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수빈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호남사무소)

노동절이었던 이달 1일 자정이 가까워진 야심한 시각에 갑작스럽게 ‘금속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직장폐쇄를 단행한 일진하이솔루스 주식회사. 소식을 듣고 회사로 달려간 조합원들이 본 것은 ‘시설보호’를 빌미로 정문을 겹겹이 막고 있는 경찰들이었다. 전북지역 12년 만의 직장폐쇄였다.

일진하이솔루스는 수소탱크를 제조하는 회사로 해당 분야 세계 1위를 자랑한다. 대한민국의 주요 미래산업이라는 수소차 생산에서도 핵심 공정인 수소탱크 생산을 맡아 주식시장에서도 상승세다. 그런데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일하는 노동자들은 최저시급에 맞춰진 기본급을 받는다. 고용노동부 고시 과로 산재 기준상 가중치가 반영되는 2조2교대에 특근까지 더해 일진 자본이 노동자들의 안전에는 무심한 탓에 산재가 반복됐다. 산재 대처는 더욱 엉망이라 눈에 화학약품이 들어간 재해자가 한쪽 눈을 감고 직접 운전해서 병원에 갔단다. 기함할 소리를 덤덤하게 말하는 것이 현장이었다.

그래서 일진하이솔루스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부의 과로 산재 기준만큼 일하도록 내몰리지 않으려고. 일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고, 최소한 법이 정한 만큼은 안전하게 일하자고.

출범식날 출범을 환영하는 연대단체 대열 가장 앞에 파란색 일진하이솔루스지회 깃발이 날렸고, 그 앞으로 교대근무를 마치고 나오면서 금속노조 조끼를 꺼내 입은 조합원들이 열을 맞춰 섰다. 지난해 11월의 일이었다.

금속노조의 교섭 요구에 노사가 몇 차례 만나긴 했다. 그러나 일진 자본은 애당초 단체교섭에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 없었다. 교섭시간을 한 시간으로 하자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교섭하지 않겠단 소리를 돌려 말하더니, 노동조합의 요구에는 수용불가 의견을 반복했다. 노동조합의 입을 막겠다는 심산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게시물에 사전 승인받을 것’이라는 위헌적인 구시대적 단협조항을 원했다.

일진하이솔루스지회는 조정도 두 차례나 했다. 의미 있게 대화를 좀 하자는 입장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일진 자본은 종전 태도를 유지했고, 노동조합은 올해 4월 확보한 쟁의권을 바탕으로 단체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체행동이라고 해 봐야 단 세 번의 특근(잔업) 거부, 딱 일주일 작업표준지침서에 따라 일한 것이 전부다.

그 결과가 노동절이 끝나가는 자정,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직장폐쇄로 금속노조를 축출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일진 자본은 2020년께 교섭 해태 후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한 채 355일여간 노동조합을 괴롭혔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빠르게 불법 직장폐쇄로 노조를 압박한다는 차이 정도다.

대체로 자본은 적법·불법을 따지지 않는다.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느냐 묻고 싶다만, 자본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어떻게든 흔들어 조직력만 약화시키면 자기네가 승기를 잡는다는 것을.

일진하이솔루스의 이번 직장폐쇄도 그렇다. 보수적인 법의 기준으로 봐도 △사용자인 일진하이솔루스에게 수인의무 있는 범위 내의 쟁의행위에 대해 △방어적 수단을 초과해 공격적으로 이뤄졌고 △수단으로서의 상당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생산에 무관한 시설에는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마지못해 주차장의 천막을 임시 노조사무실로 인정하고 ‘20명으로 한정’해 선심 쓰듯 출입하도록 했다. “노동조합이 먼저 선을 넘었다”는 발언, 직장폐쇄 후 곧장 벌어진 대체인력 투입, 이를 막아서는 조합원을 차로 밀어 버리는 만행 등 일련의 사태는 일진하이솔루스의 와오된 노사관계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마도 일진 자본은 금속노조가 자리 잡기 전에 깨뜨리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신생 지회라 쉽게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명백한 오판이다. 젊고 열정적인 신생 지회는 굴하지 않고 맞선다. 더워지는 날씨에 지칠 법도 하건만 “투쟁은 즐겁게 해야 한다”며 음식을 나누고, 공을 차고, 투쟁가를 익히고, 돌아가며 발언을 한다. 일진하이솔루스지회의 노동자들은 사측에 맞서며 하루가 다르게 멋지게 단단해져 간다. 그 곁에 단위를 불문하고 민주노총 이름 아래 응원하는 발길이 꾸준하고, 일진하이솔루스 사측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지탄도 이어진다.

결국 사측은 55일여 만에 교섭에 응했다. 현재 진행 중인 이 교섭이 금속노조를 인정하고 건강한 노사관계를 가져가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혹여 아직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시간을 끌고 조직력을 흔들어 보려는 수작이라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진하이솔루스지회는 “금속노조 깃발 아래 당당하게 살아 보자”는 구호를 자주 외쳤는데 지금까지 들은 어떤 구호보다도 서슬 퍼런 진심과 힘이 서려 있었다. 이토록 단결된 힘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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