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연말 연초 각종 사건·사고, 그로 인해 갑작스레 생을 달리한 이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최근 공중이용 시설에서 발생한 2건의 사건이 필자의 눈에 띄었다.

첫 번째는 지난달 29일 일어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참사였다. 이 사고로 5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4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방음터널을 지나던 5톤 폐기물 운반용 트럭에서 불이 나 총길이 830미터의 방음터널 중 600미터 구간이 불에 타 대형참사로 이어졌다. 사고 조사과정에서 ‘터널 진입 차단시설’의 정상 작동 여부, 값싼 가연성 소재 사용과 민자도로 관리 부실 문제, 화재가 발생한 차량의 기존 사고 이력, 지난 7월에 실시된 고속도로 안전점검에서 이상없음 진단을 받은 것 등이 밝혀지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이달 3일 발생한 서울 신도림 인근 육교의 주저앉음이다. 서울지하철 도림역과 신도림역을 연결하는 104.6미터에 달하는 아치형 보도형 육교가 휘어져 내려앉은 사건이다. 다행스럽게 인근을 지나던 시민들의 제보로 긴급히 통행이 차단돼 보행자 사상사고 같은 대형참사로 번지진 않았으나, 멀쩡하던 보행통로가 설치된 지 6년 만에 주저앉은 기막힌 사건이다. 뉴스를 통해 접한 육교의 모습은 지탱하던 지지대 시멘트와 난간 철제가 일부 파손된 상태로 반대 방향인 아래로 엿가락처럼 휘어져 내린 상태였다. 해당 시설은 1년에 두 차례 정기 안전점검을 받아 왔고, 지난해 10월28일∼12월15일 실시한 점검에서는 A등급(이상 없음)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교량전문가들은 구조결함 등을 원인으로 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서로 다른 사건을 접하며 필자는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대안으로 사업장뿐 아니라 공중이용 시설 등 모든 영역에서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렸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 중 하나인 그 위험성평가 말이다. 사실 별다른 대안도 아니고, 없었던 것도 아닌 유명무실한 제도를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필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대안으로 언급하는 이유는 위험성평가가 본래의 취지와 달리 현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위험성평가가 중요하다는 강조에만 그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위험성평가는 2013년부터 모든 일터에서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사업주의 의무로 제도화됐다. 일터의 각종 유해·위험이 작업자들의 부상이나 질병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종 유해·위험 요소에 등급을 매기고, 유해·위험이 크다고 여겨지는 것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해 위험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앞서 쓴 칼럼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이 과정이 사업주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서류작업이 하나 더 부가된 것으로만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유해·위험에 항상적으로 노출돼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을 위험성평가에 참여시키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관리자들을 중심으로 형식적으로 위험성평가를 실시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위험성평가가 진행된 사업장에서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현실로 나타났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나 건강상의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미리 예측해 예방조치를 하라는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이런 현실적 조건이 있다 보니, 정부가 최근 위험성평가를 핵심으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제출해도 그 취지에 대한 공감보다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업주에게 맡겨 놓은 위험성평가를 통해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확립하라고 하니, 사실상 정부가 감독행정까지 손 놓고 방치하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높았던 것이다. 이런 현실적 상황 때문에 그동안 위험성평가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뼈아프게 곱씹어야 한다.

따라서 위험성평가를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실시한 위험성평가에 대한 평가와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 단순히 위험성평가 실시 여부에 대한 접근을 넘어, 사업장의 위험성평가 진행 과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위험성평가를 사업장에 맡겨 두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위험성평가 실행역량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접근도 필요하다. 실시 주체들에 대한 실무교육 수준이 아니라, 사업주가 취지를 이해하고 안전보건관리체제를 작동시켜 구현할 수 있도록 필수 교육이수 같은 의무를 부가하는 것 등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고안해 내야 한다. 또한 가장 많이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정비와 보수 작업이 실제 위험성평가 항목에는 빠져 있는 현실 등을 점검하고, 이를 반드시 포함시켜 기존의 위험성평가가 포괄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하게 접근한다. 개인적인 문제부터 구조적 문제까지 아울러 ‘원인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다한다. 이것을 사후가 아닌 사전에 실시하는 것이 위험성평가다. 늦었지만 제대로 정착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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