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극우언론 폭스뉴스가 지난달 24일 미국 가짜뉴스의 표준 모델인 터커 칼슨 간판 진행자를 해고했다. 칼슨은 2020년 대선 결과가 개표 조작 때문에 뒤바뀌었고, 이렇게 당선된 바이든 대통령이 곧 나라를 중국에 팔아 먹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칼슨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 의사당 난동도 미 연방수사국(FBI)가 꾸며낸 선동이라고 호도했다.

개표기 업체 도미니언은 칼슨 같은 허풍쟁이 입을 풀어놓은 폭스뉴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였고, 최근 폭스뉴스는 1조원을 물어주겠다고 합의했다. 이는 미국 언론의 명예훼손 소송 역사에서 최고 배상금액이다. 소송에선 칼슨이 동료들과 주고받은 문자로 이미 투표기 조작설이 거짓임을 알았지만 계속해서 의혹을 부풀린 사실도 드러났다. 심지어 칼슨은 법정에 나와서는 그래도 자신을 엄호하던 회사를 맹비난했다.

이 밖에도 칼슨의 가짜뉴스는 수없이 많다. 코로나19 백신에 음모론을 조장하고 백인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그가 진행했던 폭스뉴스의 간판 프로그램 ‘터커 칼슨 투나잇’이란 뉴스쇼을 통해 발화했다.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미국 언론이 즐겨 활용하는 ‘뉴스쇼’라는 장르는 이제 손절해야 할 시점이다.

2010년에 나온 미국 영화 ‘굿모닝 에브리원’은 뉴스쇼를 제작하는 과정을 소재로 삼았다. 영화에선 고집불통의 퇴물 꼰대 앵커 해리슨 포드와 미인대회 출신의 수다스런 앵커 다이안 키튼의 충돌로 묘사됐지만, 이 충돌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개구리와 뽀뽀하기, 쫄쫄이 발레복 입기는 결코 뉴스도 언론도 아니다.

수많은 사실 속에서 신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 본연의 가치에 가독성을 높이려고 일부 오락성을 가미할 순 있지만, 지금 전 세계에서 방영되는 ‘뉴스쇼’는 더 자극적이고 더 쇼킹한 쓰레기 소일거리만 발굴해 시청률만 올리면 그만인 연예오락 프로그램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우리 언론도 칼슨의 해고를 일제히 다뤘다. 한겨레는 4월26일 14면에 <폭스뉴스 ‘극우의 입’ 버렸다>는 제목을, 경향신문은 같은날 19면에 <허위 주장·성차별 ‘설화’에 쫓겨난 미국 간판 앵커들>이란 제목을, 중앙일보도 같은 날 12면에 <‘가짜뉴스 1조 배상’ 폭스뉴스 간판 앵커 해고>라고 칼슨의 해고가 당연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좀 달랐다. 조선일보는 4월26일엔 칼슨의 해고를 <美 막말의 시대 끝났다>(1면)거나 <“너 때문에 1조원 배상”… 폭스, 가짜뉴스 방송 앵커 해고>(14면)라는 제목으로 여느 언론과 비슷한 톤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사흘 뒤 4월29일 13면에 <터커 칼슨 해고하자마자 폭스뉴스 시청률 반토막>이라고 달았다. 조선일보는 칼슨의 해고가 몹시나 안타까운 모양이다. 참 조선일보스럽다. 칼슨의 해고를 바라보는 입장 차이를 떠나 우리 언론은 아무 데나 갈등 구도를 설정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이 역시 자극성을 드러내 가독성을 높이려는 의도지만 억지로 만든 갈등도 많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을 보도하면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사이 신분제가 있다”>(12면 머리기사)는 제목을 사용해 두 직종 사이에 과도한 갈등 구도를 만들었다. 의사와 간호사, 의사와 간호조무사 사이 갈등보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사이 갈등이 더 심하다고 할 수도 없는데, 늘 이런 식으로 갈등 프레임을 짠다. 의료계 내부의 이 세 직종은 갈등하면서도 협력하는 구조인데, 우리 언론은 너무도 손쉽게 갈등 구조에 밀어넣어 버린다.

이렇게 언론이 억지로 만든 갈등 때문에 내용을 잘 모르는 독자는 굳이 갈등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문제를 갈등구조에 가두고 만다. 결국 사회통합은 요원해진다.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언론에 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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