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일하다 죽음을 맞은 노동자만 추모하는 날이 아니다. 살아 있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는 날이기도 하다. 노동현장에서 스러져 간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은 무엇일까.
 

정석채(고 정순규씨 유족)
▲ 정석채(고 정순규씨 유족)

2019년 아버지를 처참하게 잃은 지 오늘(28일) 911일째다. 이렇게 날짜를 세는 유가족이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만 가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올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산재사망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인 오늘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언제까지 빌어야만 하는지 참담하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목격자도 없고 CCTV도 없다. 언론보도와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듯 경동건설측이 사고현장을 조작·은폐하고 문서를 위조했다는 의혹이 짙다. 심지어 경동건설이 아버지 죽음을 보도한 언론사에 전화해 “고 정순규는 술 마시고 작업하다 실족했다”며 기사를 내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고, 언론기사에 같은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는 정황도 있다.

그런데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된 경동건설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벌금 1천만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경동건설의 문서가 위조됐다는 내용으로 전문기관 확인을 받아 제출했는데도 진실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경동건설 같은 기업들은 안전조치에 결코 투자하지 않는다. 과태료와 벌금이 그들에겐 노동자들의 목숨보다 싼값에 불과하니, 보란듯이 사고를 반복한다. 고용노동부는 시늉만 할 뿐 안전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산재사망이 발생하면 건설사측이 제출한 ‘산업재해조사표’만으로 조사를 끝낸다. 올해 1월 노동부가 전국 건설현장 안전조치를 일제히 점검한다고 발표했다. 오랫동안 현실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건설사들에게 미리 귀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불시점검”이라고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의 산재사망 유족들은 노동부를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경동건설 같은 기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다단계 하청을 쓰고, 노후한 장비를 쓴다. 최소의 장비로 작업을 하고, 줄어든 공사비만큼 위험은 늘어만 간다. 그리해 기업들은 이윤을 수도 없이 남기고 있다. 정부는 매번 산재사망을 줄이겠다고, 후진국형 사고라고 규탄해도 항상 말뿐이었다.

곧 20대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데, 또 다시 기업편에서 손들어 줄 게 불 보듯 뻔해 걱정부터 앞선다. 특히나 우려스러운 건 윤석열 당선자가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없앤다”며 “기업들과 경총에게 불편함이 있으면 핫라인으로 직접 바로 전화하라”고 말했다. 대놓고 기업과 경총 편에 서 있다.

이달 18일 아버지 사건의 항소심 첫 재판이 열렸다. 307일이나 기다린 항소심이었지만, 검찰측은 의지가 없어 보였다. 보강수사도 하지 않고 추가 증거자료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유가족들이 발 벗고 나서 증거를 찾아 사법부에 제출해도 묻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개탄스럽기만 하다.

사람은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 맞는 죽음은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죽음이다. 제발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다. 노동자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진정한 재산이다. 사람이 없으면 노동 공동체도, 기업도, 경제도, 국가도 없다.

“다녀올게” 한마디가 마지막 돼선 안 된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이해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게, 산재사망이 발생하지 않게 간절히 소망한다. 경동건설이 기업살인한 아버지를 비롯해 산재사망으로 돌아가신 모든 ‘노동자’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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