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시절 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산업은행을 서울 여의도에서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부산을 세계적 해양도시, 무역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역 정계는 기대감을 표하며 “금융 허브”를 연호한다. 금융전문가·노동자들 생각은 정치권과 다르다. 네트워크가 무너지고 종국에는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산업은행이 소멸하고 경제는 활력을 잃을 거라고 경고한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윤성준 전 서울 영등포구청 국제금융특구팀장
윤성준 전 서울 영등포구청 국제금융특구팀장

금융산업은 금융기관의 집약도가 높을수록, 글로벌금융과 경제에 대한 정보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다. 높은 집약도는 해외 금융기관들이 국내에 진출할 수 있는 핵심적 인프라를 구성한다. 현재 디지털금융은 주로 상업은행(Commercial bank)·P2P 등 소매금융 부문에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금융산업은 집약도가 높아야 더욱더 발전하고, 더 많은 고용이라는 파생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정부기관과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시켰으나 그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지금까지 정확히 산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과 부산의 금융중심지 순위의 하락에서 나타나듯, 연기금이나 금융공기업의 지방이전은 금융산업 후퇴와 인재 유출로 인한 경쟁력 하락을 초래했다. 지방이전 정책을 금융산업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더 심도 있는 검증이 필요하다.

한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포트폴리오가 잘 이루어져 국가경제를 지탱해 주고 있지만, 실물경제에서 어렵게 번 돈을 금융위기 때마다 엄청난 손실(환헤지에 따른 leverage 손실을 포함)을 보고 있다. “금융은 경제의 동맥”이라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아쉽게도 정부가 더욱 건강하고 발달된 금융산업으로의 육성을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제주도의 감귤나무를 서울로 옮겨 심는다 해서 서울 감귤농업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산업이든 최적지에 집중돼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서울 강남의 의료특구는 이미 아시아를 대표하는 K-beauty 지역으로 잘 알려진 명소인데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역별로 할당해 성형외과를 분산·이전한다면 다 같이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다. 필자가 지방이전 전에 연기금과 금융공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에 비춰 보면 더욱 그렇다. 대표적 국제금융중심지 서울 여의도에서도 연기금과 금융공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이제 외국인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돼 버렸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지방으로 이전한다면 아마 벚꽃축제에서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경제 발전은 강을 중심지로 문명을 일으켰고, 포구·항구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금융산업은 정보산업의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 교류를 위한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며, 공항과 고속철 등의 인프라가 뒷받침되는 교통허브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다. 홍콩사태를 보며 많은 사람은 한국이 아시아금융 허브를 이룰 수 있는 기회라고 부르짖지만, 규제완화와 금융산업에 대한 관심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금융산업의 역사가 400년이 넘은 유럽을 비롯해 미국의 금융산업도 투자은행(IB) 분야만큼은 디지털에 의존하지 않는다. 해외 금융산업 육성의 좋은 사례를 들면, 영국은 1986년 대처 총리가 금융산업육성을 위해 최저 중개수수료를 폐지하는 등 금융시장에 대한 대수술에 나섰다. 이로써 당시 메릴린치·JP모건 등 세계 투자은행들이 모여들었으며 런던시가 주요 금융거래 부문에서 뉴욕·프랑크푸르트를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은행의 75% 정도가 외국계은행이었다. 메릴린치는 최저 중개수수료 폐지 이후 하루 만에 영국에서 1천500명을 신규고용했으며, JP모건은 1천명을 고용했다. 이러한 경험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산업은행을 지방으로 이전하기보다는 오히려 금융산업의 집적도를 높이고 규제를 철폐해 금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도 이제 성숙단계에 이르러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금융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2020년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2점을 약간 상회하는 66.8점을 기록했다. 2008년 8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 많은 금융회사가 파산하고 위기에 처했고, 2009년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단기부채비율 100%를 넘는 유일한 국가로서 제2의 외환위기를 초래할 뻔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에너지 가격을 보면 1.5년이면 고갈되는 수준인 외환보유고만을 믿어서는 안 된다. 금융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금융산업의 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더욱 늘어나야만, 균형 잡힌 성장을 할 수 있다. 금융산업은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일자리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관광·문화산업 등 마이스(MICE, 국제회의·관광·컨벤션·전시)산업까지 파생적인 효과를 지닌 완결된 산업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금융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오히려 성장과 발전의 기회가 남아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