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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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병의 최초 진단일이 아닌 ‘재요양 당시 진단일’을 기초로 평균임금을 산정해 유족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휴업급여와 장해급여와 달리 유족급여 관련해서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발생한 법률 공백이 해소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3일 진폐로 숨진 광산노동자 A씨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평균임금 정정 불승인 및 보험급여 차액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4년6개월 만이다.

‘평균임금 산정 시점’ 쟁점, 유족 “특례임금 적용”

사건의 배경은 무려 37년 전의 일이다. 1983년 10월~1986년 3월 B광업소에서 일한 A씨는 1986년 5월 진폐증을 최초로 진단받고 장해등급 11급을 판정받았다. 하지만 다시 생계에 나서 1991년 7월부터는 1년간 C광업소에서 재직했다. 건강이 악화하자 4년 뒤인 1995년 진폐 재요양을 신청해 진폐병형(3형)과 활동성 폐결핵으로 상병보상연금을 받으며 재차 요양에 들어갔다.

장기간 투병으로 결국 2015년 1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자 A씨 아내는 요양 중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아 유족연금을 받았다. 공단은 ‘최초 진폐 진단일’ 기준으로 A씨의 평균임금을 산정해 유족급여를 지급했다. 평균임금은 산재보상 금액과 직결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은 보험급여 산정시 평균임금을 산정할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년이 지난 이후에는 매년 전체 노동자의 임금 평균액 증감률에 따라 평균임금을 증감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평균임금 산정 시점’이 논란이 됐다. 유족은 ‘최초 진단일’이 아닌 ‘재요양 진단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공단에 평균임금 정정을 청구했다. 유족에게 유리한 ‘특례임금’을 증감한 금액을 토대로 유족급여를 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례임금’은 진폐 환자에게 적용되는 ‘평균임금 산정 특례규정’에 따라 산정한 금액이다.

그러나 공단은 ‘재요양 진단일’로 재산정된 평균임금은 휴업급여와 상병보상연금에만 적용될 뿐 유족급여 산정에서는 제외된다며 불승인했다. 유족급여는 최초 진단시 평균임금을 증감한 금액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자 유족은 “유족급여 산정에 적용할 평균임금은 재요양 진단 당시 망인의 평균임금을 증감한 금액과 특례임금을 증감한 금액 중 원고에게 유리한 특례임금을 증감한 금액”이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 “재요양 진단일, 평균임금 산정 기준”

문제는 진폐 유족위로금에 관한 명확한 법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유족위로금에 적용할 ‘평균임금 산정 사유 발생일’에 관한 별도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1심은 산재보험에 따른 유족보상일시금의 산정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봤다. 산재보험법은 유족보상일시금의 60%를 유족위로금으로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를 바탕으로 유족급여는 특례임금에 평균임금 증감을 거친 금액을 기초로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먼저 ‘재요양 진단일’을 평균임금 산정 기준으로 판단했다. A씨가 최초 진폐 진단 이후 진폐증이 재발 또는 악화했기 때문에 ‘질병이 발생됐다고 확정된 날’은 재요양 진단을 받은 1995년 7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단은 “A씨의 재요양승인 상병은 처음 일한 광업소에서의 분진 작업과 관련성이 있다”며 최초 진단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망인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질병은 최초로 진단받은 진폐가 아니라 재요양 진단을 받은 ‘재발 또는 악화된 진폐’로, 업무 내용과 근무기간 등을 볼 때 이후 광업소에서의 근로 역시 재요양 진단받은 진폐의 재발 또는 악화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A씨가 두 번째 광업소에서 일하면서 생긴 진폐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최초 진단일’로 산정 관행에 ‘제동’

‘특례임금’ 적용도 퇴직일 당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례임금은 진폐노동자의 작업능률 저하 등으로 낮아진 평균임금을 보존해 주는 제도다. 산재보험법 36조6항이 이러한 취지로 시행됐다. 매월 노동통계조사 보고서를 기준으로 산정한 임금과 해당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비교해 높은 임금을 평균임금으로 정한다.

법원 판단도 입법 취지와 맥락을 같이 했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직업병에 걸렸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업무를 계속 수행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그런데도 임금액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하는 것은 유족의 보호에 적당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2심 판단도 같았다. 공단측은 최초 진단받은 진폐로 A씨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망인은 질병 치료가 종결돼 장해보상일시금을 수령한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고 나서 질병이 재발되거나 악화해 재요양 승인을 받은 것이므로, 사망 원인은 최초 요양승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요양은 진단이 비교적 쉽다며 ‘특례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공단측 주장도 배척했다. 재요양에 특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원심을 유지했다.

이번 판결은 ‘최초 진단일’을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산정해 온 공단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A씨 유족을 대리한 김찬영 변호사(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서울분사무소 대표)는 “휴업급여·장해급여·유족급여 등은 성격이나 지급요건·범위가 상이해 평균임금 산정 기준이 다를 수 있는데, 공단은 동일한 기준으로 보험급여의 평균임금을 산정했다”며 “유족급여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에 대해 공단의 실무 관행에 제동을 건 첫 판결이라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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