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공부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저렇게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직원으로 채용했냐.”“내가 관리비를 냈으니까 내 말을 잘 들어라.”

직장갑질119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경비·청소·관리·기계전기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면접조사하면서 밝혀진 입주민의 폭언이다. 2020년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에서 아파트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희석(사망 당시 59세)씨 사건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지만 간접고용·단기계약 탓에 계속되는 갑질에서 경비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부당한 업무지시, 폭언·폭행은 ‘일상’

16일 직장갑질119는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0월 경비대원 4명, 경비반장 1명, 미화반장 1명, 관리소장 1명, 기전반장 1명, 기전기사 1명 등 9명의 공동주택 종사자들을 면접한 결과가 담겼다. 이들은 모두 입주민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었고, 근로계약 기간은 최소 1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였다. 직원 간 괴롭힘을 경험한 이도 5명이나 됐고, 입주민에게 직접 해고를 종용받은 이는 4명이었다. 그런데 갑질에 대응한 경험이 있는 이는 단 2명뿐이었다.

업무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업무지시를 경험한 응답자는 6명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변을 본 입주민의 뒤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사과해야 했다”거나 “야간 5.5시간 휴게시간 중 1시간을 할애해 정문 근무를 하라고 시키는 입주자대표회의의 지시를 따랐다”는 사례들이 조사됐다.

이들은 폭언·폭행 같은 물리적인 갑질뿐 아니라 상시적인 고용불안에도 시달렸다. 공동주택 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여도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 인원을 삭감하거나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다. 용역회사는 입주자대표회의와 체결하는 용역계약 갱신을 위해 노동자에게 입주민의 갑질을 참으라고 지시했다. 면접조사에 참여한 청소반장 A(58)씨는 “관리비가 미집행돼 6개월 넘게 급여가 안 들어와도 흠 잡히지 않게 청소를 하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초단기 근로계약, 간접고용이 반복되는 갑질 근본원인”

직장갑질119는 공동주택 노동자들이 이용자·용역회사 갑질에 노출된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을 지목했다. 직장갑질119는 “짧은 근로계약 기간은 노동자와 입주민 간 유대감을 형성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며 “공동주택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해 대응해도 원청인 입주자대표회의에 책임을 지라는 요구는 멀고 어려운 길”이라고 설명했다.

입주민이나 관리소장의 반복되는 갑질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보다는 근본적 문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나온다. 고용안정과 관련해서는 용역회사를 변경할 때 고용승계를 의무화하는 입법적 대안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등을 통해 입주자대표회의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임득균 공인노무사(직장갑질119)는 “입주민·관리소장 등의 갑질 방지 및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고용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야만 갑질을 줄일 수 있다”며 “관리회사에 경비회사까지 있는 다단계 고용구조, 다수의 입주민과 수많은 갑에게 업무지시를 받는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너무나 쉽게 갑질에 노출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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