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내년 1월 SK브로드밴드와 협력업체 간 위수탁계약 종료를 앞두고 인력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 노동자들은 원청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지난 6월2일 서울 중구 SKT 타워 앞 농성에 돌입했다. 100일 가까이 이어 온 농성은 11호 태풍 힌남노 상륙을 앞둔 지난 5일 잠시 중단했다. 당초 7일 오후 농성을 재개할 예정이었지만 원청과 대화가 진전되면서 농성을 유보하기로 했다.

대화 물꼬가 트이면서 농성은 잠정 중단했지만 정리해고·부당전보 문제를 비롯해 직접고용 대상자 범위, 임금·처우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매일노동뉴스>는 박명근(57·사진)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SK브로드밴드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장을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SKT타워 앞에서 만나 그간의 협상 경과와 계획을 들었다.

“원청과 자회사 전환 관련 논의하기로”

- 농성을 재개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유보한 이유는.
“지난 6일 오전 원청에서 정리해고 문제와 자회사 전환을 논의테이블에 올리겠다는 취지의 공문이 왔다. 지부가 요구한 사안이 빠졌는데 7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간담회를 진행했고, 원청이 (지부가 요구한) 의제까지 포함하기로 하면서 농성을 유보하게 됐다. 아직 (유보안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15일 쟁의대책위원회 열어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난 6일 SK브로드밴드는 지부에 보낸 공문에서 “당사는 기술센터 구성원이 희망할 경우 지속적으로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와 지원을 할 예정”이라며 “채용절차 및 근로조건 설명 등에 대한 당사와 노조의 미팅을 10월6일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안건에는 협력업체 중부케이블 정리해고 이슈도 포함됐다. 다만 개통·AS 업무는 자회사로 전환하지만 전송망 유지·보수 업무는 협력사로의 고용 이전을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함께 밝혔다.

지부는 전송망 직군도 자회사 전환 대상이 돼야 하고, 원거리 발령 조치를 받은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국 SK브로드밴드측은 메일을 통해 “미팅 과정에서 전송망 유지·보수 업무 구성원이 업무 전환을 원할 경우, 2020년과 2022년 원거리 전보 구성원 관련 이슈도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화테이블에 올리지 못했던 안건을 원청과 논의하기로 하면서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위수탁계약 종료 앞둔 협력업체,
이윤 극대화 위한 ‘쥐어짜기’ 나선 것”

- 농성을 계속 했다면 9일이 꼭 100일이었다. 100일 가까이 농성을 한 이유는.
“구조조정 문제를 원청이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 네 곳 중 두 곳이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중부케이블은 지난 5월4일 9명(아산센터 1명·천안센터 2명·전주센터 6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같은날 전주센터가 6명의 노동자에게 원거리 발령 조치(아산 3명·세종 3명)를 내렸다. 원케이블솔루션은 같은달 16일 희망퇴직 시행 공고를 냈다. 10여명이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희망연대본부에 따르면 2020년 1월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를 합병한 뒤 전국 29개 기술센터는 4개 협력업체(중부케이블·용이케이블·SM넷)가 위탁운영하고 있다. 설치·AS 업무와 전송망 유지·보수 업무, 현장지원 등을 하는 노동자 700여명이 일하고 있다. 2020년 합병 이후 협력업체의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해 200여명이 줄어들었다는 게 본부의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중부케이블은 2020년에도 전주센터 직원 8명을 아산(3명)·천안(3명)·세종(2명) 센터로 발령 내 논란이 됐다. 박명근 지부장은 “당시 지부에서 단식농성도 했지만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고, 8명 중 현재 세종과 아산에 각각 1명씩 남아 있다”며 “이번 인사발령 대상자에게 5월4일 문자로 통보하고 같은달 9일부터 해당 발령지에서 일하라고 했다. 원룸을 얻어 줄 테니 가서 살라고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나”라고 말했다. 이들은 인사발령에 응하지 않아 지난달 16일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 협력업체가 구조조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내년 1월20일 원청 SK브로드밴드와 위수탁계약 종료를 앞두고 비용절감을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인건비가 줄어드는 만큼 도급비에서 남기는 몫이 많아지는 거다. 전주센터의 경우 ‘전부 해고하는 게 목표’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편으로는 정리해고나 부당전보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이걸 지렛대 삼아 원청을 상대로 위로금 협상을 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심화는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 당시부터 예견된 문제이기도 하다. 본부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제출한 합병 승인 이행계획서에는 “기술센터와의 계약 종료 이전에 각 업무 영역별 현행 유지·강화, 합병법인의 자회사화 등 최상의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합병법인·기술센터 대표·기술센터 구성원(노조) 간 협의채널을 구성하고 충분한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그런데 합병 이후 원거리 발령, 실적 압박, 일감 감소 같은 문제로 인해 200여명의 노동자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원청이 애초 제시했던 이행계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본부의 지적이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부당전보자·정리해고자 모두 고용 보장해야”

- 인력감축으로 인해 남아 있는 직원들의 노동강도도 높아졌을 듯하다.
“하루 할당량 자체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본인이 맡은 구역에, 그만둔 기사의 구역까지 맡게 되면서 이동시간이 늘어났다. 동네마다 작업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긴다. 전주센터는 상황이 심각하다. 설치·수리기사의 경우 일주일치 업무가 밀려 있다.”

지부는 2020년과 2022년 ‘부당전보’된 노동자와 올해 정리해고된 노동자 전원의 원직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전송망 직군도 당사자 의견을 존중하되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회사 전환 이후 임금 등 처우 개선과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한 교육 제공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 지부장은 “내년 1월20일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그전에 해고자와 부당전보된 노동자들부터 직접고용해야 한다”며 “말이 아닌 홈앤서비스 정규직 전환에 대한 확약서도 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부의 향후 계획은.
“14일부터 점심시간 피케팅은 다시 진행할 예정이고, 당분간 교섭에 집중하려 한다. 교섭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원청을 향한 투쟁을 할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더 강력한 방법을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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