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숍 1세대인 화장품 브랜드 M을 위탁받아 운영한 ‘위탁판매원’이 법원에서 노동자로 인정됐다. 직원을 고용한 개인사업자로 등록했지만, 지정된 장소에서 회사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한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재판장 정현석 부장판사)는 최근 화장품 제조·유통업체 C사의 위탁판매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C사는는 지난 1일 1심에 불복해 항소했다.

매장 ‘샵마스터’ 8차례 계약 갱신
매출 달성 요구에 직원 채용 관여

A씨는 2015년 12월 C사와 부산 중구의 M매장을 운영하고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기로 하는 내용의 ‘위탁운영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20년 2월까지 2개월~1년2개월 단위로 총 8차례 계약을 갱신했다.

A씨가 근무하는 방식은 이른바 ‘샵마스터’였다. 회사가 직접 임차해 매장을 운영하는 직영점에서 점장으로 근무하다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직영대행점’을 운영했다. 매장 운영 대가로 매달 매장 직원 인건비를 제외한 수수료와 성장장려금을 받았다.

회사는 ‘샵마스터’에게 지속해서 매출 목표 달성을 촉구했다. 회사가 정한 가격으로 상품을 팔았고, 임의로 할인할 수도 없었다. 나아가 사측은 상품 진열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사진을 촬영해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수시로 열린 점장회의·고객응대교육 등에 반드시 참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A씨가 직접 직원을 채용한 것과 관련해서는 채용 현황에 변동이 있을시 이를 보고했다. 회사는 매장 직원의 급여 일부를 지원했지만, 소득신고와 4대 보험 가입 여부 등을 확인했다. 회사는 ‘샵마스터’들에게 시설물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매년 매장평가도 실시했다.

그런데 회사는 2020년 1월 A씨에게 재계약 의사가 없다며 계약만료를 통보했다. 그러자 A씨는 실질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그해 5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또 2년을 초과해 일했으므로 무기계약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독립사업자’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법원 “회사가 업무 결정, 수수료도 임금”
‘위탁판매원’ 노동자성, 판결 엇갈려

법원은 ‘샵마스터’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지정된 장소에서 회사가 정한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이를 위반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는 등 업무가 회사에 의해 결정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회사는 근태와 직원 채용 여부, 채용조건 등에 관여했다”며 “A씨가 회사 허락 없이 임의로 다른 장소에서 상품을 판매할 수는 없었으므로 근무장소에 구속됐다”고 설명했다.

수수료와 성장장려금도 근로에 대한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목표액을 초과해 매출을 발생시키는 경우에만 수수료를 받았다”며 “독립사업자로서 이윤을 창출했다기보다는 근로의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받은 것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고 판시했다. 매출 성과가 저조한 경우에도 고정급을 받고, 직원 인건비도 대부분 회사가 지원한 점이 근거였다.

재판부는 A씨가 4년3개월간 여덟 차례 계약을 갱신한 부분을 토대로 ‘근로의 계속성’을 인정했다.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 역시 월별 근무계획표에 따라 매장에 출근해 업무를 수행한 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이를 전제로 A씨와 회사는 2년을 초과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고,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한편 ‘위탁판매원 노동자성’을 두고 법원은 엇갈린 판단을 하고 있다. 2017년 대법원이 백화점 위탁판매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백화점에서 삼성물산과 코오롱인더스트리 의류를 위탁판매하던 매장관리자들은 퇴직금 소송에서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회사의 목표 달성 지시가 지휘·감독권 행사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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