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3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조합원 20여명이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건물 로비에서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들어간 지 12일째를 맞고 있다. 지난달 23일 민병조 지회장을 비롯해 조합원들이 쿠팡 본사를 찾은 것은 노동조합을 대하는 쿠팡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2020년 5월 쿠팡 부천신선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쿠팡 사측은 작업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작업을 중지하지 않는 등 방역수칙을 위반해 152명의 노동자와 가족·지인들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피해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냉난방 없는 물류센터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연이은 과로사를 부른 높은 노동강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6월6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쿠팡물류센터지회를 설립했다.

지회는 설립 후 같은 해 8월 교섭을 요구하고 올해 4월까지 15차례의 교섭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9개월에 걸쳐 15차례의 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쿠팡은 노조 요구안에 대해 아무런 안도 제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교섭의사가 없음을 밝혀 결렬됐다. 노조에서 요구하는 핵심요구안은 대단한 것도 아니다. 폭염기와 혹서기 때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냉난방설비 설치, 적정한 휴게시간 보장, 직장내 괴롭힘 심의위원회 구성, 노조활동 보장 등이었다. 노조는 불가피하게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까지 했으나, 쿠팡은 이 자리에서도 회사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결국 조정불가로 지난달 20일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졌다. 이는 사실상 교섭을 해태하는 행위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더욱이 문제는 쿠팡은 교섭기간 중이던 5월 말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있던 교섭위원 정성용 인천분회장에 대해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이와 함께 직장내 괴롭힘 문제 해결과 휴게시간 보장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던 최효 인천분회 부분회장에 대해서도 재계약을 거부하고, 이달 말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있는 권경숙 부천신선센터분회 조직부장에 대해서도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계약직 노동자라 하더라도 계약이 갱신돼 왔다면 계약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고 이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계약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그럼에도 교섭위원과 노조간부들에 대해 재계약을 거부한 것은 교섭과 노사관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뜨린 것이자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행위로 부당노동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민병조 지회장을 포함한 조합원 20여명이 쿠팡 본사를 찾은 날은 바로 교섭위원 정성용 인천분회장의 계약기간이 만료돼 해고된 첫 날이었다. 노조 요구안에 대한 사측의 교섭해태와 교섭위원에 대한 해고 문제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기에 쿠팡 대표이사를 만나러 본사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쿠팡이 한 일은 문제해결을 위한 노조와의 실질적인 대화와 교섭이 아니었다. 경찰을 동원해 건물 출입을 통제하고, 퇴거요청 문서를 반복적으로 발송한 후 농성 중인 핵심 조합간부들을 업무방해죄·건조물침입죄·퇴거불응죄 등으로 고소하는 일이었다. 이에 맞춰 경찰로 하여금 신속하게 출석요구 문자를 보내도록 하고, 농성 장소의 전기를 차단하고, 건물로비에 CCTV를 설치하고, 건장한 체격의 용역직원들을 고용해 바디캠을 착용시켜 조합원들을 불법적으로 감시하도록 하고, 건물 앞 빈 공간에는 대형화분들을 설치하는 등 조합원들을 감시하고 위협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쿠팡은 핵심 노조간부 9명에 대해 고소고발을 하고, 농성 장소에 전기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한 직후 지난달 29일과 30일 두 차례 노사교섭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역시나 해고 철회 불가 외에는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고 두 차례의 형식적 면담 후 더 이상 교섭은 없다며 일방적으로 결렬을 통보했다. 그러면서 쿠팡은 “회사가 교섭에 임하지 않고 있다는 노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근로자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삼으며 노조와 성실히 교섭을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쿠팡은 노조의 교섭안에 대해 아무런 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교섭 자리에 응한 것을 두고 ‘성실히’ 교섭을 진행해 온 것이라며 언론에 말장난을 하고 있다.

예정된 수순이었을까? 쿠팡의 교섭결렬 선언과 함께 자본 편들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경제·조선일보·문화일보 등 보수언론은 독자제보 형식으로 ‘쿠팡노조 본사 점거 대낮부터 술판 벌여’ ‘민노총 행패’라는 등 자극적인 기사를 실어 조합원들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윤석열 정부와 기업의 원칙적 대응을 촉구했다. 이들 언론은 농성장을 지지 방문한 시민이 사다 준 캔커피(음료)를 캔맥주(술)로 둔갑시킨 것이다. 쿠팡이 감시하는 건물 로비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짜 뉴스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그 ‘독자’는 누구일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쿠팡은 폭염대책으로 냉방기 설치와 휴게시간을 보장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교섭위원과 조합간부를 해고하는 것으로 답했다. 쿠팡은 지난해 매출 22조원을 올려 온·오프라인 유통기업 매출 1위를 기록하면서도 냉방기 설치는 고사하고 올해 시급마저 최저임금인 9천160원으로 일방적으로 공지했다. 물류혁신을 자랑하는 쿠팡이 노동자와 노조를 대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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