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

노조 불법행위 처벌, 노조의 불공정 채용 단속,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 개편.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명목으로 밀어붙이는 정책들이다. 그런데 노동시장 격차 완화를 위해 오래전부터 제시된 정책이 있다. 국내외적으로 검증됐지만 정부와 자본이 외면해 왔다. 산별교섭 활성화와 단협효력 확장이다. 이런 정책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 4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일하는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고용관계가 진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근로계약을 맺어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위·수탁 방식에 의해, 알고리즘에 의해 업무를 지시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생산성도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만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진화의 방향인데, 고용관계 변화가 노사 모두에게 동등한 이로움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회사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활용해 간접비 등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노사관계에서 사용자로서의 책임도 덜게 됐다. 그러나 노동자는 계약 형식만 자영업자이지, 임금노동자와 비슷하게 일하는데도 노동자가 갖는 법적 권리는 완전히 배제된 사각지대에 놓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공기도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처럼 조화로운 세상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노사관계 불평등 역시 평등한 구조가 돼야 사회가 유지·발전할 수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고용관계 변화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변화가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특수고용 노동자는 ‘특별한 노동자’가 아닌 ‘종속적 계약자(dependent contractor)’다. 이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계약관계를 갖지만 계약상대방에게 종속돼 있음을 의미한다. ILO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임금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사용자와 종속적 관계를 갖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실제 영국·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사회보험 가입 권리, 차별받지 않은 권리, 노조활동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21년 ILO 기본협약을 비준해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갖게 됐다. 그러나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는 사용자의 정의가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한 사업주’로 돼 있어 근로계약이 아닌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용자가 교섭을 거부하면 법적으로 교섭을 강제할 권리가 없다. 사용자가 교섭권이 없는, 직접 고용한 노동자도 아닌 노동자를 위해 노동조건을 알아서 개선해 줄 이유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는 스스로 권리를 지켜야 하지만 교섭할 권리를 갖지 못해 사실은 무장 해제된 군인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불평등하게 변화하는 고용관계에서 초기업 수준의 교섭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핵심 방안이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조차 적용받지 못해 노동기본권이 완전히 배제된 상황이므로 교섭을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 개선해야 한다. 이미 중앙노동위원회와 법원은 기업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사용자로서 교섭의무가 있음을 여러 차례 결정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2020년 음식배달 노동자 중심의 서비스일반노조 배민지회가 배달의민족과 단체협약을 체결해 수수료 인상 등 처우개선에 합의했다. 2022년 대리운전노조가 카카오모빌리티와 단협을 맺어 수수료 제도의 불합리적 조항을 폐지하고 고충처리위원회 설치, 심야 이동 개선 등을 합의했다. 비록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노동자의 초기업교섭 사례는 많지 않지만, 이들 노동자는 기업 내 고용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고 업종 내 동일성도 강해 초기업교섭 활성화에 유리한 조건이다. 초기업교섭을 추진한다면 노사 자율 합의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2018년에 이미 220만명이었으며 플랫폼 노동자도 2022년에 8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까운 점은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가 미뤄지고 있는 동안 사각지대 노동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의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 남용을 막고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한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사용자에 교섭의무를 부과하는 노조법 2조 개정이 필요하다. 둘째, 임금노동자인데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노동자로 잘못 계약돼 있는 오분류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특별위원회 설치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용자의 의무를 포괄적으로 정하고 산업안전·사회보험 같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 등 법·제도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 서로 착취하지 않고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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