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폐지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7일 경기도 의왕ICD(내륙컨테이너기지) 앞에서 서울·경기지역 조합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운수사에서 주면 주는 대로 받았던 노예생활, 그때로는 다시 못 돌아 갑니다.”

전남 여수에서 부산항까지 170킬로미터 거리를 25톤 수출입 컨테이너로 하루 두 번씩 오가는 서영인(40)씨는 “안전운임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안전운임제 도입 이전을 ‘노예생활’이라 불렀다. 2020년 안전운임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아내에게 생활비 한 푼 주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고 했다. 운수사에서 지급하는 운송비는 일정치 않아 늘 마음을 졸였다. 휴일은 한 달에 네 번, 바쁠 때는 그조차 쉬지 못했고 차량 대출금과 유류비를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 100만원 남짓이었다.

안전운임제가 시행되고 나서는 매달 운임이 1.5배에서 2배 가까이 늘었다. 서씨의 경우 하루 운행시간이 크게 줄지는 않았지만, 수입이 늘어 숨통이 트였다. 그는 “일종의 최저임금 같은 안전운임이 확보되다 보니 운전할 때도 여유가 생겼다”며 “아내도 저더러 ‘얼굴이 밝아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서씨는 “주변 동료들도 안전운임제 때문에 과속이나 과적 문제가 나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파업으로 포기해야 하는 하루 일당이 30만원에 달하지만 ‘노예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마음에 파업을 한다”고 강조했다.

‘표준요율제→표준운임제→안전운임제’
이름만 바뀐 채 계속된 화물노동자 요구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폐지를 요구해 온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7일 예정대로 파업에 돌입했다. 전체 화물기사 42만명의 6% 정도인 2만5천여명의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은 이날부터 운송을 멈췄다. 이날 오전 16개 지역에서 열린 파업 출정식에는 1만5천여명(국토교통부 추산 8천200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최근 유가 인상에 따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비조합원의 파업 참여도 예상된다.

안전운임제는 과로·과속·과적을 막고 교통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의 운임을 결정하고 공표하는 제도다. 이전까지는 운수사나 화주가 일방적으로 운임을 지급했지만, 이제는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안전운임위원회에서 결정한 안전운임 기준에 맞게 운임을 지급한다. 2020년 1월 도입됐는데, 수출입용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만 적용되는 데다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돼 연장 요구가 지속돼 왔다. 지난달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컨테이너·시멘트 화물노동자의 월평균 수입은 2019년에 비해 지난해 각각 24.3%, 110.9% 증가했다. 월평균 노동시간도 컨테이너 차주는 5.3%, 시멘트 차주는 11.3% 감소해 노동조건 개선에 효과가 있었다.

2002년 출범한 화물연대본부는 결성 당시부터 안전운임제 전신인 표준요율제(화물량·운송거리에 따라 운송원가를 반영해 최저운임을 결정하는 제도)와 표준운임제를 요구했다. 20년 동안 화물노동자의 요구는 변하지 않은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했지만 정부는 유가보조금을 한시적으로 인상한 것 외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점도 파업의 배경이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 공표 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지난달 24일을 기점으로 2천원을 돌파했다. 서씨는 “지난해에 비해 하루 10만원 가까이 유류비를 더 지출하고 있다”며 “유가 인상으로 인한 고통이 크다”고 토로했다.

화주, 일몰 이유로 안전운임위 보이콧
“국토부, 안전운임제 논의 계속 미뤄”

화물노동자들이 이날 파업에 돌입한 이유는 얼마 남지 않은 일몰 기한과 다음달 열리는 안전운임위원회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다. 공익대표·화주·운수사업자·화물차주가 참여하는 안전운임위원회는 매년 7월 개최돼 이듬해 안전운임을 결정한다. 화물연대본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일몰을 이유로 지난해 안전운임 결정을 위한 안전운임위 참여를 보이콧한 화주의 태도를 보았을 때, 안전운임 일몰 여부는 최소 올해 상반기 내에 결론이 나야 한다”며 “2023년 안전운임 결정을 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몰조항을 없애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18년 3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안전운임제를 도입하면서 “일몰 1년 전 국토부 장관이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를 분석해 연장 필요성 또는 제도 보완사항 등을 국회에 보고(하라)”고 조건을 달았다. 지난해 3월 조오섭 의원안에 국토위 전문위원실은 “국토부 연구용역 결과 및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에 대한 국토부의 국회 보고 후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폐지 여부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국토부는 일몰 1년 전 연장 필요성이나 보완사항을 국회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국토부는 지난달 30일 한국교통연구원이 시행한 ‘안전운임제 성과평가’ 결과를 발표했지만 국회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토부가 안전운임제 종료 6개월을 남겨 두고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이는 까닭이다.

한국 안전운임제는 “성공모델”
화물연대 파업 지지 잇따라

외국 화물노동자는 우리나라 안전운임제를 ‘성공모델’로 보고 화물연대본부 파업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한다. 최근 호주 운수노조(TWU), 뉴질랜드 퍼스트유니온, 벨기에 운수노조(BTB-ABBV)는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이들은 “한국의 안전운임제는 세계 운수노동자들이 참고해야 할 성공모델”이라며 “과속·과적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브라질의 물류운수노조연맹(CTNNL)은 지난달 대의원대회를 열고 “안전운임제가 올해 말로 시행이 종료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안전운임제를 사수하고 더 많은 품목으로 안전운임제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국내 배달노동자는 안전운임제를 희망한다. 라이더유니온은 “안전운임제가 도입되고 화물노동자의 과로·과속·과적이 현저히 줄어 화물차가 연루된 교통사고는 현저히 줄었다”며 “배달의 속도경쟁으로 죽음의 질주를 강요받고 있는 라이더들은 안전운임제를 보면서 안전배달료를 설계하고 라이더보호법을 발의했기에 안전배달료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안전운임제의 확대·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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