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그 현장실습 말이에요. 나는 처음에는 무슨 대학병원 인턴십 같은 건가 했어. 왜 실전에서 기술을 배워야만 완성되는 교육이라는 게 있으니까.”

영화 <다음 소희>에서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3 현장실습생 김소희(김시은 분)의 사건을 쫓던 형사 오유진(배두나 분)이 동료에게 말한다. 극 중 오유진의 질문은 정주리(43·사진) 감독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

“(홍수연양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처음을 생각해 보면 아주 단순한 질문이 하나였어요. 왜 고등학생이 이런 곳(콜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지? 왜 학교에서 이런 곳에 (아이들을) 보내지? 왜 이런 일이 교육시스템에서 벌어지고 있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질문이요.”

영화는 2017년 전북 전주 한 콜센터에서 고객의 해지 요청을 방어하는 부서에서 일하던 고3 현장실습생 홍수연씨의 죽음을 모티브로 한다. 정 감독은 2020년 홍수연양의 죽음을 처음 접했다. 영화 제작사가 홍수연양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에 관한 이야기로 온 나라가 들썩였던 2017년 1월에 있었던 죽음이었다. 모르고 지나갔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사무실에서 정주리 감독을 만나 <다음 소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전선서 일하는데 대체자로 취급
한국사회 모습이라 생각”

- 홍수연씨의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사건이 있었던 당시는 2017년 초였어요. 대통령 탄핵 심판이 한참이던 중이라 저도 모든 관심이 거기에 집중돼 있었어요. 이런 일이 그 당시에 있었구나 했죠.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니 모르고 지나갔을 법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 일은 나랑 그렇게 거리가 먼 일인가. 고등학생이 일을 하다가 얼마 안 돼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뉴스 하나로 나오고 말 일인가. 결국에 나랑 상관없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한 죽음이 아니라 비슷한 죽음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는데 나도 이 사회 구성원이기도 하니까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적인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영화는 고3 현장실습생 소희의 시점과 소희의 죽음 뒤 그 이유를 쫓는 형사 유진의 시점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이야기는 현장실습생 소희에 머물지 않는다. 하루 콜수(통화 건), 해지방어율과 상품 판매량 등 실적에 따라 노동자에 등급을 매기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콜센터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다.

- 콜센터 상황 묘사가 너무 실감나더라고요. 어떻게 취재하신 건가요.
“코로나19 초기에 구로디지털단지 콜센터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잖아요. 그때 좀 충격을 받았어요. 콜센터에서는 진짜 누구 하나 감기에 들면 바로 온 직원들이 연이어 감염이 되는 그런 상태구나, 하고 인지하게 된 거죠. 기존에 (기자들이) 콜센터 관련해서 취재했던 것도 살펴보고 노동자 분들이 인터뷰한 것을 보고 좀 구체적으로 알게 됐어요. 업무 환경도 열악하지만 콜 하나 하나가 다 실적이 되고 평가 되는 업무시스템에 대해서요. 그러니깐 받는 콜, 상대하는 고객마다 다 다를 텐데 그것은 다 무마되고 실적으로 평가되고 하는 것이 한국 사회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상담업무는) 고객을 최전선에서 상대하는 일이니까 훨씬 더 잘 대접해야 할 일 같은데 조직 내에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노동자로 대하는 상황이 말이에요.”

▲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유진 같은 사람이 현실에도 있었다면….”

- 시나리오 집필 전까지는 유족과 만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고 영화는 허구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 충실하게 (영화 속)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실제 사건에서 출발했고 사건 자체를 면밀히 들여다보기는 했지만요. 이미 취재해 놓은 결과물들이 ‘이렇게 많았는데도 내가 전혀 몰랐나’ 싶을 정도로 많았고요. 시나리오를 마치고 영화로 제작하기로 했을 때는 홍수연씨 아버지 홍순성씨를 찾아뵀어요. 시나리오도 보여드리고, 말씀을 나눴습니다.”

- 영화 VIP 시사회 때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단체 ‘다시는’과 만났는데, 어떤 대화를 나누셨나요.
“걱정을 너무 많이 했어요. (과거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너무 힘드실 텐데. 화면으로 상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고통이니까요. 다행히 담담하게 잘 풀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다만 ‘우리에게 이런 경찰은 없었다’는 것이 속상했다고 하셨어요. 이런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국가로 대변되는 수사기관에서는 하나도 도움을 받지 못했는데 ‘유진’이라는 인물이 극 중 해나가는 일들은 현실에서는 유가족분들이 하는 일이고 노동계에서 하는 일들인데 영화에서 이렇게 표현되니 참 씁쓸하기도 하셨을 거 아녜요? 그런 말씀도 해 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유진과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라도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하셨고요.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드셨던 것 같아요.”

