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23. 6. 7. 선고 2020구단51146

1. 사실관계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

원고는 1976년생으로 2002년 3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LED제조업체인 A, B회사에서 제조공정 및 개발업무 담당자로 근무했다.

A회사는 2000년 7월경 설립된 회사로 2018년 기준 사원이 약 120명 수준인 중소기업으로 원고는 근무 당시 LED제조 중 패키지공정(다이본딩, 와이어본딩, 웰딩, 테스트, 클리닝 등), 개발업무(신제품 개발 및 테스트, 샘플 측정 및 데이터 분석), 팹 공정(메탈공정) 등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원고는 LED 제조공정에서 고온작업을 하면서 이때 발생하는 유기화합물에 수시로 노출됐고 작업 과정에서 수시로 오염된 장비와 벽면 등을 유기용제를 붓고 천으로 오염 물질을 닦아내는 작업을 했다. 원고는 팹에서 메탈공정 업무를 하면서 혼합 유기용제, 황산, 질산, 염산, 불산 등을 사용해 용액 속에 웨이퍼를 담갔다 빼는 작업을 하면서 유해물질에 노출됐다. 원고가 근무한 클린룸은 공정 간의 구분이 없어 전체적으로 공기를 재순환시키는 방식으로 다른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이 클린룸 내부로 유입되는 구조였다. 전체 공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근무했다는 의미다.

원고는 B회사에서 LED제조업무를 담당하면서 주로 에폭시와 형광체, 확산제를 배합한 몰딩재료를 오븐장비에 투입해 고온에 가열하는 고온경화작업을 반복했는데, 이 작업시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은 개발실에서 작업을 수행했다. B회사 역시 2002년경부터 LED제조사업을 시작해 2018년 기준 전체 사원이 130여명인 중소기업이다.

원고는 위 A, B회사에서 모두 작업을 할 때 방호복과 방독마사크 등 적절한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못했다. 원고가 두 사업장에서 근무할 때 근로시간과 근로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A회사 근무시 휴일없이 하루에 11~12시간 근무했고, 팹공정 근무시에는 2조2교대로 주로 야간조에 근무했으며, B회사 근무시 매일 12시간 이상 근무했으며, 각 회사에서 근무하는 기간 동안 휴무일은 1년에 5일 미만으로 과중한 업무를 수행했다.

원고는 B회사에서 퇴직 후인 2005년 1월경부터 2012년 1월경까지 다른 회사 영업직 사원으로 근무했는데, 2007년 6월경부터 손떨림, 다리 움직임 감소 등의 증상이 이어지다가 만 33세가 되던 2009년 5월 파킨슨병(이 사건 상병)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던 중 2017년 7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했다.

2. 사안의 쟁점

이 사건은 원고가 근무한 첨단산업에서 담당한 업무에서 이 사건 상병과 관련 있는 유해물질에 노출됐는지, 그러한 유해물질 노출과 이 사건 상병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다. 원고는 두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중추신경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TCE(트리클로로에틸렌)를 비롯한 다수의 유기용제와 유해화학물질, 극저주파 자기장 등에 복합적으로 노출된 점, △원고가 근무할 당시인 2002~2004년에는 두 회사와 같이 중소기업의 경우 유기용제와 유해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 작업환경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원고가 국소배기장치도 없는 환경에서 제대로 된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한 점 △1년에 휴무일이 5일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한 점 등을 볼 때 유기용제와 유해 화학물질 등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 수준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 원고는 이 사건 상병 또는 유사질환에 대한 병력이나 가족력이 없음에도 만 33세의 젊은 나이에 발병했다. 두 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등 유해인자에 노출된 것 외 이 사건 상병 발생의 원인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요양불승인 처분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고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 상병은 현대의학상 정확한 발병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유전적 요인 또는 유해인자로 인해 특발적으로 발병할 수 있는데 원고가 TCE를 사용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고 원고가 근무할 당시 이뤄진 사업장 작업환경측정 결과에서 유기용제 및 산류의 노출 수준이 허용 수치 이상으로 검출된 바 없으며, 근무기간이 2년 정도로 짧아 유해물질에 노출 수준이 낮아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요양불승인 처분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3. 판결의 요지

가. 원고가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노출된 점 인정

법원은 원고가 다양한 유해물질 노출(TCE 및 극저주파)에 대해 주장했으나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 노출 사실만을 인정했다. 원고 사건에 대한 역학조사 과정에서 두 회사 모두에서 확보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상 물질에만 국한해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과 각 회사 원고가 근무할 당시 작업환경측정결과에서 노출수준 이하로 측정되긴 했으나 혼합유기용제 등의 유해물질이 확인된 점, 작업환경측정이 일정 기간에 특정 장소를 1회 측정하기 때문에 실제 노출수준을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고, 장비를 현장에서 개방하고 점검할 때 노출 수준간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점, LED 제조공정에서 몰딩공정 및 열테스트공정에서 2차 생성물로서 벤젠 등의 유기화합물질이 발생할 수 있고, 금형세정제 등에서 아세톤 등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된 점, LED제조사업장에서 기존에 실시한 역학조사보고서에서 벤젠, 포름알데히드, 아세톤, 메탄올 등 유해물질이 측정된 사실, 원고가 근무한 사업장에서 국소배기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국소환기시설이 전혀 설치되지 않은 작업실에서 업무를 했던 점, 내부에서 발생된 유해물질이 내부에서 재순환되는 클린룸의 특성으로 여러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구조였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유해물질에 노출된 정도는 중하다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나. 원고의 LED 제조 업무와 파킨슨병 발병과의 상당인과관계 인정 근거

