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광주형 일자리’를 세상에 내놓은 설계자이자 산파를 꼽으라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박병규(58·사진) 광주 광산구청장이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 출신인 박 구청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투표로 당선됐다. 본선보다 더 치열하다는 더불어민주당 공천과정에서 쟁쟁한 청와대 출신 예비후보들을 꺾고 후보에 올라 파란을 일으켰다.

박병규 구청장은 지난 6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제2의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어낸 저력을 알기에 그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기초단체장으로서 그가 지휘하는, 온전한 ‘박병규표’ 제2 광주형 일자리는 어떤 모습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7일 오후 광산구청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광주형 일자리 핵심은 사회적 대화, 잊으면 안 돼”

- 직접 지방정치에 뛰어든 이유는.
“결국은 광주형 일자리다. 그전에는 선거 출마를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2018년 (광주시청 일이) 끝나고 2019년·2020년을 지나면서 이대로 가면 광주형 일자리가 소멸될 것 같아서 뭔가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직접 출마해서 행정에서 구현해야겠다는 데 이르렀다.”

그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에 출마한 윤장현 후보에게 광주형 일자리를 제안하며 윤 후보 당선을 도왔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서 그는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장·일자리정책특보·경제부시장을 차례로 맡아 광주형 일자리를 챙겼다. 2018년 지방선거 뒤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이듬해 1월 이용섭 광주시장 요청으로 사회연대일자리특보로 돌아와 광주노사민정협의회 최종 협약안 의결과 광주시-현대차 투자협약을 체결하기까지 지원했다.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2020년 4월 노동계가 광주시와 현대차가 노동을 배제한다며 참여 중단을 선언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 이미 특보를 그만둔 상황에서도 박 구청장은 광주글로벌모터스 상생위원회, 광주상생일자리재단을 구성해 참여하는 등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지난해 9월부터 신차 캐스퍼를 위탁생산하는 등 광주형 일자리가 자리 잡았지만 지난 7년은 숱한 갈등과 위기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 과정을 보면서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가치를 갖춘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키맨’이 있어야 하는 문제지, 그전부터 해 왔다고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싶었어요. 너무나 많은 갈등상황이 반복됐죠. 하려다가 깨지고, 또 깨지고, 이런 상황이 너무 자주 반복됐어요. 직접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광주형 일자리 협약 체결 뒤에도 해야 할 지난한 과제가 많이 남아 있었던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게 노사민정 협력이고, 노조의 참여인데 그 가치를 몰라요. 얼른 기업이랑만 해 버리려고 하고, 그 성과를 행정에서 빨리 가져가려고만 하죠. 노동의 입장에서는 들러리, 이용당한 것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죠. 광주형 일자리를 안정화할 필요가 있고요. 1개 기업으로만 끝날 게 아닌 것이죠. 광주글로벌모터스 하나 만들자고 시작한 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 일자리 공정 문제를 어떻게 할 거냐를 보고 시작한 거니까요.”

4대 의제 못 미치는 광주형 일자리 현주소

광주형 일자리 1호 광주글로벌모터스는 광산구와 함평군에 걸쳐 있는 빛그린산단에 자리하고 있다. 박 구청장이 자신이 살던 서구가 아니라 광산구를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광산구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입니다. 광주시 산업단지의 60%가 여기에 있지요. 넓은 면적에, 발전 가능성 등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 적정임금과 협력적 노사상생, 지역 청년노동자 일자리 창출이라는 광주형 일자리 취지로 볼 때 광주글로벌모터스 일자리는 어떻게 평가하나.
“투자자 중심의 일자리 창출 과정을 거치다 보니 상당히 많은 가치들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고 흘러왔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하나의 전형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주 낮은 단계지만 의미가 있다. 발전시켜야 한다.”

- 적정임금, 적정근로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이라는 광주형 일자리 4대 의제를 기준으로 볼 때는 어떻게 보는가.
“추진 과정에서 녹아 있지 못하다. 지금 복지 지원이 미약하다. 주거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거나 각종 수당이 뒷받침되지 못한다. 적정임금 수준도 애초 생각했던 수준에서 하향화했고, 광주시의 주거 사회기금 지원도 안 보인다.”

