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0년 8월 “산재유족 특별채용을 명시한 단협은 유효”라고 판결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현 기아)가 산재사망 노동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지 않았던 기간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산재사망 유족 특별채용과 관련해 임금 지급 의무를 판단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판결은 2020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도록 정한 기아차 노조의 단체협약 조항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법원은 기아차에 채용 이전의 임금 상당 손해배상액과 채용 이후 현재까지의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더불어 채용의무 발생시점에 입사한 것을 전제로 호봉을 정정하라고 주문했다.

유족 “2014년부터 채용의무 불이행”
요청일 6개월 내 채용 단협 위반

2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봉기 부장판사)는 최근 기아차 산재사망 노동자의 자녀 이아무개씨가 기아차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해 금형 세척작업을 담당했다. 이후 2008년 2월께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로 옮긴 뒤 그해 8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투병생활을 하던 고인이 2010년 7월 숨지자 근로복지공단은 최소 15년간 벤젠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렸다고 인정해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이씨는 기아차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근거로 채용을 요구했지만, 거부되자 2014년 4월 소송(선행소송)을 제기했다.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한다”는 단협 조항에 따라 채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2심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민법 103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절서에 위반돼 무효)에 위반된다며 무효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1 대 2 의견으로 원심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특별채용 조항은 사망한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가족 생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지난해 3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이씨의 승소가 확정됐다. 기아차는 파기환송심 선고 직전인 그해 3월8일 이씨를 조립공정 담당 엔지니어·기술직으로 채용했다. 처음 채용을 요구한 2014년 4월께부터 7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자 이씨는 채용의무 불이행 기간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며 같은해 4월 소송을 냈다.

법원 “채용의무 불이행 고의·과실”
“채용일까지 임금 상당 손해배상”

법원은 이씨의 청구를 모두 인용했다. 단협에서 정한 채용 요청일 6개월 이내 채용할 의무가 있는데도 뒤늦게 채용했으므로 2014년 10월부터 채용 시점인 지난해 3월까지 발생한 임금 상당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와 더불어 채용일부터 발생한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기아차가 채용의무 불이행에 대한 고의·과실이 없다고 항변한 부분도 배척됐다. 기아차는 선행소송 1·2심에서 산재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무효라고 판단하고, 고용노동부도 조항 개선 의견을 밝히는 등 특별채용 조항의 유효성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사실만으로는 채용의무가 없다고 믿은 데 정당한 사유가 있다거나 잘못된 법률적 판단을 정당화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채무 이행을 거부한 채 소송을 통해 다퉜더라도 법률적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면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특별채용 조항이 단협이 새롭게 체결될 때도 유지됐고, 취업규칙에도 같은 취지의 규정이 있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노동부 역시 2015년 일자리세습 채용 조항의 후속조치에서 산재유족의 특별채용과 관련해서는 위법성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채용의무 불이행의 고의나 과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호봉도 채용의무 발생일 시점 정정”
산재유족 유사 임금 소송 주목

기아차는 재판에서 선행소송의 하급심 판결을 믿고 이씨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재차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아차는 선행소송의 소장을 송달받고도 6개월 이내 이씨를 채용하지 않았다”며 “이후 선고된 1·2심 결과를 본 다음 이씨를 채용하지 않았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아차는 1990년 이후 이씨 이외에 9명을 특별채용했고, 이 중 2명은 소송 중인 2016년께 특별채용됐다.

재판부는 이씨의 호봉도 엔지니어·기술직 19호봉으로 정정하라고 주문했다. 기아차는 채용 시점에 1호봉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하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14년 10월 무렵 채용한 다른 기술직 근로자와 비교해 이씨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이라며 “채용일부터도 이전 호봉승급을 반영한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대법원 판결 이후 처음 나온 임금 소송 결과다. 다른 산재유족의 소송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씨를 대리한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이번 판결은 산재유족 특별채용 규정에 근거해 임금 상당액의 손해배상과 함께 채용의무 발생일 기준 입사자와 동일한 호봉으로 정정할 것을 주문해 산재유족 보호 조항의 의미를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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