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1년이 지나면서 노동정책은 노조적대·규제완화로 이원화했다. 노조적대 정책은 노조회계 공시와 노조간부를 대상으로 한 수사다. 규제완화는 연장근로 확대와 직무·성과급제 도입 추진이 대표적이다. 두 트랙 어디서도 고용노동부가 주도권을 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초기에는 역할론이 없지 않았다. 노동부 안팎으로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을 두고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역할을 하려 했다”는 평가는 나온다. 그러나 이런 모습도 그보다 앞선 같은해 6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1차 파업을 앞둔 상황에서 이 장관이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한다며 출국한 일을 복기하면 빛이 바랬다.

지난해 10월을 지나면서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화물연대본부의 2차 파업에는 용산 대통령실이 직접 뛰어들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이후 이어진 건설노조 관련 갈등에서도 전면에 나선 건 국토교통부다. 올해 1월부터는 국가정보원과 경찰까지 합세했다. 이 때문에 노동 관련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노동정책에서 노동부가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 대체 누가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을까.

회계 공시 주장 전문가 “옥상옥 있다고 느껴”

2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관계자들의 시선은 몇 개의 그룹에 꽂힌다. 한쪽은 전 정부 집권세력과 결별한 전문가들이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가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조국 전 장관 딸 사태로 민주·진보진영이 분열할 때 당시 집권세력과 첨예한 각을 세운 인사다. 이후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도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가 지목된 이유는 노조회계 공시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6일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다트)과 유사한 노조회계 공시시스템 구축을 지시한다. 이는 곧바로 올해 1월9일 노동부 신년 업무보고 첫 머리에 오른다. 김 대표는 이후 노동부가 꾸린 노동관행 개선 자문단장으로 선출된다. 일사천리로 추진되다 보니 김 대표가 12월26일 이전에 노조회계 공시에 관해 대통령실에 조언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본인은 부인했다. 김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노조회계 공시에 대해 올해 1월 회의에서 논의했고 다른 자문단 구성원과 함께 노조가 소득세법상 지정기부금 단체에서 빠진 부분을 주목한 것이 맞다”면서도 “먼저 대통령실에 제안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노동부가 주도한다기보다 옥상옥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누구 혹은 어떤 그룹인지는 김 대표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실 참모 변화 전후해
화물연대 파업 대응 기조 변화?

또 다른 그룹은 대통령 참모들이다. 국정 전반에 관여하는 특성상 이들을 새삼스럽게 “정책에 관여한다”고 의뭉스럽게 쳐다보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통령실 내에서 노동개혁을 총괄한 이는 안상훈 사회수석비서관으로, 윤석열 정부의 사회복지정책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수석비서관실에는 노동부에서 파견한 고용노동비서관도 있어 자연스럽다.

실제 대통령실은 노동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부인해 노동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전적이 있다. 지난해 6월 이 장관이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를 발표한 이튿날 윤 대통령이 약식회견(도어스테핑) 과정에서 이를 “공식 발표가 아니다”며 부인했을 때다. 노동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고용노동비서관이 일을 전혀 안 하는구나 싶었다”며 “상상하기 어려운 일로, 용산(대통령실)과 노동부가 조율이 안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무부처 장관 발표를 뒤집을 정도라면 역학관계는 대통령실에 기울어 있다고 보는 게 유력하다.

그렇지만 3월부터 안 수석이 노동정책 분야에서 손을 뗐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정책을 모두 움켜쥐고 있다고 속단하기도 쉽지 않다. 안 수석은 당초 노동을 비롯해 교육·연금개혁을 모두 주도했지만 3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발표 뒤 혼선이 잇따르자 이관섭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이 노동정책을 담당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산업통상자원부 관료로 차관까지 오른 뒤 2021년부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맡았던 인사다. 이후 지난해 9월께 대통령실로 들어갔다. 당시 파업을 준비하던 화물연대본부쪽에서는 “이 수석이 대통령실에 들어간 뒤 정부 기조가 (탄압으로) 바뀌었다”고 사후 분석을 하는 분위기다.

전직 노동부 관료
“자문 구하는데 답 안 할 수 없다”

마지막 그룹은 노동부 전직 관료와 학자들로 이뤄진 그룹이다. 이 가운데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실장급으로 있었던 관료들이 여럿 지목된다. 좌장격은 참여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과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경제학)다. 그를 위시로 한 일군의 전직 관료들은 다양한 장면에서 중복해서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과 계속해서 이름이 거론되는 김성태 전 의원을 하나의 그룹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핵심으로 지목되는 전직 관료 2명은 국무총리 규제혁신추진단 자문위원으로 사회·안전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1명은 다시 2021년 출범한 일자리연대의 임원진에 공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 명예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곳이다. 2021년 일자리연대 창립기념 토론회 자료를 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진단하면서도 대안으로 유연한 고용과 연공급제 폐기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3월29일 열린 특별 정책토론회 한 발제문에는 “MZ세대가 말하는 공정에는 같은 일을 하는데 다르게 처우하는 부당함과 더불어 다른 일을 하는데 같이 처우하는 부당함도 포함되기에 연공적 보상, 과반노조 대표성 등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있다. 전반적으로 전 정부를 지나면서 노조 우위의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강력한 엄벌주의를 요구한다.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이름을 드러내는 노동부 고위공무원 출신 임무송 인하대 초빙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자문을 구하는데 답을 안 할 수는 없다”고 에둘러 답변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정책 설계의 장본인을 찾는 사태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만큼 노동부의 역할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노동 분야를 연구해 온 한 연구자는 “지금도 노동부 외곽에서 총선을 전후한 노동정책 구상 연구에 돌입한 것으로 안다”며 “이곳에 지금 노동부는 형식적으로는 개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인데, 주무부처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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