법원은 원고의 기존 작업환경의 특성과 이 사건 상병인 파킨슨병의 일반적인 특성과 직업적 원인에 관한 기존 연구결과, 진료기록감정의 및 자문의의 견해 등을 종합해 볼 때 노출수준이 상당하고 이 사건 발병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파킨슨병이 60세 전후에 가장 많이 발병하고 65세 이후 나이가 들수록 유병률이 증가하고,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 발병빈도가 2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유전적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는 파킨슨병 환자 5~10%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이 사건 상병의 원인 및 발병기전은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다양한 상호작용을 해 동시에 작용한다는 질병 특성을 고려할 때, 원고의 경우 2004년 12일 B회사 퇴직 후로부터 약 3년 뒤인 2007년 6월경부터 이 사건 상병 증상이 발생했고 점차 악화했다. 원고가 이 사건 상병을 진단받는 나이는 만 33세에 불과한데 유전자 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 ① 가족력과 신경계 기존 질환으로 치료받은 이력이 없는 점 ② 2013년 연구 결과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파킨슨병의 발병을 1.22배 높이며, 2015년 연구결과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노출된 집단이 노출되지 않은 집단보다 파킨슨병 발병 확률이 1.36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하고, 진료기록감정결과 및 원고 자문의 소견서 등에서 일부 연구에서 유기용제, 휘발성 유기화합물 노출이 이 사건 상병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는 의학적 견해를 제시한 점 등을 볼 때 유기용제 등에 노출이 이 사건 상병 발병 내지 촉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통계적·의학적 근거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점 ③이 사건 감정의는 원고가 유기용제에 노출됐고 유전적 검사 결과 관련 유전자가 확인되지 않은 점을 볼 때 작업 중 노출된 유기용제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학적 견해를 제시했고 원고측 자문의는 업무관련 소견서에서 원고가 담당한 고온작업 및 세척작업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고, 상대적으로 좁은 작업공간에서 다른 작업자가 사용한 유기용제에 노출된 점도 고려돼야 하고 보호장구없이 수행할 경우 유기용제에 피부 노출수준이 높은 것을 고려할 때 원고의 노출수준이 높을 가능성이 있는 점, 원고가 휴무일이 거의 없이 평균 1일 12시간 근무한 것은 실제 근무한 2년보다 2배 긴 5.8년으로 평가해야 하고, 원고가 근무했던 2002년 당시 전자산업 작업환경의 문제점이나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던 시기에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중소기업 사업장에서 더 열악했을 사정도 고려해야 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재까지 이 사건 상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원고는 유전적 요인 또는 업무와 무관한 환경적 요인으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원고가 두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다수의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직간접적·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돼 발생 내지 촉진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4. 판결의 의의

이 사건은 전자산업에서 종사한 노동자에게 발생한 파킨슨병이 업무상 질병이라고 판단한 네 번째 법원의 판결로서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의 노출이 이 사건 상병 발생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상세히 인정한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 파킨슨병 발병 원인에 대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나 현재까지 파킨슨병 발병과 관련해 이루어진 연구결과 및 원고가 근무한 LED 작업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 등을 법적·규범적 법리에 따라 추론한 것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이다. 기존에 전자산업에서 발생한 희귀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판단한 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에서 제시한 법리를 충실히 반영한 판결로 보인다.

또한 이 판결은 원고의 유해물질에의 노출 수준 판단시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전자산업에서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대한 유해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시대적 한계와 아울러 중소기업의 경우 작업환경의 안전보건관리 취약성에 주목한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판결이다. 무엇보다 원고가 근무한 중소기업 사업장의 경우 원고와 같은 작업자가 어떤 물질을 사용했는지 제대로 된 교육도 없었고, 유해화학물질에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 사업 초기 인력 부족으로 1년에 5일 정도밖에 쉬지 못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을 한 점 등을 노출 수준 파악시 감안한 점은 의미가 있다. 향후 피고 근로복지공단 차원에서 재해조사 및 판정과정에서도 규범적 관점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5. 결어

전자산업에서 발생한 파킨슨병에 대해 법원에서 네 번째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고 4건 모두 동일하게 유기용제 노출과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만큼 피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러한 법원 판단기준을 토대로 기존의 인정기준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원고는 14년 넘게 이 사건 상병으로 고통을 받아오다가 1심 판결을 통해 처음으로 업무상 질병임을 인정받았다. 원고가 요양신청 이후 5년 만에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자마자 공단은 1심 판결에 대해 앞서 3건과 달리 항소해 원고의 정신적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이 사건 파킨슨병이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는 이유에 대해 상세히 판단한 1심 판결에서 항소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피고에게 명확한 항소이유가 없다면, 원고가 하루빨리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항소를 취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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