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세계적인 팝가수 비욘세의 히트곡이자 여성들을 향한 힘돋우기와 연대의 메시지가 담긴 노래 ‘Run the world(Girls)’가 서울역 광장에 울려 퍼진다. 집회 현장에서는 낯선 노래지만 광장에 모인 200여명의 이주노동자와 활동가들은 흥겹게 따라 부른다.

유엔이 매년 3월21일로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일 오후 이주인권단체가 서울역에서 연 기념대회 풍경이다. 한국의 농업과 제조업을 지탱하고 있는 이주민이지만 차별받고 있다는 현실은 “세상을 이끄는 것은 여성”이라고 반복해 외치는 노래 가사 속 현실을 닮았다.

대회 한쪽에는 작은 부스도 차려졌다.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 시민모임 ‘마중’,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이 마련했다. ‘불법체류자’라는 호명에 반대하는 의미의 ‘불법인 사람은 없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스티커를 나눠 주거나 이주노동자 상담사례 등을 기록한 책자가 배포됐다.

애도의 뜻을 표하는 묵념으로 기념대회의 문이 열렸다. 국내에서 열리는 이주노동자 관련 행사에는 묵념이 빠지지 못한다. 매년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주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 포천시의 한 돼지 농장에서 10년 넘게 일하다가 사망한 태국 미등록 노동자와 최근 20여만명의 사상자를 낸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이 끝나자 참가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날 발언자는 총 11명에 달했다. 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난민, 중국 동포, 다문화가정 청소년 같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주민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난민, 대구 이슬람사원, 외국인보호소 문제 등 이주민이 겪는 다양한 차별의 범주만큼 발언의 내용도 다양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지정한 지 57년이 됐지만 차별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며 “21세기의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예노동과 마찬가지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실태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문화가정 2세인 서울 독산고 1학년 박찬빈 학생은 “우리에게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며 “차별받지 않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받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을 모아 국회에 우리의 소리를 전하자”고 호소했다.

이주민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하라는 선언문을 함께 낭독한 뒤 행진이 시작됐다. “우리는 원한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라. 국가는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만행을 당장 멈춰라.” 참가자들은 기념대회가 끝난 뒤 서울역부터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행진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