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청사 전경. <홍준표 기자>

뇌출혈로 산재가 인정돼 4년여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가 간암에 걸린 뒤 사망했더라도 기존 승인 상병과 업무상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사망한 시설관리업체 노동자 A(61)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의 항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법원 “기존 질환이 사망 원인으로 작용”

A씨는 2014년 11월 회사의 공사현장 관리 본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쓰러져 뇌출혈을 일으켰다. 뇌출혈은 사지마비 증상까지 이어졌고 약 4년간 병원에서 식물인간 상태로 지냈다. 그러던 중 2018년 6월 간암을 진단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A씨 아내는 뇌출혈이 사망에 영향을 줬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자문의 소견을 토대로 부지급 결정을 했다. 자문의는 “간암은 개인질환인 만성간질환의 합병증으로 발생한 것이므로 기존 승인 상병과는 의학적 인과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유족은 이에 불복해 2021년 8월 소송을 냈다. A씨 아내는 “뇌출혈 약물치료 등으로 남편의 간 수치가 급격히 상승했고, 장기간 와병으로 인해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다”며 업무상 재해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식물인간 상태가 기대여명 감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기존 승인 상병인 뇌출혈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A씨 사망의 원인이 간암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소화기내과 감정의 소견이 결정적이었다. 감정의는 “A씨 간 종양이 말기 상태로 보기 어렵고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 간암에 의한 악화 과정과는 상이하다”는 소견을 냈다. 뇌출혈 이후 B형 간염에 대한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혈액검사에서 간기능이 정상 범위에 있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식물인간 합병증 폐렴, 사망 원인 가능성 높아”

그러면서 ‘식물인간 상태’가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뇌출혈이 발병한 이후 사망할 때까지 전신마비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생명 유지를 위해 타인의 전적인 도움이 필요한 와상 상태에 있었다”며 “이러한 경우 대부분 환자가 합병증을 겪게 되고 폐렴·폐색전증 등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A씨는 폐렴이 의심됐고 호흡곤란 증상이 지속해서 악화하다가 사망했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게 주로 나타나는 합병증인 폐렴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취지다.

간암이 말기 상태가 아니었다는 부분도 작용했다. 재판부는 “A씨가 기존 승인 상병으로 인한 전신마비와 신체기능 저하 상태에 있지 않았다면 적극적인 간암 치료가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간암 진단 이후 불과 1개월여 만에 사망한 점 등을 종합하면 위험요인이 복합적·중첩적으로 작용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간암이 아니더라도 사망 위험이 높았을 것으로 봤다. 재활의학과 감정의는 “뇌출혈 이후 식물인간 상태에서의 기대수명은 2~5년 정도”라며 “뇌출혈 후 생존하더라도 심각한 기능 손상 상태로 지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소견을 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A씨에게 간암 등이 발병하지 않았더라도 기존 승인 상병으로 인해 기대여명이 상당히 단축되고 심각한 신체 기능이 지속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기존 승인 상병과 실제로 사망하게 된 상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더라도 기존 승인 상병으로 장기간 와상 생활을 했다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데에 이번 판결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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