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3. 1. 12. 선고 2021구합71748 판결

▲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1. 사건의 개요

CJ대한통운(원고)은 화물운송업을 영위하는 회사로서, 원고의 택배 업무에 종사하는 택배기사는 약 1만8천명이다. 그중 원고와 택배화물 운송 위수탁계약을 체결한 지역 택배 대리점주와 (재)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택배 업무를 수행하는 택배기사(대리점 택배기사)는 약 1만7천명이다. 원고는 작업요청서 확인 및 배송출발-배송완료-집화출발-집화완료 등 각 단계의 화물처리 정보 입력이 가능하고 업무 매뉴얼이 등록돼 있는 ‘운수대통’이라는 온라인 시스템을 대리점 택배기사들에게 제공했다. 대리점 택배기사가 운수대통에 입력한 정보는 원고가 운영하는 전산시스템인 ‘엔플러스(NPlus) 시스템’으로 전송돼 택배기사별 처리 물량, 배달률·회수율·스캔율 등 각종 지표로 기록됐다. 이 시스템을 통해 기록된 지표들을 토대로 대리점 택배기사들의 지급수수료 및 추가 인센티브 등이 산정됐다.

대리점 택배기사들로 조직된 전국택배노동조합(피고보조참가인)은 ‘① 서브터미널에서 배송상품 인수시간 단축 ② 서브터미널에서 집화상품 인도시간 단축 ③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 ④ 주 5일제 실시 ⑤ 급지수수료 인상·개선 ⑥ 사고부책 개선’ 6가지 의제에 대해 원고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는데, 원고는 참가인에게 ‘원고는 대리점 택배기사들의 사용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이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2. 쟁점 및 원고 청구의 요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2호는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81조1항3호는 ‘사용자’로 하여금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와의 단체협약체결 기타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는바, 원고 CJ대한통운이 참가인 전국택배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 단체교섭 당사자인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의 취소를 청구한 원고는 “노조법 81조1항3호의 사용자는 근로자와의 사이에 그를 지휘·감독하면서 그로부터 근로를 제공받고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를 말하는데, 원고는 참가인 노동조합 소속 대리점 택배기사들과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지 아니하므로 대리점 택배기사들에 대한 관계에서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3.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 다면적 노무제공관계의 확산으로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도 다면적으로 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배·결정권을 오롯이 갖지 못하는 원사업주(하청)에게만 단체교섭의무를 부담시킬 경우 근로자의 노동 3권은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는 점 ㉯ 원사업주(하청)는 단체교섭능력이 없거나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하청근로자가 하청을 상대로만 노동 3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원청사업주의 복합적 노무관계 형성이라는 경영상 방침에 의해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 3권의 효력이 일부 중단되는 것과 같은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 ㉰ 노조법상 사용자 정의 규정이 헌법상 기본권인 근로자의 노동 3권을 제한하는 법률 규정이라고 보기는 도저히 어렵고, 그러한 제한이 헌법 37조2항의 기본권 제한 사유인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는 점 ㉱ 노조법상의 ‘사용자’에는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할 권한을 갖는 사업주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노조법의 입법 목적과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부합하는 합헌적 법률해석이라는 점 ㉲ 원청사업주를 노조법상 ‘사용자’로 해석하지 않을 경우 하청 노조의 쟁의행위시 원청사업주는 대체근로를 사용해 하청근로자의 쟁의행위를 무력화할 수 있는데,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이나 결정권을 갖는 원청사업주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쟁의행위에 대한 대항수단을 허용하는 것으로서 단체행동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점 ㉳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의 해석 문제는 단결권과 관련한 지배·개입 행위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전반적인 노동 3권 보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노조법 81조1항이 부당노동행위의 유형별로 사용자의 개념을 달리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단체교섭 거부·해태 행위(3호)와 지배·개입 행위(4호)를 달리 판단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노조법 81조1항3호의 사용자에는 같은 항 4호의 사용자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자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밝힌 후, 대리점 택배기사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거나 지배하고 있는 원고가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4. 판결의 의의

첫째, 헌법상 기본권인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의 본질을 중심에 두고 합헌적으로 법률을 해석했다.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하청근로자는 (원청사업주와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원청사업주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쟁의행위를 하는 등으로 그 향상을 도모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는 헌법이 노동 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상판결은 “노조법상 ‘사용자’와 관련한 노동 3권의 제한 해석은 목적의 정당성이나 방법·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 과잉금지원칙에 비춰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법률유보원칙·과잉금지원칙 등의 기본권 제한의 헌법상 원칙들을 위반할 소지가 크다”며, 원고의 주장이 정당한 이유 없이 헌법상 노동 3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주장임을 명확히 선언했다.

둘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불가분의 통합적 기본권임을 확인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실질적 지배력설’을 토대로 노조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논한 기존 판례(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가 단결권을 침해하는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노조법 81조1항4호)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상판결은 ‘사용자’ 해석 문제는 단결권뿐만 아니라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명시한 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사업주를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대체근로가 가능해져 하청근로자들의 단체행동권 자체가 완전히 무력화된다는 우려를 제기했는 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은 함께 보장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봤다. 최근 중노위는 원청으로서 대우조선해양의 단체교섭 의무는 인정하면서도 ‘하청노조의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협약 체결권 및 단체행동권은 인정될 수 없다’고 판정했는데, 노동 3권을 함부로 쪼개고 형해화하는 이러한 해석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은 의미가 크다.

셋째, 사용자의 단체교섭 의무가 법률상 의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의무라는 점을 시사했다. 대상판결은 “원청사업주의 복합적 노무관계의 형성이라는 경영상 방침이나 사업구조 설계에 의해 노동 3권의 효력이 일부 실질적으로 제한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되는 이상 그 원인과 책임은 원청사업주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면서, 원청사업주인 원고에게 단체교섭 의무의 이행을 명했다. 헌법상 노동 3권은 그 본질상 사용자의 수인의무 이행을 전제로 해서만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 그런데 의무 당사자인 사용자가 ‘다면적 노무제공관계’의 형성 등 일부 ‘경영상 조치’를 취했다고 하여 그 의무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본다면, 노동 3권은 속빈 강정이 돼버리고 만다. 대상판결은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라면, 구체적 ‘법률’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와 상관없이 ‘헌법’상 노동 3권의 요청에 의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라고 본 것으로서, 단체교섭 의무의 헌법적 중요성을 강조한 판결이다.

5. 결어

대상판결은 노동자들의 노동을 수취해 경제적 이득을 보면서도 (경영상 조치라는 미명하에 다면적 노무제공관계를 형성하며) 단체교섭 의무 등 노동 3권 수인의무는 회피하려는 ‘원청사용자’들에게, 감탄고토(甘呑苦吐)의 행태를 중단하라고 일갈했다. 지난해부터 ‘노조법2·3조 개정 운동본부’는 노조법 2조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진짜사장책임법’ 입법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바, 대상판결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진짜 사장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의 정당성을 확인한 판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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