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사정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공식 대표자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어 그 배경과 목적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 재개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노사정이 바라보는 곳이 모두 달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정상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노조를 적대시하는 정권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회적 대화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노사정 대표자 첫 공식 간담회 추진

22일 노사정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노사정 대표자들은 노동현안에 대한 상대방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26일 오찬 간담회를 개최한다. 장소는 경사노위가 될 전망이다.

간담회 추진은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경총의 35회 한국노사협력대상 시상식이 계기가 됐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손경식 경총 회장, 김문수 경사노위원장이 행사 뒤 편안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간담회 개최에 뜻을 모았다. 같은날 오후 김 위원장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 개최를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노동부와 경사노위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대표자 간담회가 성사했다고 볼 수 있다.

26일 간담회의 관전 요소는 대표자 회의·간담회 정례화 여부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경총·경사노위 분위기를 살펴보면 당일 간담회에서 대표자들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부당함과 중단 필요성을 강하게 얘기할 것으로 점쳐진다. 한국노총을 배제하고 연구회·자문단을 출범시켜 노사관계 관행 개선과 직무성과급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경사노위 운영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는 한국노총 기조에 따라 간담회를 하지만, 정부 정책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비판하는 자리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경총은 정부 노동정책에 힘을 실어 주는 모양새를 취하고, 경사노위는 간담회 개최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적 대화를 이어 가자고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사 이해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합의할 수 있는 최대의 폭은 앞으로 계속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 밖에 남질 않는다.

설사 대표자들이 의기투합하더라도 곧바로 경사노위 가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파행하고 있는 경사노위가 정상화하려면 노사정 실무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의제개발·조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 의제를 조정하고, 정부 차관급 대표와 노사 부대표급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본위원회에 상정할 의안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노사 대표자와 경사노위원장, 노동부·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여하는 본위원회가 열려야만 사회적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가 노동계를 대화로 끌어들일 강력한 유인책이 없기 때문이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를 통한 타임오프 한도 재설정 문제가 노동계에 줄 수 있는 당근이긴 하지만 재계의 동의가 있어야 조정이 가능하다. 한국노총 내부에서 타임오프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급격히 줄어든 분위기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적거리고 있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문제도 한국노총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정부 노동정책 전환 없이 무조건 경사노위 정상화에 참여해야 할 의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계 입장에서는 사회적 대화로 해결하길 원하는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정부는 절실하다. 노동시간 유연화 등 정부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 법개정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사회적 대화라는 ‘포장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회에 호소·압박할 수단이 현재로서는 사회적 대화 합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문수 위원장과 이정식 장관에게는 사회적 대화를 성사하고 싶다는 의지, 또는 성사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엿보인다.

정부, 노동시간 개편 추진에 사회적 대화 활용?
노동개악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한국노총

한국노총은 정부의 반노동 정책 추진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 왔다. 김동명 집행부는 초고령사회 대비나 정의로운 전환 같은 사회변화를 이끄는 사회적 의제에 관심을 보인다. 최근 김 위원장은 내부 사무총국 회의에서 “정부가 한국노총까지 철저히 외면하고 노동계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낙인찍고 탄압하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먼저 손을 내밀거나 화해의 모습을 보내면 정부는 더 탄압하고 굴욕을 강요할 것”이라며 “노정관계도 생물이고,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결정적 계기가 온다는 것이 지난 역사적 경험”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고보조 중단 같은 정부 압박에도 사회적 대화와 노정관계 전반에서 굽히지 않고 버티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한껏 경색된 노정관계 때문에 대표자 간담회를 시작으로 어렵사리 시작한 대화가 좌초할 수 있다는 전망은 재계에서도 감지된다. 경총 관계자는 “최근 대화가 안 되는 것은 정부와 (한국노총이)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 우리와는 (한국노총이) 늘 만났다”며 “경총은 사회적 대화를 재개하고 이어 가는 것에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다 보면 이후 공식적(정식 사회적 대화)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