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혜진 변호사 (법무법인 더보상)

대상판결: 대법원 2023. 4. 13. 선고 2022두61113 판결

1. 사실관계

고인은 약 20년간 석면에 노출되는 직종에 종사한 후 석면폐증으로 진단받았다. 고인의 석면폐증은 업무 과정에서 노출된 석면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인정됐고, 근로복지공단은 석면폐증에 대해 장해등급 11급을 부여하고 장해보상연금을 지급했다. 이후 고인은 석면폐증으로 재요양을 받던 중 사망했고, 이는 석면폐증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인정됐다.

고인은 석면폐증 재요양 신청에 따라 특별진찰을 받았는데, 당시 고인은 ‘석면폐병형 2/2형, 심폐기능 F3(고도장해)’로 판정됐다. 고인의 사망 이후 고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특별진찰을 통해 고인의 생전 심폐기능이 F3으로 확인됐으므로 장해등급이 11급에서 1급으로 상향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장해등급 1급에 따른 미지급 보험급여(장해급여)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석면폐증은 장해등급을 부여하려면 증상 고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고인의 사망 경위를 보면 사망 전에 증상이 고정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부지급 처분을 했다.

이 사건 소송은 1심에서 원고가 승소했고, 피고가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이에 다시 피고가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됐다.

2. 이 사건의 쟁점

석면폐증은 석면에 노출된 자에게 발생하는데 석면섬유가 폐실질에 흡착돼 미만성 섬유화가 초래되는 질병이다. 석면에 노출되는 직장을 떠나도 계속 진행되고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어 완치가 불가능한 특징이 있다. 진폐증과 매우 유사하다. 공단은 ‘석면폐증 업무처리 지침’을 만들어 석면폐증의 장해 및 요양에 대한 내부 판정기준 및 절차 중 상당 부분에 대해 진폐의 경우를 준용하도록 했다.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를 때 업무로 인해 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한 자가 장해급여를 받으려면 그 부상 또는 질병의 증상이 고정돼야 한다. 산재보험법은 ‘장해’를 부상 또는 질병이 치유됐으나 정신적 또는 육체적 훼손으로 인해 노동능력이 상실되거나 감소된 상태로 정의한다. 장해의 전제가 되는 ‘치유’를 부상 또는 질병이 완치되거나 치료의 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그 증상이 고정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즉 산재보험법상 장해는 증상 고정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진폐증의 경우만큼은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진폐증의 경우 다른 일반 상병과 달리 그 병리학적 특성상(진폐증은 완치가 불가능하다. 분진이 발생하는 직장을 떠나더라도 그 진행이 계속되는 한편 그 진행 정도도 예측하기 어렵다) 치료를 받아 완치되거나 치료의 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폐증의 경우 증상이 고정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을 요구하지 않고 진단 당시 장해등급 기준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게 된 때에는 증상의 고정 없이도 장해등급에 따른 장해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공단이 부지급 처분을 한 근거는 고인의 상병이 진폐증이 아닌 석면폐증이라는 점이었다. 진폐증과 의학적으로 매우 유사하고 공단의 업무처리기준도 유사하다. 어쨌든 석면폐증은 진폐증과 다른 질병이므로 진폐증과 달리 사망 전 증상 고정이 되지 않은 고인의 경우 장해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 공단의 논리였다.

원고는 석면폐증도 진폐증과 마찬가지로 ‘증상의 고정’은 요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석면폐증은 실질적으로 진폐증과 동일한 상병이다. 공단도 이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이 사건 업무처리지침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의 진폐증 장해급여 지급 법리의 핵심은 진폐증이 증상 고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질병이라는 점인데 이는 석면폐증도 마찬가지이므로 진폐증의 장해급여 지급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3. 판결의 요지

가.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석면에 노출돼 발생한 석면폐증’의 경우 진폐와 별개로 산재보험법 시행령 34조3항 [별표 3] 3호 가목에 의해 산재보험법 37조1항 2호 가목에 따른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고 규정돼 있기는 하다.

