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1.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인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내하청을 포함한 간접고용 문제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간접고용의 본질은 고용과 사용의 분리인데, 이것이 바로 문제의 근원이다. 권한을 행사하며 이득을 취하는 원청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다. 지난 20년 동안 간접고용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양적·질적으로 심화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헌법은 노동 3권을 규정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 또한 향유할 수 있는 기본권이다. 헌법전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하청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모든 걸 걸어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면 하청업체는 폐업되거나 조합원에 대한 집단해고로 노동조합의 근간이 흔들리기 일쑤다.

원청은 근로계약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하청은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한다. 나아가 원청은 하청 파업에 대체근로를 투입하고, ‘남의 공장’에서 파업한다며 하청노동자들을 쫓아낸다. 이 모든 처절함이 대우조선해양 하청파업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하청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의 부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년 동안 그래 왔다.

3. 대법원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사건’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노동 3권은 법률의 제정이라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입법과 법령의 집행·해석에서 이와 같은 노동 3권의 본질과 헌법적 의미가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전원합의체 판결). 이에 비춰 보면 노동 3권이 사실상 부재한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극복하지 않는 것은 위헌적 상황을 방치하는 꼴이다.

4. 현재 대법원은 물론 중앙노동위원회, 노동법 학계, 국가인권위 등은 모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있다. 일부 학자 등이 단체교섭의 영역에서 여전히 근로계약관계를 전제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 정의를 이해하려는 잘못된 태도를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논란을 없애고, 하청노동자들의 헌법상 노동 3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서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사용자로 포함하는 내용으로 노조법 2조를 개정해야 한다.

이는 현행 노조법상 ‘사용자’ 정의의 ‘확대’가 아니라 현행법에 대한 해석론을 반영해 ‘사용자’ 정의를 명확히 하는 차원의 법 개정일 뿐이므로 사용자단체나 보수 여당 등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5. 일반적으로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Conventions)과 권고(Recommendations) 등을 국제노동기준이라 일컫는다. 국제노동기준은 최대 기준이 아니라 최소 기준이고(ILO 헌장 19조8항), 각국에서 유보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한편 ILO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87호와 단체교섭에 관한 협약 98호를 바탕으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에 대해 노동 3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가진 원청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파업까지도 가능하다고 일관되게 밝힌 바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위 기본협약들이 발효됐으므로 우리 노조법에 대한 해석론은 이와 같은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만약 기본협약과 노조법의 해석이 충돌한다고 본다면 기본협약 해석론을 재판규범으로 우선 적용해야 한다. 비준된 국제인권조약과 국내법률의 위상 및 적용 순위에 관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입장이 그렇고, 동위의 규범 간에 적용되는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르더라도 그렇다. 이와 같은 규범의 충돌 상황을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노조법 2조 ‘사용자’ 정의에 대한 개정은 시급하다. 이는 기본협약 비준에 따른 후속조치의 일환이기도 하다.

6.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7월22~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원청의 사용자 책임 강화와 관련해 찬성이 52.8%로 반대 20.4%보다 무려 32.4%포인트 많게 나왔다. 당시 대우조선 하청파업 종료 직후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7.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한다. 헌법상 노동 3권의 본질과 가치, 하청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이 부재한 위헌적 현실, 대법원 등의 노조법상 사용자 정의에 대한 일관된 해석론, 국제노동기준과 ILO 기본협약의 발효에 따른 후속조치의 필요성 등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노조법상 ‘사용자’ 정의에 대한 개정을 미룰 수 없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과반의석을 점한 야당이 ‘노란봉투법’에 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최근 대우조선해양과 하이트진로 등 원청이 남발하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고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노동 3권 행사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의 원칙적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노란봉투법’만으로는 하청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 노조법 2조의 ‘사용자’ 정의에 대한 법 개정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국회가 이번에도 노조법 개정을 미룬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시민사회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노조법 개정을 위한 광범위한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국회가 응답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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