- 광주형 일자리가 시발점이 돼 ‘상생형 지역일자리’라는 이름으로 구미·군산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모델이 만들어졌다. 지방소멸 위기와 지역균형 발전이란 측면에서 이런 일자리 모델이 갖는 의미와 전망을 어떻게 보나.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당시 많이 다녀봤는데 정부 지원을 받아 기업 하나를 유치하겠다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다른 가치들을 이야기해 봐야 안 듣더라. 문재인 정부도 그런 점에서 많이 부족해 보였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 일자리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국 어떤 일자리 정책을 가져온다고 해도 사회적 대화를 버리기는 어렵다.

꼭 광주형 일자리일 필요는 없다. 다른 걸 하더라도 이것과 결합해도 되고, 그것이 새로운 일자리라면 지금까지 해 왔던 일자리 가치를 녹여 내는 것일 수도 있고. 그게 뭔지 몰라 답답하다. 너희들이 지역에서 (이런 일자리 정책을) 해 봐라 하면 (제안서를) 낼 텐데.”

“사회임금 적용 지속가능성장 경제특구 이끌어 낼 것”

박 구청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광주형 일자리 시즌2를 광산에서 실현하겠다”며 “시즌1이 광주글로벌모터스라는 하나의 기업을 출범시킨 것이라면, 시즌2는 광주형 일자리가 광산의 많은 기업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사 합의와 시민사회의 지지를 배경 삼아 ‘지속가능성장 경제특구’를 이끌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 광주형 일자리 시즌2는 어떤 모습인가. 시즌1과 시즌2의 차별성은.
“동일한 가치다. 광주글로벌모터스라는 하나의 기업을 광주형 일자리 새로운 모델로 만들어 봤다면, 이제는 지역에 확산해 보자는 것이다. 사회임금을 특정기업이 아닌 지역에 적용하는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일정한 기준을 두고, 그 기준에 들어오면 주거·보육·교육·의료 등을 지원해 보자는 것이다. 그 기준은 다 다를 수 있으니, 이른바 ‘지속가능성장 경제특구 법안’을 만들어서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경제자유구역법) 같은 것은 노동의 입장에서는 규제 중심이나 이 법안은 지원 중심이다. 그런 법안을 만들어서 지역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한편으로는 일터 혁신도 중요하다고 본다. 일터 혁신을 통해 실질적으로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아주고 싶다. 이런 것도 비용이 수반돼 자치구에서 하기엔 어려운 문제다. 작은 것부터 해 보려고 한다.”

광주형 일자리 시즌2 뒷받침할 조직개편 추진

- 광주형 일자리 시즌2를 추진하기 위한 조직이 필요할 텐데.
“조직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한 팀을 만들려고 한다. 그 팀에서 정책개발·노사협력을 강화할 다양한 사업을 뒷받침해야 한다. 자치구에서는 그런 조직이나 사업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광역시·도는 그래도 있지만 자치구는 없다. 그런 팀들을 몇 개 만들어서 시도하려고 한다. 현재 의회에서 심의 중이다. 여전히 사람 문제다. 같이해야 한다. 각계의 경험이나 전문적 역량이 있는 사람과 행정 공직자가 같이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렵다. 예전 광주시에서도 그것 때문에 제일 고생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자치구는 여러 면에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기가 어렵다.”

- 해당 조직은 어떤 일을 하게 되나.
“그 팀에서 법을 만들고, 그걸 가지고 국회에 설명하는 등 입법으로 추진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 설득도 해야 한다.”

- 법안에 담을 내용은.
“광주형 일자리 가치를 담아야 할 것이다. 다른 법안과 충돌하면 안 되니 용역이나 TF가 필요할 것이다. 그냥 여기서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닐 테니.”

