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의 한 중학교 급식실 주방에서 조리실무사들이 급식 준비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아줌마 밥 더 주세요.”

8년간 급식실 조리실무사로 일한 우옥경(49)씨는 학생들이 이렇게 말할 때마다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제공하는 일에 누구보다 보람을 느끼고 있지만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으면 순간 멈칫하게 된다. 그래도 학생들이 “더 달라”며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도 마음 한구석에 차오른다.

학생들에게 배식을 시작하기 3시간 전. 지난 27일 오전 9시30분께 인천 서구의 한 중학교 급식 조리실에서 만난 우씨는 고사리·버섯 같은 채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있었다. 당일 식단은 고추잡채와 가리비화권, 가자미살 카레 튀김, 육개장 그리고 현미찹쌀밥과 김치였다. 우씨를 비롯한 9명의 조리노동자들은 배식 시작 1시간 전인 11시20~30분까지 1천71인분의 조리를 완료해야 한다. 조리노동자 1명이 119명의 식사를 담당하는 셈이다.

우씨는 그래도 튀김·볶음 요리 같은 주찬 당번이 아니어서 “조금은 낫다”고 웃으며 말했다. 24일 튀김 당번을 할 때에는 닭 날개만 130킬로그램을 튀기느라 오전 8시30분부터 정오까지 튀김 솥 앞에 꼼짝없이 서 있어야 했다.

메뉴가 하나둘씩 조리노동자 손끝에서 척척 음식으로 탄생하고 나면 배식을 하기 전 짬을 내 밥을 한술 뜬다. 똑같이 급식비를 내고 먹지만 보통 식사시간은 10분 정도다.

“전에 초등학교에 있을 때보다는 나은 거예요. 1천700명 식수를 10명의 조리(실무)사가 맡아서 하느라 국이나 물에 말아서 후루룩 삼키듯 먹어야 했어요.”

오후 1시20분께 배식을 마치고 난 다음, 그제야 조리노동자들도 숨을 돌린다. 하지만 30분 정도 만에 다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식판을 닦고 기물을 청소하는 ‘뒤처리’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이렇게 매일 업무스케줄이 돌아간다.

급식 조리실은 전쟁 같은 일터
단시간에 몰아치는 중노동
10분 만에 점심 ‘후루룩’

▲ 한 조리실무사가 대형 솥에서 가자미를 튀겨내고 있다. 튀김 연기가 짙다. <정기훈 기자>
▲ 한 조리실무사가 대형 솥에서 가자미를 튀겨내고 있다. 튀김 연기가 짙다. <정기훈 기자>

급식실 조리원·조리사는 전체 교육공무직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10명 중 3명(33.9%, 2021년 기준) 정도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전체 초·중·고생은 초등학교 267만2천340명, 중학교 135만770명, 고등학교 129만9천965명으로 총 415만3천75명이다. 학생수와 식수 인원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리(실무)사 1명당 111명의 식수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 식수 인원에 비해 2배 정도 높다.

유치원과 초·중·고교 무상급식이 시행되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학교급식이 교육당국의 의무이자 학생의 권리로 인식되는 과정 속에서 이를 떠받쳐 온 조리(실무)사들의 고된 노동은 정작 가려져 있었다. 조리실 노동환경은 2021년 2월 급식실 종사자 폐암이 처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고 나서부터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옥경씨도 지난해 폐 CT를 찍어보고 폐에 결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전국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급식실 종사자에 대한 폐 CT 검진을 실시했지만 그 대상은 ‘55세 이상’ 또는 ‘경력 10년 이상’으로 한정됐다. 49세 경력 8년인 우씨는 자비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로 오기 전에 일한 초등학교는 식수 인원도 1명당 170명으로 많았지만 조리실 후드·공조기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씨는 튀김·볶음 요리를 하고 나면 저녁까지 머리도 아프고 속도 메슥거렸다.

“가족들이 저한테 ‘전보다 숨 쉬는 게 편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어요. 올해 재검을 받아야 해요.”

5년 넘게 열심히 땀 흘린 결과가 ‘폐 이상 소견’으로 나타나면서 속상한 마음도 크지만 그래도 우씨는 급식실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했다.

“급식도 공부의 연장이에요. 다른 어떤 것보다 밥 먹으러 오는 게 제일 큰 즐거움이잖아요. 아이들이 즐거워하면 저희도 즐겁죠.”

