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택시회사가 택시기사에게 ‘유류비’를 부담시킨 행위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운송비용을 택시기사에게 전가하는 것을 금지한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조항을 강행규정으로 명시한 첫 판결이다.

택시기사, 유류비 1천만원 부담에 소송
법원 “택시발전법은 국민 위한 공익적 목적”

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경북 경산시의 택시회사인 K사 소속 택시기사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K사 기사들은 운송수입금 중 일정액을 납부하고 나머지 금액(초과운송수입금)을 가져가는 ‘정액사납금제’ 형태로 일했다. 그런데 2017년 10월 택시발전법(12조1항)이 경산시에 시행된 이후에도 택시기사들은 초과운송수입금에서 유류비를 부담하기로 약정하며 갈등이 시작됐다. A씨가 2017년 10월~2019년 6월에 부담한 유류비는 1천여만원으로 파악됐다. 그러자 A씨는 “유류비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2019년 10월 소송을 냈다.

1심은 택시발전법은 강행규정에 해당한다며 A씨의 손을 들어 줬다. 그 근거로 택시발전법의 도입 목적에 ‘공익적 성격’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택시회사가 택시발전법의 혜택을 받는다는 점도 뒷받침했다. 재정지원과 조세감면 등 혜택의 반대급부로 운송비용 전가금지의무를 정했는데도 이를 어긴 경우 비난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노사합의를 통한 약정이 유효하다고 하면, 택시기사의 실질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국민 교통편의를 제고하고자 하는 택시발전법 입법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측은 택시발전법이 전액관리제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려고 했으나 택시기사들 요구로 정액사납금제로 운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택시발전법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에 따른 전액관리제가 시행되는 경우에 한정해 적용된다고 정하고 있지 않다”며 사측 주장을 배척했다. 아울러 전액관리제 유명무실화에 대한 특단의 조치로서 택시발전법이 규정됐다고 밝혔다.

항소심 판단도 같았다. 운송수입금은 모두 회사 소유라는 사측 주장과 관련해 재판부는 “실제 택시기사들은 사납금제 형태로 임금을 받아 왔다”며 유류비를 사납금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LPG 충전소로부터 받은 환급금이 유류비에서 공제돼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유류비 전가 위한 사납금 인상은 탈법”
“전액관리제 강행규정 판단에서 확장된 판결”

대법원 역시 택시발전법은 강행규정이라고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택시발전법의 제정목적과 도입 취지, 규정을 위반한 행위가 각종 행정제재 및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는 점, 택시운송사업의 공공성 등을 고려하면 택시회사의 운송비용 전가를 금지하는 규정은 강행규정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택시회사가 유류비를 부담하는 것을 회피할 의도로 노조와 사이에 외형상 유류비를 택시회사가 부담하기로 정하되, 실질적으로는 유류비를 부담시키기 위해 사납금을 인상하는 합의를 하는 것과 같이 강행규정인 이 사건 규정의 적용을 잠탈하기 위한 탈법적인 행위 역시 무효”라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여객자동차법상 전액관리제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한 기존 대법원 판결에서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대법원 판례는 단체협약이 아닌 근로계약서로 사납금제를 정했더라도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A씨를 대리한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법률원 경주사무소)는 “택시운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와 택시서비스의 질 하락을 막기 위한 법 제도의 취지를 잠탈하는 택시회사들의 위법행위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법부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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