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용진 금속노조법률원 충남사무소 노무사

“내가 공장에 가서 일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노조 가입이다.”

놀랍게도 미국 해군 출신인 대통령 루스벨트가 1930년대 한 말이다. 그로부터 85년이 흐른 2023년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노조를 사회악, 범죄집단으로 규정짓고 탄압을 일삼아선지, 노조를 만들고 가입하는 데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한마디로 매우 험난한 길이다.

충남 천안에도 홀로 험난한 길을 가는 노동자가 있다.

주류 배송회사인 ㈜유일주류에서 배송기사로 6년 넘게 일하던 한 노동자가 코로나 핑계로 상여금을 대폭 삭감하고 오래 일해도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는 상황에 부당함을 느껴 노조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2021년 5월 세종충남희망노조에 가입하고 스스로 지회장이 됐다. 유일주류지회가 지회 설립 사실을 알리며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회사 임원이 지회장에 다짜고짜 전화해 ‘왜 보고도 없이 노조를 만들었냐’고 추궁하면서 조합원 18명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단체교섭 상견례 열흘 전 회사 영업차장이 지회장을 찾아와 노조를 포기하고 대표이사와 대화로 풀자는 취지로 말했다. 또 민주노총을 탈퇴해 기업별 노조로 가자고 회유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약 18일 만에 8명이 노조를 탈퇴했다.

회사 관리자들의 집요한 회유에도 지회장이 흔들리지 않자 회사는 갑자기 배송처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서 지회장의 배송처 중 매출액이 많은 알짜 배송처를 다른 노동자에게 넘기라는 부당한 요구를 했다. 이를 거부하자 갑자기 천안에서 근거리 배송을 하던 지회장을 서산, 당진, 홍성 등 원거리 배송으로 보내 버렸다. 부당한 원거리 발령 직전, 대표이사는 전체 직원이 모인 자리에 ‘과연 이 회사가 노조가 필요한 회사인지 모르겠다’ ‘단체교섭을 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회장에 대한 부당한 인사발령이 이뤄지기 전 조합원 전원이 탈퇴했다.

유일주류가 홀로 남은 조합원인 지회장을 원거리 배송으로 인사발령한 것은 지회장으로서의 단체교섭 활동 등을 이유로 금전·시간적 불이익을 주고자 하는 동시에 노조활동을 포기시키려는 불이익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중앙노동위원회도 이를 인정했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인사발령만 인정하고 부당노동행위를 기각시켰는데 황당한 판정이다.)

그러나 회사는 중노위 판정을 이행하기는커녕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한 번도 문제 삼지 않던 배송과정에서 작은 실수를 사유로 감봉 6개월이라는 중한 징계를 했다. 나아가 지회장 1명만 조합원으로 남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존에 지급했던 조정수당(매출이 1억원을 초과했을 때 배송기사에게 지급했던 수당)과 공병수당(업소에서 공병을 수거했을 때 배송기사가 받게 되는 수당)을 일방적으로 없앴다.

‘노조 천국’이라 불리는 노르웨이에서 진행한 방대한 연구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10% 늘면 기업 생산성도 1% 남짓 증가한다. 여기에 단체협약이 추가되면 기업생산성은 무려 13.5% 상승한다고 한다. 유일주류의 노조탈퇴 회유와 일방적인 수당 폐지가 있을 후 4명의 노동자가 퇴사했다고 한다.

유일주류에 묻고 싶다. 노조탈퇴 회유 부당노동행위, 일방적인 수당 폐지로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영업이익율이 증가했는지. 오히려 노조를 인정하고 성실한 단체교섭으로 진작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면 장기적으로 퇴사자가 줄고, 노동조건 향상을 통해 직원 만족감, 기업몰입도가 증가해 회사에 이득이 되지는 않았을까.

과연 대통령의 말처럼 노조가 괴물처럼 기업의 이익을 잠식하고 망하게 하는 존재라 할 수 있나. 뭐가 그리 불편한가.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버락 오바바 전 미국 대통령, 2015년 노동절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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