 

돌봄전담사 절반은 시간제
행정업무 떠맡아 ‘공짜노동’ 내몰려
“업무 과부하는 돌봄 질 하락으로”

급식실 조리실무사가 아이들의 밥과 건강을 책임진다면, 돌봄전담사는 아이들의 시간을 책임진다.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돌봄전담사 김지인(55)씨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집에 있다면 학교엔 돌봄선생님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학교에서 교사보다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어른이면서 도움이 필요할 땐 요청을 하고, 동시에 가르침을 주는 역할을 돌봄전담사가 맡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초등돌봄교실 운영 길라잡이에 따르면 돌봄전담사의 자격 요건은 ‘유·초·중등 교원자격증 소지자 또는 보육교사 2급 이상 자격 소지자’를 원칙으로 한다. 김씨는 유아교사·보육교사 자격증만 있기 때문에 초등학생을 가르칠 수는 없다. 하지만 김씨는 돌봄교실에서 하는 놀이나 활동도 넓은 영역에서 교육의 일환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자격은 자격증보다는 마음이나 태도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돌봄 수요는 계속 확대돼 왔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2023년 범정부 온종일돌봄 수요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9~11월 초등학교 1~5학년 및 만 5세 아동 학부모 12만1천5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49.5%)이 돌봄 이용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2019년 30.2%였던 돌봄 이용 희망 비율은 2020년 41%, 2021년 45.2%, 2022년 48.4%로 꾸준히 증가했다.

▲ 어고은 기자
▲ 어고은 기자

돌봄 수요 확대에 발맞춰 돌봄전담사의 역할도 커졌지만 이들은 대부분 시간제로 일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 전체 돌봄전담사 1만2천46명 가운데 8시간을 일하는 전일제는 5천101명으로 42.3%에 불과하다. 시간제는 ‘4시간 미만’부터 7시간까지 다양하다. ‘6시간’이 4천703명(39%)으로 가장 많고, ‘4시간’이 2천23명(16.8%), ‘5시간’이 1천390명(11.5%)으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돌봄전담사들이 돌봄업무에서 파생되는 각종 행정업무에 따른 ‘공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김지인씨의 경우 지난해 7월 ‘4시간제’에서 ‘6시간제’로 시간이 확대되면서 행정업무를 떠맡게 됐다. 회계관리부터 운영계획 마련, 돌봄 수요조사, 학부모 상담, 위탁강사 채용, 봉사자 관리 같은 일들도 모두 돌봄전담사 몫이 됐다.

“6시간으로 확대되면 한숨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행정업무나 학부모 상담은 돌봄운영시간 외에 하기 때문에 ‘시간 외 업무’를 할 수밖에 없어요. 업무가 가중될수록 본연의 업무인 놀이지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최저임금 밑도는 기본급, 중년 여성 집중된 직종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닌, 중요한 업무로 인식해야”

조리실무사와 돌봄전담사는 교육공무직 임금체계에서 ‘2유형’을 적용받는다. 기본급이 186만8천원으로 최저임금 월급 고시기준(191만4천440원, 2022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8년 넘게 일한 김지인씨의 경우 세전 210만원을 받는다. 돌봄전담사는 2유형 기본급(서울은 1유형)에서 이들이 일한 시간에 비례해 월급을 받는다.

8년 경력의 조리실무사 우씨는 세전 232만원을 받는다. 조리사·조리원은 ‘방학 중 비근무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방학 때에는 학기 중일 때처럼 돈을 벌지 못한다. 우씨는 “2월에는 100만 정도 나왔다”며 “그나마 근무일이 320일로 늘어나면서 이 정도를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봄·급식 같은 업무를 하는 교육공무직은 대표적인 중년 여성이 집중된 직종이다. 교육부 2021년 교육공무직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급식실 조리원·조리사는 여성이 99.2%, 40~50대가 95.8%이다. 돌봄전담사는 여성 비율이 99.8%이고, 40~50대는 전체의 87.3%이다. 식사를 준비하고 어린이를 돌보는 일들은 모두 전통적으로 여성이 전담해야 하는 일로 간주돼 온 것과 무관치 않다.

이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저평가는 ‘비정규직’이라는 신분과 ‘여성이 하는 일’에 대한 차별이 중첩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돌봄·급식 같은 경우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동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들의 노동이 학교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급식·청소·돌봄 노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는 학교 안에서도 있고 밖에서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기 어려우니까 저임금을 받더라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와 여성이 하는 일에 대한 낮은 평가, 사회적 인식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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