은 주체는 B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중노위 판단을 유지했다. 운송중개업이라는 사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A씨가 C사에서 고용보험에 가입했고, B사와 근로계약을 맺거나 임금을 받은 내역이 없다는 점이 이유가 됐다. ‘형식적 계약관계’에 따른 셈이다.

“명의만 다른 지입차주, 실질 지휘는 운송사”

그런데 2심에서 반전을 맞았다. A씨가 포기하지 않고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이어간 끝에 해고 3년여 만에 승소했다. 재판부는 “A씨는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B사 대표 아내 명의 C사)에 고용된 것으로 돼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B사와 근로관계를 형성했다”고 판시했다. 지입차주 형태의 회사가 주소는 동일한데 명의만 다르게 돼 있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채용과정에서 관리자 지시로 면접을 봤다는 ‘반장’들의 진술도 뒷받침했다.

무엇보다 B사의 지휘·감독이 강했다고 봤다. 작업반장을 지정하고 관리자를 통해 운송 물량 등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기사들은 (대표 가족 명의의 회사 등) 각자 이용하는 차량 소유자 명의의 사업장에 소속돼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자격을 취득했으나 모두 B사의 지시·감독에 따랐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A씨가 B사를 상대로 노동청에 진정하면서 작업반장이 같은 소속이라고 말한 점 등 역시 A씨가 B사를 사용자로 인식했던 것으로 봤다.

A씨는 지노위·중노위에 이어 1심까지 모두 패소했지만, 항소심 끝에 부당해고라고 인정받았다. A씨측은 ‘5명 미만 쪼개기’ 행태에 경종을 울릴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A씨를 대리한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소송에서 강조했던 ‘가짜 사장들’과 B사는 특수관계에 있고, B사가 실질적인 사용자 역할을 했다는 점이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며 ”노동사건에서 ‘진짜 사장’ 문제는 더욱 비중이 커질 것이다. 특히 화물업체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어 의미 있는 선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