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시절 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산업은행을 서울 여의도에서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부산을 세계적 해양도시, 무역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역 정계는 기대감을 표하며 “금융 허브”를 연호한다. 금융전문가·노동자들 생각은 정치권과 다르다. 네트워크가 무너지고 종국에는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산업은행이 소멸하고 경제는 활력을 잃을 거라고 경고한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김천순 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
김천순 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

한국산업은행을 둘러싼 지방이전 논의가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에서 시작된 지역균형발전론과 산업은행 지방이전론은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바뀌었으나 한결같다. 마치 메마른 땅에 한줄기 비를 원하듯, 산업은행 이전을 갈급하는 목소리는 뜨겁고 거칠다. 하지만 이전을 원하는 주체들은 산업은행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는지, 국가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지방이전으로 인해 국가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본점 인원이 몇 명이고, 이전했을 때 지역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기업금융 중심 은행

산업은행도 개인금융 업무를 일부 취급하지만, 벤처기업부터 계열대기업까지 기업대출, 투자, 보증, 외국환 업무와 투자은행(IB) 업무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금융주선, 구조화금융, 인수금융(M&A), 트레이딩(외환거래 등)을 영위하며 기업, 타 금융기관(은행·증권사·보험사·자산운용사·신탁사 등), 법무법인, 회계법인, 신용평가법인 등과 활발히 일한다. 또한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국민경제를 위기에서 구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산업은행은 우리나라의 대규모 공장·항만·고속도로·산업단지 등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정책자금을 집행하고,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간산업안정기금이나 자본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위한 매입기구 설치, 외환시장 안정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리스크가 큰 초기 기업에 투자한다거나, 녹색기후기금(GCF) 같은 환경 관련 국제기구의 자금을 중개하고, 타 은행들을 통해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온렌딩 금융(일종의 도매금융)을 통해 지역균형발전과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한다. 또한 통일시대를 대비한 북한연구와 통일이 됐을 때 가장 먼저 북한 개발을 지원할 기관이기도 하다. 시대가 원하는 바에 따라 그 역할이 변해 왔지만 산업은행은 안정적이고 유능한 정책금융기관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해외채권 발행은 자주 뉴스에 거론된다. 전 세계 금융기관 중 가장 우량한 신용등급(AA등급)으로 외국에서 저금리의 외화자금을 조달하고, 기업에 저리로 공급해 기업의 무역금융, 외국 진출 지원, 기계기구 도입, 각종 국외사업을 위한 자금 등으로 사용된다. 경제사정이 좋을 때는 시중은행에도 외화를 구할 수 있지만, 경제위기가 가까워지고 외화를 구하기 힘들어질 때 산업은행은 진가를 발휘한다.

차입경쟁력 약화 따른 정책금융 수행능력 저하 우려

산업은행은 특수한 정책금융 수행을 위해 상황에 따라 일부 정부 출자를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스스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각종 정책금융 업무를 수행한다. 2021년 수익으로 8천331억원이나 정부에 배당을 했을 정도로 국가경제에 기여했다. 산업은행은 자금을 개인과 기업의 예금으로 조달하기도 하지만, 산업금융채권이라는 채권을 발행해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에서 직접 조달한다. 산업은행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운영해 우량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저금리 자금조달과 원활한 자금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선순환을 이어 가야만 정책금융을 지속적이고 원활히 할 수 있다.

본점을 억지로 이전해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서 억지로 분리하는 것이 과연 정책금융 수행능력을 얼마나 떨어뜨릴지 생각해야 한다. 지방이전 이후 외국 투자자 방문이 어려워진 국민연금 사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의 접근성 악화로 인한 차입경쟁력 저하는 조달금리 상승으로 나타나고, 이는 대출금리의 상승으로 고객에게 전가되며, 조달규모의 축소는 자금공급의 제약으로 나타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다. 플랫폼을 통해 안면인식만으로도 자금이체가 가능한 상황에서 본점의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전산으로 자금이 이체되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거래의 사후 절차일 뿐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며 신규 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금융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정책금융 기관의 본점 이전으로 산업은행을 뒤흔들면 업무 마비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경제위기 발생가능성이 높아진다. 산업은행의 역할은 특정 지역을 살찌우는 것이 아니라 국토의 중심에서 원활한 정책금융 수행을 통해 국가 전체의 풍요와 행복을 견인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