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국전력이 지난 12일 내놓은 25조7천억원 규모의 재무 개선 자구책을 두고 정부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나오고 있다. 국제 에너지 원가 상승에도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한 정부 정책을 이행하면서 발생한 적자를 한전에 고스란히 떠넘기는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한전에는 자구책을 강하게 요구해 놓고 정작 정부책임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최철호(55·사진) 전력연맹 위원장은 정부가 주도한 자구안의 목표가 한전 약화라고 보고 있다. 한전이 방만·부실경영을 한다며 악마화한 뒤 결국에는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키우려 한다는 시각이다. 최 위원장은 한전을 더 강하게 만들어 재생에너지 전환 투자 등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전문적 역할을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력연맹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합리적 전력 소비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정상화 필요”

-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요금폭탄이라는 비판과,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현실화·정상화가 필요하다. 한전 적자 문제가 해소하지 않으면 각종 피해가 잇따를 수 있다. 이를테면 신규투자 감소, 적정 유지보수 투자 감소, 협력업체 위기 등 전력산업 생태계 붕괴가 우려된다. 한전 채권이 과도 발행에 따른 채권시장 교란 등 경제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 킬로와트당 8원 인상의 경영개선 효과는 3조원에 미치지 못한다. 적자를 해소하려면 3·4분기에 더 많이 올려야 하는데 여름철 전력 사용량 급증과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쉽지 않아 보인다.”

- 연맹으로서는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한전 총괄원가 회수율이 65% 정도다. 전기를 1천원에 사서 650원에 팔고 있다는 얘기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손해 보는 구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32개 회원국 중 30위다. 독일의 3분의 1(31%), OECD 평균의 58% 수준에 그친다. 낮은 요금은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하는 면이 있다. 과하게 전기를 사용하면서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고, 전력망도 더 건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투자는 또 원가에 들어간다. 적자 구조의 악순환이다. 과한 소비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힘들게 한다. 합리적 소비를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 에너지 빈곤층과 저소득층은 바우처 등으로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

- 정부는 적자의 원인을 한전에 떠넘기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다.
“전기요금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전기료를 활용했다. 국제연료비 상승은 세계 모두가 겪는 현상이다. 국가별로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자.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에너지 효율화와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전력수요를 낮추는 방향으로 갔다. 요금인상과 함께 전기세율과 부과금 인하, 보조금 지급과 같은 재정지원을 뒷받침했다. 유럽과 미국 등은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고물가에 시달렸다. 우리는 국제연료비 변동 속에서도 비교적 편하게 사태를 지나가고 있다. 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안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전이 국민에게 가야 할 부담을 적자로 안았고, 그로 인해 물가상승률도 억제하고 기업에 싼 가격에 전기를 계속 공급하면서 경제 버팀목이 됐다는 얘기다. 한전을 칭찬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정치 목적 갖고 한전을 악마화,
최초 자구책에 없던 ‘경영진 사퇴·임금반납’ 정부가 덧붙여”

- 한전이 내놓은 자구안 핵심은 자산을 매각하고 임금은 반납하라는 것이다. 적자의 원인과 해법이 따로 노는 것 같다.
“자구책이 필요하긴 하다. 사실 이번 발표 이전에 우리 스스로 내부 동의를 구하면서 자구책을 수립해 왔다. 정부 부처와 협의도 끝냈다. 그런데 정치권이 갑자기 달려들었다. 전 정권에서 임명한 사장을 내려보낼 기회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적자를 이유로 정치적 이익을 보려 했다. 한전을 악마화하고 비효율·방만경영 탓으로 돌려서 그에 대한 책임을 경영진에게 씌웠다. 직원들의 임금도 반납하라고 한다. 애초 자구책으로 세웠던 내용에는 없던 경영진 사퇴와 임금반납이 들어가 버렸다.”

