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병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23. 4. 6. 선고 2022구합72282

Ⅰ. 사실관계

노벨리스코리아(참가인)와 노조(원고)는 “대학생 자녀 1명에 대한 등록금 전액을 지급한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원고 조합원 A씨는 단체협약을 근거로 회사에 6년제 대학인 OO대학교 한의학과에 재학 중인 자녀의 9학기 등록금을 신청했다. 회사는 8학기(4년제 대학 기준)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신청을 거부했다. 노조는 단체협약 문언상 6년제 대학의 경우에는 그 교과과정에 맞도록 9, 10학기 등록금까지 지급할 것을 회사에 요청했다. 회사는 그동안 8학기 한도를 초과하는 등록금을 지급한 사례가 없고, 사내 지침에 8학기 지급 한도가 명시돼 있다는 이유로 장학금 조항은 8학기를 한도로 해석한다고 답했다.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노조와 회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4조1항에 따라 노동위원회에 ‘등록금 전액의 지급 기한이 8학기로 제한되는지 여부’에 관한 견해제시를 요청했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단체협약의 문언상 지급기한이 8학기로 제한되지 않는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중앙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불복한 원고 노조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Ⅱ. 판결의 내용

ⅰ) 단체협약서와 같은 처분문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재 내용에 의해 문서에 표시된 의사표시의 존재 및 내용을 인정해야 하고, 한편 단체협약은 명문의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1다86287 판결) 이 사건 조항 본문은 ‘대학생 자녀 1명에 대한 등록금 전액을 지급한다’고 하고 있을 뿐, 그 등록금 지급 기간을 8학기로 제한한다는 등의 내용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해 재학 중인 대학생 자녀에 대한 등록금 ‘전액’을 지급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의미가 (5·6년제 대학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자녀 등록금 ‘전액’ 지급이 문언상 명확하다. 따라서 그 명문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해석할 수는 없다.

ⅱ) 설령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라도 이 사건 조항의 개정과정에 비춰 4년제를 초과하는 대학에 관해 ‘전액’의 등록금을 지급한다는 의사의 합치로 볼 수 있다. 또한 8학기 제한을 명시한 회사의 취업규칙이 작성했더라도 그 부분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근로조건을 위반한 것으로 무효이다. 나아가 지급 기한을 8학기로 제한한다는 노동관행이 성립했다고 보기 어렵다.

Ⅲ. 검토

계약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체결 당사자에만 미친다. 그러나 단체협약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의 계약인데도 계약체결의 당사자가 아닌 일반 조합원에게 그 효력이 미친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조합원을 넘어 사업장 근로자 모두에게 단체협약이 적용되기도 한다(노조법 제35조 일반적 구속력). 즉 단체협약은 ‘계약’이면서도 이를 넘어 사업장의 ‘법규범’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단체협약의 이중적 성질은 그 해석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언의 해석방법은 법률의 해석과 법률행위의 해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법적 안정성을 지향하는 법률해석은 문언적 해석을 중심으로 체계적·목적론적·연혁적 해석을 더한다. 반면 표의자의 진의를 밝히는 것에 목적을 둔 법률행위 해석은 자연적 해석, 규범적 해석, 보충적 해석을 단계적으로 실시한다. 그런데 앞서 본 것처럼 단체협약의 성질은 법규범인지 계약(법률행위)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해석 방법도 법률해석과 법률행위의 해석 중 어느 방식을 따라야 할지 문제다. 대법원은 단체협약의 해석방법에 대해 “처분문서는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문서에 기재돼 있는 문언의 내용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하나,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그와 같은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에 의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처분문서의 해석방법(법률행위 해석방법의 하나이다)을 따른다. 그러면서도 “한편 단체협약과 같은 처분문서를 해석할 때에는, 단체협약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유지·개선하고 복지를 증진해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킬 목적으로 근로자의 자주적 단체인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에 단체교섭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명문의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는 매우 독특한 해석방법이다. 법률행위의 해석은 표의자의 진의를 밝혀내는 주관적 해석 방식을 취하는데, ‘명문의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은 문언에 따른 객관적 해석 방식으로써 법률의 해석에 어울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제시한 해석방법은 단체협약의 특유한 성질을 고려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본 판결은 대법원의 단체협약 해석 기준을 적확하게 적용했다. 우선 단체협약에 기재된 문언에 의해 객관적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이후 법원은 단체협약 체결의 동기 및 경위,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살피더라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며 가정적으로 판단했다(문언이 명확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충적 해석으로 나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합원(또는 일반적 구속력이 미치는 비조합원)은 자신이 관여하지도 않은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고 개별적 근로조건이 결정된다. 심지어 노조법은 단체협약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을 무효로 만든다(33조). 이처럼 단체협약은 사업장 내의 법규범으로서 기능하며 개별적 근로조건과 집단적 노동관계를 규율하고 근로조건을 통일시킨다. 그런데 조합원들은 단체협약 체결의 동기 및 경위, 목적, 노조와 회사의 진정한 의사를 알기 어렵다. 체결된 단체협약의 문언을 확인할 때 비로소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알 수 있다.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정확하고 섬세한 문언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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