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회사가 공장에 일방적으로 설치한 CCTV를 노동자들이 가렸다면 처벌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CCTV가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이를 가렸더라도 기본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정당행위’라고 판단했다.

공장 안팎 작업현장과 출퇴근 촬영
1·2심 업무방해 인정, 벌금 70만원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 간부 A씨 등 3명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대법원 심리만 5년5개월이 걸렸다.

사건은 타타대우가 자재 도난과 화재를 이유로 2015년 8월께 공장 안팎에 CCTV 51대를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지회는 노동자 동의 없이 설치했다며 공사 중지를 요구했으나 두 달여 만에 설치가 완료됐다. 32대는 공장부지 외곽 울타리에, 나머지 19대는 주요 시설물과 출입구에 설치됐다.

특히 CCTV 16대는 작업 현장을 비췄고, 출입구에 설치된 3대도 직원 출퇴근 장면을 촬영했다. 노사가 3~4회에 걸쳐 CCTV 운영방안에 대해 조율했으나 합의되지 않자 사측은 같은해 11월26일부터 시험가동을 하겠다고 공지했다. 이에 A씨 등은 카메라 51대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씌웠다.

그런데도 회사가 시험가동을 강행하자 지회는 직원 1천여명의 서명이 담긴 항의문을 보내고 12월 재차 카메라를 비닐봉지로 가렸다. 하지만 CCTV가 본격 가동되자 A씨 등은 작업 모습이 찍히는 카메라 12대에 다시 비닐봉지를 씌웠다.

지회는 △설치 목적 외 영상정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합의서 작성 △일부 카메라의 장소 변경 △작업 현장 찍는 16대는 야간에만 작동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16대의 주간 작동을 사측이 수용하지 않자 간부들은 다시 행동에 나섰다.

1·2심은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회사가 동의 없이 CCTV를 설치해 개인정보 보호법과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위반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CCTV 설치 목적에 시설물 보안이나 화재 감시 등이 포함돼 정당하다는 취지다. 카메라를 비닐봉지로 가린 행위도 정당행위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법원 “노조 행위, 기본권 침해 방어 목적”
“감시 설비 해당, 노동자 참여했어야”

대법원은 A씨 등의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한다면서도 ‘정당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먼저 CCTV 설치가 개인정보 보호법이 정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노동자 다수의 작업 현장과 출퇴근 장면을 촬영해 정보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중대한 제한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CCTV가 근로자참여법 규정상 ‘근로자 감시 설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 등 행위가 수단과 목적·방법에 있어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위법한 CCTV 설치에 따른 기본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일 뿐, 시설물 보호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카메라 자체를 훼손하지 않고 비닐봉지를 씌워 임시로 촬영을 방해한 것에 불과하고, 회사와 협의를 계속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회사 책임도 크다고 봤다. 대법원은 직원 대부분의 반대에도 CCTV 정식 가동을 강행해 개인정보가 위법하게 수집되는 상황이 현실화했다고 밝혔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침해되면 사후에 원상회복이 쉽지 않은 부분도 정당행위의 근거가 됐다. A씨 등을 변호한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법률에 사업장 내 CCTV 운영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설치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대법원이 정보주체 동의 없는 개인정보 수집은 엄격히 해석해 허용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지극히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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