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종묘시민광장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 파업 기자회견에서 현정희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종묘시민광장은 2003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 노동자 고 이용석씨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곳이다. <정소희 기자>

공공부문 자회사·비정규 노동자들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파업을 한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한국마사회지부,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철도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다. 구의역 김군 6주기인 28일에 맞춰 파업을 하는 4개 노조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비정규직 대책이 실종됐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사업장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이들 비정규 노동자들은 28일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을 청했다. 전 정부가 놓친 비정규직 문제는 윤 정부 들어 해결될 수 있을까.

◇건보공단 고객센터 ‘7개월간 멈춘 정규직 전환 논의’=“일을 하면 할수록 닳아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비정규직 콜센터 상담사입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에서 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대구지회 이소희씨는 이렇게 발언을 시작했다. 이씨는 “인센티브 5만원·10만원 더 받기 위해 자의든 타의든 경쟁해야만 했다”며 “돈을 벌수록 약봉지는 늘어 갔고 상담사는 병들어 그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간접고용 상담사들은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담아 세 차례 파업하며 성과급 폐지·정규직 전환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해 10월 마침내 공단과 같은 법인으로 고객센터를 운영할 ‘소속기관’ 정규직으로 전환이 결정됐다.

그런데 채용방식 등을 논의하는 노·사·전문가 협의체가 7개월째 구성되지 않으면서 정규직 전환 논의는 멈춘 상태다. 건강보험공단측은 “협의체 참가 대상인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구성 중”이라고 답변했지만, 박지원 지부 정책국장은 “협의체 개최 시기는 3월에서 5월로, 또 6월로 계속 밀렸다”며 “언제 상황이 정리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규직 전환 방식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지부는 상담사들이 공단 업무 1천60여개를 상담할 정도로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용승계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공단은 2020년 민간위탁 업체와 맺은 용역계약에서 계약특수조건에 명시돼 있던 “업무공백 최소화 및 업무 연속성을 위해 기존 인력을 최대한 승계한다”는 조항을 올해 갑자기 변경했다. 공단은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지난 3월 기존 업체와 계약이 만료됐다며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는 신규입찰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계약특수조건이 변경된 것이다. 올해 민간위탁 업체와 맺은 계약특수조건 32조에는 “업무 연속성을 위해 기존 인력의 고용승계를 보장한다”면서도 “다만 민간위탁방식(도급계약) 운영 기간에 업체 변경으로 인한 기존 인력의 고용승계만 해당한다”는 단서조항을 추가했다. 정규직 전환 논의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셈이다.

박 정책국장은 “(간접고용 당시에는) 용역업체가 변경돼도 고용승계가 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소속기관으로 정규직 전환했을 때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상담사들의 고용을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전국 7개 지역 12개 업체에 소속된 상담사 1천여명은 27일 하루 일손을 놓는다. 박 정책국장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실종됐고, 노동정책도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파업으로 고용안정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마사회시설관리 ‘바뀌지 않는 낙찰률 87.995%’=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과정에서 만들어진 80여개 자회사들은 ‘용역형 자회사’라는 비판을 받는다. 경쟁입찰 방식의 용역계약은 낮은 임금의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용역업체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건비 단가에 반영되는 낙찰률을 낮춰 용역사업을 따낸다. 낙찰률은 예정가격(계약금액) 대비 낙찰금액으로 인건비 낙찰률이 낮을수록 노동자 임금도 낮아진다.

정부는 이런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 자회사가 모회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경쟁입찰 구조를 없애 자회사는 수익을 보장받고, 용역업체가 가져가던 비용을 처우개선에 쓰도록 했다. 그런데 일부 자회사에서 경쟁입찰 때 적용하던 낙찰률에 맞춘 사업비를 인건비에 반영하면서 임금인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일어났다.

마사회 자회사도 그중 하나다. 2019년 설립된 한국마사회시설관리㈜는 시설관리·조경·소방 등의 일을 하는 마사회 용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마사회는 2020년 1월 당시 1천400여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했다. 노동자들은 자회사로 옮기며 용역업체가 가져갔던 몫이 자신들의 임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용역업체 시절 업체들은 하나같이 법정 최저낙찰률인 87.995%에 맞춰 입찰에 참여했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았지만 업체들은 수익률을 보장받았다. 자회사 정규직이 된 지금 마사회 원청은 자회사와 수의계약을 맺으면서도 이전 낙찰률이 적용된 사업비만을 마사회시설관리에 지급한다. 12.005%의 임금이 돌아올 것을 기대한 노동자들의 임금은 3년째 동결 상태다.

직종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직무급제도 문제다. 시설직종의 경우 시중노임단가에서 정한 기술직 임금이 아닌 단순노무직 임금을 적용해 처우가 좋지 않아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한상각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장은 “자회사는 낮은 임금으로 인해 인력이 충원되지 않아 당직 체계가 작동이 되지 못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680여명의 조합원들은 27일부터 29일까지 전면파업을 한다.

◇코레일네트웍스 ‘수십년을 일해도 최저임금’=27일과 28일 파업하는 950여명의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철도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은 코레일네트웍스 무기계약직이다. 이들에게는 임금 문제가 시급한 개선 과제다. 1천800여명의 코레일네트웍스 직원 중 정규직 120여명과 일부 관리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노동자는 15년, 20년 장기근속을 해도 최저임금을 받는다. 박준선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부실장은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시기 대비 4.8% 상승했는데, 저임금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물가상승 폭은 훨씬 더 크다”며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정교섭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타공공기관인 코레일네트웍스는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 5조2항에 따라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준용한다. 이 때문에 사측과 교섭을 해도 예산지침에 가로막혀 임금은 늘 최저임금을 맴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일부 자체사업(KTX 특송·셔틀 등)과 코레일의 수탁사업(역무·철도고객센터 등)을 수행한다. 지부는 코레일네트웍스가 사실상 ‘철도 민영화’ ‘철도사업 쪼개기’의 일환으로 설립됐다고 지적했다. 코레일 사업을 외주화하기 위해 설립된 자회사라는 것이다. 같은 역무업무를 외대앞역은 철도공사 직원들이 하고, 바로 옆 신이문역은 자회사인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가 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임금체계도 문제다. 지부가 제공한 2022년 현업직(역무원·상담사·주차관리·운전원 등) 노동자 임금테이블에 따르면 코레일네트웍스는 직무급제로 인한 기본급 역전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직급과 무관하게 모든 이의 임금을 최저임금에 맞추려다 보니 하위 직급 노동자 기본급이 상위 직급 노동자 임금보다 더 커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직종·직급과 무관하게 그룹장 등 일부 관리자를 제외하고 모든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선인 180만원 후반대에서 190만원대로 맞춰져 있다.

서재유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수십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 머물러 있는 현재 임금체계 내에서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이 생길지 의문”이라며 “코레일네트웍스는 직무급 폐해의 표본이며 근속급제(호봉제)를 도입해 일할수록 임금이 오르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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