- 광산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텐데.
“당연하다. 법안을 만들고, (그 법에 맞는) 조건을 지역에서 만드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우리가 법안을 추진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조건을 만들면 다 같이 적용하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광주시에 있을 때도 사회적 대화기구인 ‘더 나은 일자리 위원회’를 따로 만들었다. 거기서 만든 게 광주형 일자리 4대 의제다. 시간은 좀 걸릴 수 있다. 이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일터 혁신·사회임금 결합해 일자리 질 전환

- 광주형 일자리 시즌2는 시즌1과는 다른 환경에 놓인 것 같다. 산업전환과 기후위기 시대에 시즌2는 어디에서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보나.
“산업·업종·기업 불문이다. 대한민국 산업경쟁력을 어디에서 가져올 거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신산업이든 기존 산업이든 간에 광주형 일자리에서 추구했던 사회적 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 미래차, AI 관련 산업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다. 또한 기존 일자리의 질 개선도 중요하다. 일터 혁신은 기존 일자리를 바꿔 내는 것이다. 익숙한 방식에만 의존하다 보니 그 틀에서 아웅다웅한다. 새로운 가치와 방법이 있다는 걸 봐야 한다.”

- 광주형 일자리 시즌2 역시 노사합의와 시민사회 지지가 중요해 보인다. 광산구는 노사민정협의회를 가동하고 있다. 현재 어떤 의제를 논의하고 있나.
“최근에는 산업안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일자리쪽으로 이동해서 의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광주형 일자리 시즌2를 위한 논의를 할지, 광주에서처럼 일자리 중심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지는 가 봐야 알 것 같다. 현재로서는 노사민정협의회라는 사회적 대화기구가 있으니 이를 중심으로 의제화해 볼 필요가 있다.”

광산구는 고용노동부 주최 올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일자리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전국 최초로 참여소득을 도입한 사회참여형 혁신일자리 ‘광산시민수당’을 통해 18개 사업에서 309명의 일자리를 창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 광산시민수당은 기존 공공일자리와는 어떻게 다른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 지역과 시민에게 유익한 공익적인 일에 참여한 시민에게 참여소득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마스크 제작과 일상 방역활동 등)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일자리라는 점에서 참신했다. 공공영역에서 창조적으로 만들어 낸 일자리라서 의미가 있지만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공공일자리를 확장시킬 때는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확대하기가 어렵다. 다만 광주시가 농민수당·가사수당과 더불어 광산시민수당과 비슷한 시민참여수당을 ‘3대 공익수당’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광산 혁신모델이 조만간 광주 전역으로 확산할 것으로 기대한다.”

제2 광주형 일자리, 지방·중앙정부·전문가 함께해야

- 광산구는 5개 산단을 품은 광주의 산업 중심지다. 광산구의 일자리 상황은 어떤가.
“광산구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일자리도 꽤 많다. 골목상권을 살리는 정책을 이것저것 추진했는데, 총체적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산단 일자리는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각하다. 지금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못 만들어 내니까 (청년들이) 들어갈 수가 없다. 결국은 일자리 양극화나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임금으로 뒷받침하는 게 필요하다. 일터 혁신과 같이 가야 한다. 어떤 기준을 정해 부합하면 사회임금을 적용하는 것이다. 건설노동자 적정임금 방식도 있다. 일정한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 기업이 해결하지 못하니까.”

- 광주형 일자리 시즌2는 시즌1처럼 진통을 겪을 수도 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저는 잘 될 거라고 본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추진하면서 장애물도 만나고 난관에도 봉착하겠지만 잘 될 거라고 본다. 제 생각이 짧을지 모르겠으나 현재까지는 광주형 일자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일자리 경제정책이 우리 사회에 던져진 게 없다. 사회적 대화는 필요 없다며 기업만 밀어주는 식으로는 일자리가 만들어지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그게 뭐냐’ ‘빨리 달라’고 한다. 어떻게 주나. 같이 만들어 보자고 하는 건데. 그래서 지역사회 혁신운동이라고 했다. 같이 운동하자는 거다. 그 모습이 완성된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 광주글로벌모터스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만들어 낸 첫 작품일 뿐이다. 완성품으로 보면 안 된다. 계속 진화하는 것이다.

서로의 역할이 있다. 광산구는 행정적으로 준비를 잘 하고, 지역사회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전문가는 개념을 정리하고 이론적으로 보강해 주고, 중앙정부는 이 일자리가 성공하도록 중앙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처럼 다들 붙어야 한다. 각계각층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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