나. 그러나 석면은 유연성과 특이한 광택이 있는 섬유상의 광물이다. 석면폐증은 석면섬유가 폐실질에 흡착돼 미만성 섬유화가 초래되는 질병으로서, 노출장소를 떠나도 계속 진행되고 특별한 치료방법은 없다. 합병증이 있을 경우 요양이 필요하는 등 그 병리학적 특성이 진폐와 유사하다.

다. 산재보험법 91조의2에는 진폐에 대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으로서 “근로자가 진폐에 걸릴 우려가 있는 작업으로서 암석, 금속이나 유리섬유 등을 취급하는 작업 등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분진작업에 종사해 진폐에 걸리면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산재보험법 및 관계 법령을 살펴보면 ‘광물’을 취급하는 작업을 하다가 진폐에 걸릴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진폐의 예방법 및 시행령에서는 ‘분진작업’의 범위에 ‘광물’을 취급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그런데 석면은 결국 ‘광물’ 자체 내지 ‘광물’에서 나오는 물질인바, 고인이 ‘광물’인 석면으로 인해 석면폐증이 발생했다면 진폐증과 거의 다르지 않다고 보인다.

라. 피고는 석면폐증의 세부적인 판정기준과 절차, 석면폐증의 중증도에 따른 요양 대상 및 장해급여 지급 기준 등에 관한 이 사건 업무처리지침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위 지침상 석면폐증의 병형 및 폐기능 기준은 진폐를 준용하도록 했다. 근로자가 석면폐증으로 요양급여 등을 신청하면 진폐의 진단에 관한 산재보험법 91조의6 규정에 따른 건강진단기관에 폐기능검사 등 특별진찰을 거치도록 한다. 석면폐증의 장해등급 기준 또한 산재보험법 시행령 53조1항 [별표 6]에 규정된 진폐 장해등급 기준과 유사하다.

마. 석면폐증도 진폐증과 마찬가지로 석면폐증이 장해등급기준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게 된 때에는 반드시 석면폐증에 대한 치료를 받아 석면폐증이 완치되거나 석면폐증에 대한 치료의 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 증상이 고정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해당 장해등급에 따른 장해급여를 지급하는 게 타당하다.

4. 판결의 의의

산재보험법에 따를 때 장해등급 부여 및 장해급여 지급에 있어 증상 고정이 요건인 것은 맞다. 그러나 모든 상병의 의학적 특성이 동일할 수는 없으므로, 진폐증의 경우에는 위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은 진폐증의 병리학적 특성을 고려해 이미 1999년에 진폐증 장해진단의 경우 증상 고정을 요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법리는 지난 수십 년간 모든 진폐증 재해자에게 적용했다. 그러나 석면폐증의 경우에는 해당 법리가 적용된 바 없다.

현재 석면폐증 업무처리지침이 정하는 석면폐증의 요양기준에 따르면, 석면폐증 병형이 1형 이상인 자 중에 폐기능 정도가 고도장해(F3)에 해당하는 자가 요양 대상에 해당한다. 폐기능 정도가 이에 미달하는 경우, 요양없이 바로 장해급여의 지급 대상이다. 장해급여 지급에 있어 ‘요양’ 또는 ‘치유’의 개념을 전제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일반 업무상 질병과 다르고 진폐증과 동일하다. 이처럼 공단은 석면폐증의 장해급여 지급 기준을 진폐증과 동일하게 본다.

2009년 5월 이전 업무처리지침은 병형과 무관하게 요양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었다. 석면폐증 재해자로서는 병형과 무관하게 요양 승인이 되는 것이 유리할 것이지만, 공단은 석면폐증을 진폐증과 동일하게 판단할 필요성이 있다며 병형을 고려하도록 업무처리지침을 변경했다. 업무처리지침을 재해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해서까지 석면폐증을 진폐증과 동일하게 처리하고자 한 공단의 태도와 장해급여 지급 기준만큼은 진폐증과 달리 보겠다는 공단의 태도는 서로 모순이다.

이처럼 석면폐증과 진폐증은 달리 볼 이유가 없는 것이 명백하다. 이 사건 판결은 석면폐증 근로자의 경우에도 진폐증에 준하는 보호가 필요하다. 석면폐증 증상이 고정되지 않았더라도 장해등급에 따른 급여를 즉시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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