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주최로 지난 10월20일 서울 양재동 SPC본사 앞에서 열린 SPL 평택공장 산재 사망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기업이 안전보건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벌률(중대재해처벌법)이 기대와 우려 속에 1월27일 시행됐다.

법 시행 이틀 만에 삼표산업 경기 양주 채석장이 무너져 3명이 숨졌다. 법 시행 이후 현대차그룹에서만 9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DL그룹에서 6명, 공공기관인 한국철도공사에서도 4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자동차부품 회사와 에어컨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는 독성 세척제를 사용해 노동자 29명이 급성중독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는 줄지 않고 하루에 2명꼴로 목숨을 잃고 있다.

아직 이 법에 따라 처벌된 사람도 없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은 아직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부는 이달까지 217건을 수사했는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넘긴 사건은 31건에 그친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정부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산재사망 사고 감축은 더 이상 어렵다”며 법령 퇴행을 예고하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논란의 출발은 기획재정부다. 주무부처가 아닌 기재부는 별도 연구용역을 실시한 뒤 법안을 무력화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된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방향’ 문건을 만들어 고용노동부에 전달해 ‘월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건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치사죄(7년 이하)보다 훨씬 강화된 법정형(1년 이상, 최대 45년)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고의 또는 반복적 의무위반인 경우로 한정(1안)하거나, 경영책임자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2안)하고 경제벌(과징금)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사실상 없애겠다는 취지다.

노동부는 올해 안에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며 법령 개정에 나섰지만 잇단 중대재해로 여론이 악화하자 눈치를 보는 중이다. ‘처벌’ 대신 ‘자율’을 강조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내놓고 2026년까지 사고사망 만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기업 자율에 안전보건관리를 맡긴 로드맵은 과연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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