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스트리올

지난 9~1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전자산업노조 글로벌 네트워크 회의가 열렸다. 세계 제조업 노동자들의 국제노조인 인더스트리올(IndustriALL Global Union)이 개최한 이번 회의에는 베트남과 한국을 비롯해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미국,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에서 온 노조 간부와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4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글로벌 전자산업 동향, 노조 조직화 전략, 다국적기업에 대한 실사(Due Diligence) 정책, 글로벌노조와 다국적기업이 체결하는 글로벌 기본협약(Global Framework Agreements), 국제노동기구(ILO)의 안전보건 관련 기본협약(155호와 187호)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 한국에서는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삼성전자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간부들이 참석해 삼성전자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전자산업에서의 노동조합 활동과 노사관계 현황을 소개했다.

전자산업을 감시하는 국제 NGO인 ‘굿 일렉트릭스(Good Electronics)’에서 온 제론 머크의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5천억 달러에 달했고 향후 5년 안에 두 배가 늘어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생산장비 시장은 미국과 일본과 네덜란드가 글로벌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으며, 반도체 생산은 중국, 한국, 대만이 글로벌 시장의 90%를 감당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위기를 꼽았다. ‘칩 전쟁’(Chip War)에서 미국은 반도체 생산에서 대만의 역할을 축소하고 생산기지를 미국 본토와 동맹국으로 이전하는 전략을 맹렬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미국과 유럽에서 보호주의적 색채를 띤 반도체법(Chip Act)을 제정하려는 정치적 결정을 통해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0여개 회사, 1백만명이 반도체 공급사슬에 종사한다. 최근 중국과 한국 등 반도체 생산국에서 산업 구조조정이 가시화되고 노동자의 고용과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반도체 산업을 조직하는 노동조합에게 거대한 도전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질지 불분명한 가운데 미국의 애플 같이 직접생산을 하지 않는 기업과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TSMC 같은 직접생산을 하는 기업 사이의 권력 관계 변화가 감지되기도 한다.

안전보건 문제에서는 ‘위험 공정의 글로벌 외주화(global outsourcing of hazardous processes)’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베트남에서 삼성전자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이 살상 화학물질인 메탄올에 노출돼 죽거나 실명한 사건이 보고됐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노조 참가자들은 반도체 공장 노동력의 절대 다수가 여성임을 상기시키면서 여성 노동자의 유방암과 혈액암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삼성전자의 부당노동행위가 폭넓게 다뤘다. 참가자들은 한국 내에서 삼성전자와 그룹 계열사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된 사실에 주목하면서 노동조합과의 실질적인 단체교섭(effective collective bargaining)을 거부하는 사용자의 태도를 비판했다. 특히 노사협의회 제도를 악용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부정하는 행위는 2021년 4월 한국 정부가 비준한 ILO 98호 단체교섭권 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잇달았다. 인도네시아 금속노조연맹 간부는 삼성전자 현지 공장에서 노조 탄압이 여전하며 일부 사업장의 경우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등 불법행위가 발생한다고 보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노동기본권의 준수를 약속했는데도 국내·외 삼성 노동자들은 이 회장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삼성은 거짓말쟁이(Samsung is a liar)”라는 한국 참가자들의 발표에 공감을 표명했다.

전자산업노조 글로벌 네트워크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참가자들은 2022년 6월 ILO 연차총회에서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에 포함된 산업안전보건 협약 155호와 산업안전보건체계증진협약 187호에 대한 교육훈련을 강화할 것과 글로벌 수준에서 전자산업을 감시하는 ‘굿 일렉트로닉스’ 등 국제 NGO와 협력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 그리고 삼성의 노동기본권 준수를 촉구하는 글로벌 행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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