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산재 인정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에게 엄격하고 높은 잣대를 적용해 부당한 불승인이 반복하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노동건강정책포럼 소속 전문가들이 산재보험 승인 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편집자>

▲ 양선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노동건강정책포럼)
▲ 양선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노동건강정책포럼)

한 52세 일용직 노동자가 건설공사 작업을 하던 중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 일어서지를 못해 병원에 실려 갔다. 이후 무릎의 ‘반월상 연골 파열’이라는 주치의 진단하에 수술을 받았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승인 신청을 했다. 공단은 “이 사건 사고는 사실로 인정되지만, 해당 상병은 수평파열로서 급성파열이라기 보다는 퇴행성 파열 소견에 합당하다”며 불승인 처분했다.

이와 같이 사고로 근골격계 증상이 발생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급성 손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의학적 소견이 급성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근로복지공단이 자체적으로 승인을 하지만, 급성 소견이 아니라고 하면 질병판정위원회에 상정한다. 질병판정위에 상정되면 사고가 있었다 하더라도 해당 신체부위에 대한 업무부담이 높다고 판단돼야 산재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가 사고로 부상을 입더라도 출혈이나 부종 등의 급성 외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으면 사고와 부상이 관련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곤 한다. 그러나 사고에 의해서는 급성 손상이 오고, 업무부담에 의해서는 퇴행성 손상만 온다는 매우 이분법적 논리에 의한 것이다. 사고에서 작용하는 힘의 크기는 다양하고, 작용한 힘과 신체 상태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축구와 같은 스포츠에서 작용하는 강력한 힘이 일으키는 외상과, 미끄러짐·비틀림과 같은 가벼운 사고가 유발하는 외상의 정도는 다르다. 근골격계의 외상은 사고의 스펙트럼과 신체적 상태에 따라 염좌와 같은 비교적 가벼운 질병에서부터 근육 파열, 골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태의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골다공증이 심한 고령노동자는 삐끗함과 같은 가벼운 사고에 의해서도 골절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다.

반월상 연골판 손상은 외상성과 퇴행성으로 나눈다. 외상성 손상은 젊은 사람에게서 축구와 같은 과도한 힘에 의해 발생해 급성 손상소견을 가진다. 그러나 퇴행성 손상은 중·고령자에게 자주 발생하며, 한 가지 요인보다는 연령증가나 지나친 사용 등에 의해 외상 없이 천천히 지속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쪼그리고 앉는 것, 계단 오르기, 계단에서 비틀거림, 미끄러짐, 떨어짐 등과 같은 경미한 사고에 의해서도 생긴다. 퇴행성 손상은 일반 인구집단의 35%에서 발견될 만큼 증상이 없는 경우도 흔하다. 경미한 사고 후에 급성으로 심각한 증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사고 후 그 다음날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갑작스런 증상이 어떤 경미한 사건후에 발생했다면 퇴행성 손상은 그 사건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사업장에서의 사고로 인해 증상이 발생했다면, 그 증상과 사고와의 인과관계는 명백하다. 그 증상 때문에 병원을 방문해 퇴행성 파열 진단을 받았다면, 단지 그 노동자의 신체상태가 가벼운 사고에도 파열이 발생 가능한 상태였다는 것이지 파열이 발생하지 않았음이 아니다. 개별 노동자의 신체상태를 고려할 때, 젊고 튼튼한 반월상 연골판은 강한 외력에 의해 파열된다. 반면에 퇴행성 변화가 있는 반월상 연골판은 작은 힘에 의해서도 파열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경미한 사고에 의해 발생한 퇴행성 반월상 연골판 파열에 대해 강력한 힘이 작용하는 급성 외상성 손상의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고에 기인하지 않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급성이든 퇴행성이든 사고로 발생한 재해는 업무상 사고로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근로복지공단은 경미한 사고로 파열이 발생한 환자에게 급성 파열이 아니라는 잣대로 책임을 질병판정위원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공단이 떠넘긴 책임은 사업장에서의 사고로 부상을 입고서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노동자에 고스란히 넘어간다. 더 이상 책임을 떠넘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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