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됐다. 여러 토론회가 열리고, 지난 1년간 이 사회가 어떻게 퇴행했는지 열거된다. 코로나19의 끝에서 만난 이 정부는 경제회복과 복지확대를 위한 재정 지출은 거부한 채 재벌에 대한 세제 특혜과 보유세 완화 등 감세정책을 폈다.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재생에너지를 축소하며, 노후 원전 가동 연장을 시도한다. 지금도 허술한 양곡관리법인데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농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다. 강제동원 제3자 변제방식으로 강제징집 피해자들에게도 고통을 더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하고 여성 및 소수자 인권을 악화시킨다. 10·29 이태원 참사에서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고 피해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하나하나 나열하다 보면 정말 심각하다.

특히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지난 1년이 참으로 힘들었다. 이 정부는 기업의 자유를 강조하며 대한상의와 경총·전경련 등과 만나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약속하고 실행했다. 그런데 노동조합과는 일체 만나지 않고 탄압을 일삼았다. 고용노동부만이 아니라 경찰과 공정거래위원회, 국정원 등을 동원한 탄압이었다. 노동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내놓고, 연장근로단위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할 수 있게 했다. 주 69시간, 심할 경우 주 80.5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강한 여론의 반발로 시행을 못하고 있지만, 노동시간 유연화는 계속 추진되고 있다. 파견허용 대상을 확대하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악이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개악도 준비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건설노조 탄압에 항거한 양회동 열사의 죽음 앞에서 ‘윤석열 퇴진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정당한 노조활동을 공갈·협박·갈취로 몰아 압수수색하고 구속하는 이 정부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민중운동 진영에 속한 단체들 중에서 윤석열 퇴진에 대해 아직 조심스러운 곳이 많다. 아마도 ‘그 이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집회로 정권은 바뀌었지만 사회는 바뀌지 않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윤석열이 퇴진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들 우리 사회가 바뀔 것인지 회의감을 갖고 있다. 윤석열 정부 1년이 ‘퇴행’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난 1년간 후퇴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정부에서도 제대로 앞으로 나아간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신자유주의라는 정책 기조가 바뀐 적이 없다. 민주주의가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의 권력이 시장만이 아니라 의회와 정부, 그리고 사회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수자들의 요구는 ‘나중에’로 미뤄져 왔다. 그나마 소수자들의 권리가 확보됐다면 그것은 제도와 정치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주체들의 투쟁에 의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1998년 이후 거의 모든 정부는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해 왔다. 노동자들의 요구로 확대된 사회서비스영역도 시장화의 길을 걸어 왔다.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정당화되고 기업의 이윤이 최고 가치인 사회였다.

불안정노동은 더욱 확산했다. 1998년 정리해고와 파견제가 제도화된 이후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더 복잡해졌다. 기간제나 사내하청·특수고용 외에도 플랫폼 노동자, 자신도 모르게 3.3% 개인사업소득세를 떼이는 노동자,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권리에서 배제된 노동자, 내가 무엇을 위한 노동을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온라인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미세노동 노동자, 언제 일할지 알 수 없는 호출노동자, 쪼개기 계약으로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 등 권리에서 배제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그런데도 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화는 더디거나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년간 요구했던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는 요구조차 이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문턱을 넘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 1년, 폭력적인 이 시기를 노동자들은 너무 아프게 맞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권을 바꿔도 달라지는 것이 많지 않음을 이미 경험했다. 결국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위한 힘을 축적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제는 큰 이야기도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 어떤 체제를 원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큰 의제들, 이를테면 기후정의운동이나 한반도 평화, 투쟁하는 소수자 의제들과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의제를 걸고 싸우는 이들과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그들과 어떤 사회를 만들지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윤석열 정부 이후’도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할 것 같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