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번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당시 정부가 밝혔던 것처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결이라는 노동개혁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 아닐까요?” 지난 27일, 사내하청 노동자 479명이 원청 현대차와 기아를 상대로 불법파견을 주장하면서 근로자지위확인을 구한 소송에 대법원 선고가 있던 날 한 언론사 기자가 한 질문이었다. 이에 순간적으로 나는 “아니다”는 말부터 쏟아 내고 싶었는데, 간신히 참아 내면서 이번 판결의 의의와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문제를 설명했다. 원청 정규직의 고용보장과 고임금이 문제라면서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정부의 노동개혁 방안에 동의할 수 없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임금 등 처우 수준을 삭감하는 것을 통해서 사내하청·비정규 노동자의 고용 등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사용자 자본의 주장을 받아쓰기한 것에 불과하다. 법은 파견근로 등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한 것인데, 이를 위반해서 사내하청 등을 통해서 비정규 노동자를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결코 원청 정규직에 대해서 고용과 임금 등 처우를 보장해 준 것이 문제라고 대한민국 법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오늘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 등 처우의 문제는 사용자 자본이 그들을 열악하게 사용하는 데 있다. 현대차·기아에서 원청 사업주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해 왔다고 대법원이 판결한 것이니, 법대로 정규직 노동자로 인정해서 고용과 임금 등 처우를 보장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지 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탓할 일이 아니다.

2. “컨베이어라인의 직접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물류공정, 1차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2차 업체까지도 사내하청이라면 불법파견이라고 대법원이 판결했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대법원 판결 직후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주체의 기자회견장에서 원고들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리했는데, 물류공정과 2차 업체에 종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까지도 불법파견이라고 인정받았다. 그동안 불법파견 소송에서 피고 원청 사업주들은 직접생산공정이 아니라면서, 1차 협력업체가 아니라면서 파견이 아닌 도급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현대차·기아뿐만 아니라 현대제철 등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주장하면서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를 구하는 사건들에서 피고측이 반복해서 해 왔던 것이다. 직접생산공정, 1차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다름 없이 원청 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고서 원청 사업주를 위해서 사용함에도 컨베이어라인의 직접생산공정이 아니라고 해서, 1차 업체가 아닌 2차·3차 업체인 사내하청업체라고 해서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파견법은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는 것이라면 근로자파견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2조1호). 종사 공정을 따져서, 원청 사업주와 직접계약한 업체인지를 따져서 달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으니, 너무도 당연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현대차와 기아 등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다. 이번 판결을 통해서, 제철소와 전기·전자, 화학 등 이 나라에서 현대차와 기아와 같은 방식으로 행해지는 사내하청의 경우는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볼 수가 있다.”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날 대법원 판결이 나온 현대차와 기아를 넘어서 사내하청 방식으로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모두가 문제 된다고 강조하고 싶었다. 현대차와 기아와 마찬가지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사업장은 모두가 불법파견에 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이 나라에서 현대차와 기아 같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불법파견은 근절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부와 검찰 등 수사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사내하청을 사용하는 원청 사업주들에 대해서 파견법 위반 행위를 수사해 엄격한 법집행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3년 현대차 사내하청노조가 조직된 직후부터 수도 없이 불법파견을 고소·고발했지만, 아직까지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사업주를 위해서 일한다. 원청 사업주는 사내하청업체와 도급계약 등을 통해서 그 노동자들을 자신의 사업에 사용한다. 이걸 모르는 자가 있을까. 당연히 불법파견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를 규제하는 파견법은 제대로 집행돼야 한다. 그것이 국가 권력의 일인 것인데, 사내하청이라는 불법파견이 당당히 행해지고 있다. 참으로 뻔뻔한 사용자 자본이 아닐 수 없고, 낯부끄러운 법집행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확인한 대로 사내하청 방식에 의한 불법파견에 대해서 오늘이라도 법집행이 이뤄지기만 한다면, 노동부와 검찰 등이 제대로 수사 등을 한다면 얼마든지 불법파견이라는 원청 사업주들의 불법과 범죄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에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3. “현대차그룹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교섭의 장으로 나와라.” 이것은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금속노조가 기자회견문을 통해서 요구한 것이다. 사내하청을 통해서 파견법을 위반한 불법과 범죄 행위를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대기업이 20년 이상을, 그것도 대규모로 자행해 온 것이니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는 노조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2003년 현대차에서 비정규직노조가 조직돼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원청 현대차가 사용자로서 교섭해야 한다며 교섭을 요구해 왔으나, 현대차는 사용자가 아니라면서 거부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현대차와 기아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파견법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의 근로자로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니 더는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교섭을 거부할 수는 없게 됐다.

4. “불법파견 중단하라! 비정규직 철폐하자!” 이날도 어김없이 외쳤다. 이번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선고된 현대차와 기아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0년째 외쳐 왔던 것이다. 이 구호와 함께 현대차와 기아의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현대차와 기아를 넘어서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비정규 노동자의 요구요, 투쟁의 구호였다. 한 사업장의 투쟁에서 시작됐지만 대한민국 비정규직 투쟁의 외침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봤다.

“불법파견 중단하라!” 이 불법파견을 중단하는 요구는 당연한 걸 요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용자들이 파견법 위반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당연히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굳이 하라 말라 할 것도 아닌데 말라고 하는 것이라서 괜히 그걸 외쳐서 입만 아프게 되는 것 아니겠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앞에서 본 것처럼 이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으니 피해 노동자들이 법을 지켜 달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 당연한 것을 법적으로 확인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더는 노동자들이 외치지 않아도 돼야겠는데 과연 그럴 것인가.

이에 대해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구호는 이 나라 노동자의 결의고 투쟁과제를 말하는 것이다. 이 투쟁구호가 처음 외칠 당시만 해도 얼마든지 노동자투쟁으로 비정규직을 철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을 철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서 노동자투쟁에서 이 구호를 외치고 있을까. 나는 감히 그렇다고는 대답하지 못하겠다.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특수고용직, 파견 및 계약직 기간제 등 온갖 비정규 노동 모두를 철폐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외치는 구호는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신은 노동자들이 허세로 외치는 구호로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외쳐야 할 비정규직 투쟁의 구호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노동자 권리로 보자면, 바라지 않는 비정규 노동은 노동자의 고용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기에 아무리 쟁취하기 어려워도 외쳐야 할 구호라고 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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