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대책 중 하나로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시했다.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달 17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노동자를 만나 “건설현장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건설안전특별법 논의를 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건설사와 국민의힘은 모르쇠한다.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건설안전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를 보내왔다.<편집자>

▲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장(군산대 명예교수)
▲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장(군산대 명예교수)

심각한 건설사고를 방지하려면 건설안전특별법 제정만이 답이다.

건설사고는 근로자와 시민의 희생을 넘어 사회적 불안 요소로 높아진 국격까지 실추시켜 왔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범국가 차원에서 국민생명 지키기에 진력했지만 건설 중대재해는 반복되고 있다. 기존 제도로는 건설사고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없음이 명확하다.

산재통계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 최근 5년 동안 506명(2017년), 485명(2018년), 428명(2019년), 458명(2020년), 417명(2021년)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전체 근로자의 7%에 불과한 건설근로자가 사고사망자수에서는 매년 절반을 차지해왔다. 매일 두 명 이상이 사고로 사망한 셈으로, 사고로 인한 사망 위험이 일반산업보다 13배나 높다. 질적 지표인 사고사망 만인율은 1.58(2016년), 1.66(2017년), 1.65(2018년), 1.72(2019년), 2.00(2020년), 1.75(2021년)이다. 2021년은 2016년 대비 14.4%가 증가한 것이다. 구의역 사고나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에서는 단 한 명의 희생에도 공분을 자아냈는데, 건설업에서는 이천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근본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안전의 제일 원칙은 ‘누구의 책임인가’부터 명확히 하는 것이다. 건설사고를 방지하려면 발주자를 비롯한 건설사업 참여자의 역할에 따라 책임을 공정하게 규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러나 직접적 고용관계를 전제로 한 제조업 태생의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40여년의 역사에도 다수 이해당사자가 원인을 제공하는 건설사고를 방지하는 데는 근원적 한계가 있었다. 건설기술 진흥법 등 건설 관련 법령 역시 최고의사결정권자인 발주자의 책임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채 출발해 건설사업 참여자의 역할에 따른 책무를 공정하게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근본 원인이 건축주의 과욕이었지만 30여 년이 지나도록 근본이 고쳐지지 않았다.

정부는 이러한 근본적인 결함을 해소하고자 건설사업 참여자의 역할·책임·권한을 합리화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부처 합동으로 국민에게 약속했다. 건설안전특별법의 핵심은 기존 법령에서 누락된 건설사업 참여자의 역할에 따른 책임을 공정하게 규정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발주자의 과욕으로부터 건설기업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러나 두 번의 발의에 이어 광주 학동 참사, 광주 화정동 붕괴사고 등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특별법 제정은 지체되고 있다.

안전은 모두의 공동 가치다. 노동자 단체가 주장하면 반기업적이고 사용자 단체가 주장하면 친기업적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정 취지대로 이 법 제정을 촉구해야 할 수혜자는 건설기업인데도 탄원 수준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직접적 규제대상이 아닌 노동자 단체인 노동조합이 나서서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쉬운 점은 이 법 발의 시점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벌칙에 대한 부담감이 고조된 때로서 법의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전에 거부감이 앞섰다는 것이다. 입안 과정에서 건설공사의 범위가 실무와 다르게 전기·통신·소방 등이 빠지고 근재보험 비용의 부담 비율 등 부차적인 요소들이 이 법을 거부할 명분이 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또한 도급·용역·위탁시 원청의 위험 전가를 방지해 종사자인 건설현장의 근로자까지 안전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이 법은 건설사업의 다수 이해당사자에 대해 구체적인 책임을 규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조차 이 법의 해설서 등에서 발주자를 건설도급의 책임으로부터 면책시켜 법의 취지를 역행하고 있다.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저서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에서 한 국가의 흥망은 지리‧역사‧인종 등의 차이가 아니라, 그 나라의 ‘제도’가 착취적인지 포용적인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동일한 맥락으로 건설산업 현장이 사고가 빈발하는 구조적 위기에 처한 것도 제도가 불공정한 책임 체제이고 착취적이기 때문이다. 건설업이 건설근로자의 생명을 담보로 유지돼 왔다고 볼 수 있다.

건설기술 진흥법 중 안전 규정을 분리해 만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은 참여자 책무에 한계가 있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최근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각지대를 메꾸고 연결함으로써 형식적이었던 기존의 건설안전 관련 제도를 실효적으로 작동하게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안전책무의 합리적 분담으로 모두가 상생하는 포용적 건설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건설안전특별법은 안전을 넘어 건설산업을 구조적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벌칙을 회피하려다 건설산업이 상생으로 동반성장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소탐대실을 경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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