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다드라이버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태환)와 라이더유니온, 플랫폼노동희망찾기가 지난 8일 오전 타다 기사에 대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1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홍준표 기자>

“플랫폼 종사자가 증가하고 있고, 종속적 노동자와 독립계약자 사이에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에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포섭해 보호할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제한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종속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쏘카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 기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중노위 판정을 뒤집으며 이같이 판시했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에 대한 첫 법적 판단이다.

법원은 플랫폼 종사자를 ‘사적 계약관계’로 규정했다. 공유경제 출현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사적 계약관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보호는 근로기준법 개정 등 입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플랫폼 종사자 보호입법을 주문한 것이다.

법원은 이날 두 건의 타다 기사 소송에서 모두 쏘카의 손을 들어줬다. 타다 기사인 A씨는 2019년 6월 대리운전업체와 ‘대리운전 중개계약’을 체결한 뒤 이듬해 1월 인력파견업체와 ‘타다 운전원 위탁계약’을 맺고 일했다. 타다 서비스는 타다 운영사인 ‘VCNC’가 모회사인 쏘카 소유의 차량을 이용해 기사들을 공급받아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런데 VCNC 대표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개정으로 타다 베이직 서비스 운영이 어렵게 되자 2020년 3월 앱을 통해 서비스 중단을 공지했다. A씨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그러나 중노위가 초심 판정을 취소하자 쏘카는 이에 불복해 2020년 7월 소송을 냈다.

쟁점은 A씨가 쏘카의 지휘·감독을 받았는지, 쏘카가 실질적인 사용자에 해당하는지였다. 재판부는 쏘카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쏘카가 A씨에 대한 사용자 지위에 있지 않고, A씨가 종속적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① 쏘카 직접적 계약관계 부정

재판부는 먼저 “A씨가 용역업체와 대리운전 계약을 체결했다”며 쏘카·VCNC와 A씨의 계약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협력업체는 독자적 조직과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며 “쏘카는 A씨에게 운전기사의 서비스 품질을 유지할 의무 등을 부담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쏘카가 타다 기사를 지휘·감독할 계약상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VCNC가 앱을 통해 기사의 근태 정보를 관리한 부분도 “플랫폼에 기반한 타다 서비스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기사 모집 과정에도 쏘카와 VCNC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기사를 채용했고, 쏘카는 차량 대수 결정에만 개입했을 뿐이라는 취지다.

② 운전은 ‘이용자 호출’ 따라 결정

타다 기사들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이용자 호출’에 따라 결정됐다는 점도 노동자성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이용자가 앱을 통해 호출하면 이를 이행하는 것은 위탁계약에 따른 의무로서 당연히 요구되는 것이라고 봤다. 예컨대 타다 이용자 이외의 고객을 태우지 못하거나 앱의 운행경로대로 운전했다는 것만으로는 쏘카가 일방적으로 업무를 결정했다고 볼 근거가 안 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타다 앱을 통해 운행경로와 대기장소가 결정되는 것은 타다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고 했다. 쏘카가 타다 플랫폼을 설계했다고 해서 기사의 업무 내용을 지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③ 취업규칙·복무규정 미적용

타다 기사들에게는 취업규칙과 복무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VCNC가 협력업체에 ‘배차거부 가이드라인’을 전달했으나, 서비스 표준화의 필요성에 따른 것이므로 기사에 대한 경고·교육 등의 조치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복무규정으로 삼기 어렵다는 얘기다.

교육자료도 프리랜서 드라이버가 계약상 숙지해야 하는 ‘본연의 업무’로 봤다. 재판부는 “복장 가이드나 필수 응대어 등 준수사항은 타다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며 “교육 가이드 자료가 복무규정에 해당한다거나 그 내용을 구속력 있는 지시사항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④ 지휘·감독 없고 근무시간·장소 미지정

재판부는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조치를 거듭 강조했다. VCNC의 △드라이버 보수 교육 △성희롱 교육 등은 일시적이거나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판단이다. 나아가 근무시간과 장소도 타다 기사가 구애받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운행 희망 요일과 시간대를 자유롭게 선택해 배차 신청을 했고, 월간 최소 근무일을 제안받지 않았다”며 “휴가의 개념 자체가 적용되지 않아 본인이 스스로 휴일을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근무장소 또한 기사가 희망하는 차고지를 변경할 수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매주 배차표에 따라 운행해야 한다는 A씨측 주장은 배척했다. 다수의 드라이버가 한정된 차량을 공유하는 타다 서비스의 구조상 불가피한 운영이라는 취지다.

⑤ 대가성·계속성·전속성 모두 ‘부정’

타다 기사들에게 ‘자율성’이 부여됐다는 판단은 일관됐다. 재판부는 차량 비용을 기사들이 부담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용자에게 타다 차량을 임대하는 서비스 구조상 당연하다고 판단했다. 기사들이 교통사고 비용 등을 스스로 부담하는 점도 작용했다. ‘대가성’을 두고도 운행시간에 비례해 지급되는 시간당 1만원의 기본수수료는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속성’과 ‘전속성’ 역시 부정했다. 기사가 운전용역 제공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하므로 쏘카가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사들의 겸업도 금지하지 않아 기사들이 쏘카에 종속돼 일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타다드라이버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태환)와 라이더유니온,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이날 선고 직후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률상 판단 기준이 아닌 ‘플랫폼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내린 판결로 볼 수밖에 없다”며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타다 기사들은 대리인과 상의 후 항소 여부 의사를 중노위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형사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이재웅 전 쏘카 대표와 박재욱 쏘카 대표(전 VCNC 대표)의 여객자동차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행정소송 결과를 보고 선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타다 기사들은 2020년 5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서울동부지법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