- 임금반납에 대한 연맹 입장은 무엇인가. 반대하면 적자기업 귀족노조라는 공격이 예상되고, 수용하면 직원들이 반발할 텐데.
“정부 자구안은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전 총괄원가 중 구입전력비 비중이 90%고 인건비 비중은 1.8%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임금인상분 반납에 해당 직원 2만3천명이 동참하면 겨우 200억원이다. 30조원 적자 해결이 도움이 되는 규모가 아니다. 공기업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트리는 정치적 수단이라고 판단하는 까닭이다.”

- 부동산 매각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양재동 건물 임대와 여의도 빌딩 매각 추진도 그 목적이 매우 의심스럽다. 2014년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를 현대에 10조5천억원에 매각했다. 지금은 감정평가액만으로도 20조원에 이른다. 실제 거래가는 더 비쌀 것이다. 이번에 매각한다는 여의도 남서울본부는 L 대기업이 사려한다는 소문이 벌써 파다하다. 공기업의 자산을 민간 대기업 이윤을 내는 데 주려는 거다. 삼성동 본사 사건으로 부동산을 매각하면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치를 저해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팔라고 한다. 한전을 망가뜨리려는 시도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비효율·방만경영 비난은  민영화 위한 악의적 공세”

- 한전을 약화하는 것이 정부 목표라고 보는 건가.
“공기업을 비난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은 민영화를 위한 악의적 공세다. 공기업 역할을 축소하고, 비효율과 방만으로 몰아갈수록 민간에다 맡기자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러기 위해 공기업과 노동자를 하는 일도 없이 국민 세금이나 축내는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것이다. 전력산업 민영화하라는 케케묵은 주장이 벌써 득세할 조짐을 보인다.”

- 임금반납 문제는 어떻게 대응해 나갈 건지.
“노조를 딜레마로 몰아붙이고 있다. 한전 전체 그룹사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노조가 함께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 임금반납과 자산 매각은 표면으로 드러나는 문제일 뿐이다. 연맹과 노조는 전기요금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합리적인 전력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은 공기업 때리기에 더욱 힘을 쏟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에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전략적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과 연대해서 합리적 주장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집회 등 물리적 투쟁 병행도 고려 대상이다. 우호적인 국민 여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밟겠다.”

- 한전 적자에 정부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나.
“당장 한꺼번에 안 되더라도 단계적으로라도 전기요금 결정 구조를 전문적인 독립 규제기관에 맡겨야 한다. 공기업에 지나친 이윤을 보장할 필요도 없다. 원가에 기반한 최소한의 투자 보수율만 책정해 주면 된다. 원가와 연동하면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주택용은 원가보다 높게 책정돼 있으니 합리적으로 낮추고, 산업용 등 지나치게 낮은 부문은 정상화가 필요하다. 스스로 전력 사용을 낮추고 합리적 사용을 유도할 수 있는 요금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도 제발 제대로 세워야 한다. 정치 셈법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한전 재생에너지 전환 사업 앞장서야”

-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한전은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한전은 가치사슬 체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 발전에서부터 개통, 망, 발전정비를 다 아우르고 있다. 적자기업으로 만들어서 쪼그라트리면 국가적 손해다. 에너지 전환 시대에 글로벌 챔피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사업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결국 공적 부문에서 부담해야 한다.”

- 한국노총 연맹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1998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차관을 받으면서 전력산업 구조개편, 즉 민영화가 추진됐다. 발전이 6개 사로 분사되면서 자회사 노조들도 생겼다. 전력산업노조들은 태생이 같기 때문에 산별노조에 대한 기대를 항상 갖고 있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상급단체가 다르면 서로 간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서 계속 무산됐다. 그러다 최근 에너지 전환 문제가 덮치면서 각자도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럽과 같은 산별체계가 우리나라에 만들어진다면 가장 가능성 있는 게 전력 분야라고 생각한다. 다 같은 회사이기 때문에 적어도 연맹 체계 안에서 선택적 산별교섭 실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개별노조보다 산별노조가 효율적이라는 경험이 축적되면 급격히 바뀔 가능성(산별노조 전환)도 있다. 그 토대를 연맹으로 마련하려 한다. 전력부문 노조들이 모두 함께하려는 활동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노총과 함께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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