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년에 약 5일 정도밖에 쉬지 못하며 단기간 유기용제에 집중적으로 노출돼 파킨슨병에 걸린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삼성·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노동자의 파킨슨병이 인정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해자는 유기용제 보호설비를 전혀 갖추지 않은 신생 회사에서 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30대 반도체 노동자, 3년여 만에 파킨슨병
3년여 일했지만, 주 5일 환산시 6년 근무 추정

1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김주완 판사) 중소기업에서 반도체 노동자로 일했던 A(39)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심 결론이 나오기까지 무려 3년6개월이 걸렸다.

A씨는 2002년 반도체 레이저 제조업체인 K사에 입사해 약 1년9개월간 패키지·팹(메탈) 공정과 개발 업무 등을 담당했다. 이후 LED 제조회사인 D사로 옮겨 2004년 12월까지 개발팀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2005년 다른 회사 영업직으로 이직한 뒤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A씨는 2007년께부터 손이 떨리고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자 2009년 5월 병원을 찾은 결과, ‘파킨슨병’ 진단이 나왔다.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불승인 처분이 내려졌다. 유해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 사용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다. 공단은 “만약 트리클로로에틸렌을 사용했더라도 패키지 공정업무에 약 6개월간 투입돼 노출수준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씨측은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며 2020년 1월 소송을 냈다.

실제 A씨가 일했던 2002~2004년에는 중소기업의 경우 유기용제 유해성에 대한 작업환경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국소배기장치가 없는 환경에서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했다. 게다가 주 7일 연속 근무하는 날도 많았다. A씨측은 “가족력이 없는데도 만 33세 나이에 파킨슨병이 발병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열악한 작업환경’을 인정하며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장시간 근무했다는 A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A씨는 “K사 근무시 거의 휴일 없이 하루 11~12시간 근무했고, 팹 공정에서는 2조2교대의 야간조 근무로 오후 9시부터 12시간 이상 일했다”고 진술했다. 김 판사는 “A씨의 근로시간은 1일 평균 약 11~12시간, 휴무일은 1년에 약 5일 이내에 불과했다”고 추정했다. 주 5일(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배가량 더 일해 실제로는 약 5.8년 동안 일했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 “중소기업 안전관리 전무, 환경 열악”
파킨슨병 산재 인정 판례 쌓이는데 공단은 계속 ‘불승인’

유기용제 노출도 심각한 것으로 추론했다. 김 판사는 “A씨는 사용이 확인된 황산·과산화수소뿐만 아니라 LED 제조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된 벤젠·포름알데히드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당시 유기용제 유해성에 관한 사업장과 근로자의 인식 수준이 낮았던 점 등을 보면 실제로 A씨의 노출 정도는 훨씬 중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작업환경을 지적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2002년께 전자산업 전반에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식이 전무해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A씨가 세척작업에서 매우 높은 수준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큰 점 △중소기업에서 근무해 대기업보다 작업환경이 더 열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소견으로 제시했다. 이를 근거로 김 판사는 “비록 의학적으로는 파킨슨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더라도 다수의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돼 발생 또는 촉진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결했다.

파킨슨병의 산재는 대체로 법원에서 인정되는 분위기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은 2021~2022년 1심에서 승소했다. A씨를 대리한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중소기업에서 작업환경 안전관리의 열악함을 법원이 충실히 살펴보고 인정했다”며 “공단은 전자산업의 파킨슨병을 불승인했는데 법원에서 거의 인정되고 있다. 공단은 법원의 인정기준을 반영해 판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