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동건설 하청노동자 고 정순규씨 유족과 중대재해없는 부산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항소심 선고공판 직후 부산지법 앞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유족 제공>

부산의 경동건설 신축공사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하청노동자 고 정순규씨 사고와 관련해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안전관리 책임자들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가 지속해서 엄중 처벌을 촉구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원·하청 관계자,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부산지법 2-1형사항소부(부장판사 김윤영·권준범·양우석)는 23일 오전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JM건설 관계자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정순규씨가 목숨을 잃은 지 2년8개월 만이다.

검찰과 피고인측 항소가 모두 기각되며 1심이 그대로 유지됐다. 1심은 지난해 6월 경동건설 관리소장과 하청 JM건설 이사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경동건설 안전관리책임자에게는 금고 4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양벌규정으로 기소된 경동건설과 JM건설 법인은 각각 벌금 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올해 4월 첫 항소심 공판만 진행한 채 바로 선고했다. 애초 지난달 26일 선고공판이 예정됐지만, 재판부 직권으로 연기했다. 이날 재판부는 경동건설이 도급사업주로서 안전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1심 형량이 적정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경동건설측이 안전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아 정순규씨가 추락했다고 보고 기소했다. 정씨는 2019년 10월 오후 1시께 공사현장의 옹벽 면을 고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비계 바깥쪽으로 이동하다가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1심 법원은 ‘2.5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추락했다고 판단했다. 현장에는 안전 난간과 추락 방지용 덮개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항소심은 1심과 마찬가지로 경동건설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경동건설 안전관리자는 전체 공사의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으면서도 관리·감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수직사다리를 비계 바깥쪽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관리해 추락사고를 방지해야 하는데도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검찰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심판결 선고 이후 양형에 반영할 만한 새로운 정상은 보이지 않고, 검사가 주장하는 사유들은 이미 원심판결에 반영됐다”며 1심 형량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217개 단체 탄원서도 ‘무용지물’
유족 분통 “끝까지 싸우겠다”

선고가 끝나자 방청한 유족과 시민단체는 가슴을 쳤다. 방청석에서는 “이것이 정의냐”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중대재해 없는 부산운동본부와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등 시민단체가 선고 직후 부산지법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도 유족은 “(피해자를) 왜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순규씨 사건은 CCTV나 목격자가 없어 진상규명에 난항을 겪었다. 유족은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을 통해 자료를 확보했고, 경동건설측이 정순규씨를 ‘관리감독자’로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217개 단체에서 선고 전 제출했지만, 1심을 뒤집는 증거가 되지 못했다. 고인의 아내 김아무개씨는 “경동건설의 조작되고 은폐된 기업 살인이 분명한데 재판부는 노동부 조사 내용만으로 기업에 유리한 추측성 판단으로 솜방망이 처벌했다”고 비판했다.

정순규씨 아들 정석채씨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자회견 때마다 경동건설의 이름을 언급하며 죽을 때까지 눈엣가시가 되겠다고 다짐했다”며 “경동건설 본사 또는 신축 건설현장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형을 피한 경동건설과 하청 안전책임자들은 선고 뒤 법정을 빠져나갔다. 이들은 지난 재판에서 “사죄를 표한다” “운영 관리를 할 때 최선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최후진술을 짧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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