- 영화를 보며 제2의 소희이며 언제든 ‘다음 소희’가 될 수 있는 소희의 친구들이 기억에 남아요. 조금씩 다른 외피를 쓰고는 있는데 세상 끝에 내몰려 있는 모습 같았어요. 소희 그리고 소희의 친구들, 아이들은 계속 죄송하다고 말하고 참다 욱해 터뜨려 버리는데요. 소희가 죽었을 때도 어른들은 “몰랐어요”만 반복할 뿐 죄송하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의도한 것인지 궁금해요.
“정작 중요한 책임이 없는 사람들, 소희의 친구들이나 어머니·아버지들이 가장 크게 죄책감을 느껴요. 만약 내가 그때 소희 옆에 있었더라면, 내가 그때 소희를 잡았더라면, (혼자 두지 않고) 기어이 택시를 태워 집에 보냈더라면 하고요. 정작 책임을 따져 물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책임을 부인하기 바쁘고, 심지어 피해자 탓을 하고, 소희의 죽음에 뭔가 다른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되게 사회에 만연한 모습이잖아요. 우리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때도 있고. 심지어 영화를 보면서도 관객들도 소희를 보면서 ‘빨리 그만두지’ 하고 생각하고요. 그것조차도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학교 선생님이 다르게 반응했다면,
소희의 선택이 달라졌을 수 있지 않을까”

- 소희는 한 차례 자살 시도 후 엄마에게 “일을 그만두면 안 되냐”고 물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소희의 SOS를 듣지 못해요. 그렇게 연출한 의도가 있나요.
“그 대목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실제 유가족에게 너무 죄송스러운 대목이에요.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소희를 포함해 모든 인물이 허구의 인물이란 점을 꼭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또 ‘소희는 왜 한 번 더 말하지 않았을까’ 소희의 마음을 헤아려 주셨으면 해요. 엄마·아빠에게 말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아빠의 고단함, 처지를 평생 함께 살았으니 너무나 잘 알 것 아니에요? 그래서 혼잣말하듯이 뱉은 한마디였을 것이고요.

마지막 기회라면…. 저는 학교였다고 생각해요. 소희가 담임 선생님과 대면하고 마주 본 상태에서 유일하게 한 말이 있어요. ‘선생님은 내가 무슨 일 하는지 알아요?’ 어쩌면 거기서 선생님이 좀 더 다르게 반응하셨더라면 소희와 다른 대화가 더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소희를 살릴)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면 거기라고 생각해요.”

- 형사 유진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벽에 부딪혔을 때 수사를 마무리해요. ‘막막하다’는 감정이 들기도 하는데, 반복되는 현장실습생 사고를 막기 위해 가장 우선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학교에서 애들을 이런 일터에 보내도 되나? 영화를 보면 누구라도 아니라고 생각을 할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교육의 형태로 벌어지는 일이니, 그럼 교육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분명 문제가 있으니 이렇게 된 것일 테니까요. ‘직업계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떤 형태로 시작해야 하는가.’ 여기에서부터 다시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영화 <다음 소희>의 영향으로 지난 22일 국회에서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직업교육훈련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에는 근로기준법 준용 범위를 직장내 괴롭힘 금지, 폭행의 금지 등으로 확대하고 실습업체가 현장실습생에게 폭행·협박·감금 등의 부당한 대우를 할 경우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 담겼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젊은 관객들이 많이 봐 줬으면”

- 영화가 특별히 닿기를 원하는 관객이 있나요.
“어린 친구들, 젊은 친구들도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운이 좋게도 외국 관객들을 많이 만났는데 감동적인 것은 젊은 친구들이 영화에 너무 공감해 주더라고요. 그들이 한국의 콜센터 상황을 어떻게 알겠어요. 대부분의 나라에는 이런 교육제도가 없을 테니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너무나 공감을 해 주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생각해 주더라고요.

만들어진 구조 안에 내던져진 친구들인데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전체 구조나 사회, 시스템이 본인들을 압박하고 있고 거기서 그다지 다른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 암담한 상황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 영화에 젊은 관객들은 훨씬 더 공감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함께 생각하면 좋겠어요.”

홍수연양의 죽음 이후에도 고3 현장실습생들은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최소한의 안전도 확보되지 않은 일터에 값싼 노동력으로 제공됐고, 목숨을 끊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일터의 안전을 책임지고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어린 학생들의 죽음은 반복됐다. 극 중 형사 유진은 소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회를 향해,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란 사람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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