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

정부가 노조에 회계장부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노조에 과태료 부과와 현장조사를 예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요구에는 법적근거가 있을까. 결론은 ‘없다’이다. 정부가 내세운 법적근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14조1항 “노동조합은 조합설립일부터 30일 이내에 다음 각호의 서류를 작성해 그 주된 사무소에 비치해야 한다” 중 5호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와 노조법 27조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노동부는 이를 근거로 노조의 서류 비치·보존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회계장부의 표지·내지 등을 증빙자료로 제출하라고 양대 노총 등에 요구했다. 그런데 이 법 규정에 따라 노동부가 노조에 자료를 요구하려면 세 가지가 문제가 된다. 첫째 이 법 규정에서 말하는 노동부가 요구할 수 있는 경우가 언제인지, 둘째 노조법 27조에 적힌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이 무엇인지, 셋째 자료요구 목적에 맞는 범위인지다.

첫째, 노동청이 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경우가 언제인지 살펴보자. 노동부에는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 매뉴얼’이라는 게 있다.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노조법을 실제 집행할 때 쓰이는 행정 원칙이다. 이 매뉴얼은 지난해 발간한 것이다. 매뉴얼에는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사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노조에 대해 진정·고발·청원 등이 있을 경우, 둘째 노조의 조직분규가 있어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경우, 셋째 노조의 회계·경리 상태나 기타 운영에 대해 지도할 필요가 있는 경우다. 주로 특별한 ‘사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번에 노동부가 자료요청 근거로 내세운 ‘서류 비치·보존 이행 여부’는 없다. 즉 아무 때나 노동부가 노조의 회계장부 등의 제출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 노동부 매뉴얼 내용이기도 하다.

둘째, 노동부가 노조법 27조에 따라 노조에 자료 요청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위 규정상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은 노조법 14조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노조법 14조에 따라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노조가 비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해서 해당 장부와 서류를 노조법 27조에 따라 정부가 제출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셋째, 정부는 노조가 노조법 14조에 따른 비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는데 그 목적을 위해 회계장부 등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 요구자료를 보면 정부가 밝힌 목적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려운데, 구체적으로 조합원 명부와 규약, 임원의 성명·주소록, 회의록과 함께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7종(예산서·결산서·총수입원장 및 총지출원장·수입 또는 지출결의서·수입관계장부 및 증빙서·지출관계장부 및 증빙서·자체회계감사 관계서류) 등 모두 11종이다. 이런 세세한 자료까지 왜 요청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정도의 요구는 노조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기에 이르기 때문에 부당하다.

정부는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운영과 재정에 관한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해 조합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노동조합의 자주성·민주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부가 강조하는 노조의 “투명한 회계”와 관련해서는 직접 이해당사자인 조합원에게 장부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이미 별도로 보장(노조법 26조)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그것과 별개로 다른 조항(노조법 27조)에 의해 회계장부를 열람할 권리를 갖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정부는 자료요구와 관련해 법원 판례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해당 판례는 위 노조법 26조에 따라 조합원이 직접 노조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정부가 노조에 요청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반대로 대법원은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조합원이 아닌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외부반출·복사를 금지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노동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법 26조 및 27조의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의 범위에 14조에 규정된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가 포함되는지 여부는 현행 노조법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위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행정기관에 대한 자료 제출도 의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입법조사처는 정부의 요구가 국제노동기준에도 어긋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국제노동기구(ILO) 87호 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위반이라는 것인데 이 ILO 협약은 국회에서 비준돼 국내법적 효력이 있다. 입법조사처는 “ILO 협약 87호는 노조가 자유롭게 사업을 수립할 권리와 행정기관의 노조 권리행사 방해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며 “노조 운영에 대한 감독 조치는 남용을 방지하고, 노조 구성원들이 그들 자금(조합비)의 잘못된 관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에만 유용할 수 있으며 당국에 의한 간섭이 위험을 수반할 수 있는 경우에는 협약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이번 정부의 요구는 국제기준에 따를 때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노조가 정부 보조금을 받으니까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는데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업과 종교단체에는 전혀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경총의 회원사 명단과 회비 사용 영수증을 공개하라는 셈이고 교회 신자들의 헌금 사용내역을 제출하라는 셈이다. 대한상의·중기중앙회·전경련은 결산보고서를 공시하고 있지만 정부가 노조에 요구하는 수준의 회계 관련 서류를 공개하고 있지는 않다.

이와 같이 헌법과 법률, 입법조사처의 입장, 국제기준, 다른 단체들과의 형평 어디에도 맞지 않는 정부의 이번 요구는 철회돼야 한다. 정부의 진짜 목적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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