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가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선에서 노동이 중심에 선 적은 없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노동 소외’가 두드러진다. 20대 대선은 노동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3회에 걸쳐 대선을 바라보는 노동자 목소리를 듣는다.<편집자>

진병우 공공노련 정책실장
진병우 공공노련 정책실장

대선 공간이 열렸다. 민심은 본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라, 유력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박빙이고 전통적 진보세력의 대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판세에서 노동계의 정치적 선택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택이 가져올 유불리를 따져 보고 치열한 내부 논의 절차를 거친다고 한들, 대선 결과에 따라 어떠한 이유로든 책임을 묻는 내부자는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한 두려움이 올바른 결정을 훼방한다. 여기서 올바른 결정이란 조직된 노동자들의 결사체가 자발적 참여와 동질의 관념을 추종하는 구성원의 이해를 오롯이 모색하는 결정이라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명분이냐 실리냐 혹은 교조와 수정의 대치냐 하는 오랜 논쟁이 등장한다. 비단 이번 대선뿐 아니라, 각종 선거에 대응하는 노동의 정치적 선택은 계급론적 시선에서 노동자계급의 광범위한 연대와 일치가 요원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대와 일치를 회복할 수 있는 실마리로서의 가능성도 분명하게 품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우리 연맹은 노동운동이 안고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숙제, 즉 노동 주류의 세대전환을 위한 청년의 참여문제를 진단해 보고자 젊고 열정에 찬 활동가들과 집담회를 가졌다. 기존 세대가 신봉해 온 숭고한 가치와 진리로 여겨졌던 테제들이 청년세대에게 왜 꼰대들의 낡은 외침으로 추락해 버린 건지, 무슨 이유로 노동조합이 기피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된 건지 알아야 했다. 앞서 언급한 ‘구성원의 이해’를 제대로 파악해야 운동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청년들은 지금의 노동운동이 내 삶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사회대개혁과 노동해방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했다. 청년이 노동을 떠난 것인지 아니면 기성 운동이 청년을 떠나온 것인지 한동안 아프게 성찰해야 했다.

다시 대선으로 돌아오자. 현실에 대한 불만과 내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효능감에 대한 기대는 비단 젊은 세대에 국한되지 않으며, 결국 정치적 선택으로 계량된다. 진보세력의 후보가 참담한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전통적 노동운동이 내세우는 각종 의제와 구호가 어려운 민생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비판적 의식의 발로다. 설령 후보의 명제는 바람직할지 모르나,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 비주류를 향한 근본적 패배의식의 결과다. 노동자·농민 혁명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도 맹목적 교의로는 개조차도 먹일 수 없다고 경계했다. 상대적으로 그간 노동을 박대하고 핍박해 온 세력이 갈등과 혐오, 복수와 심판만을 외쳐 대도 추종자는 늘어 간다. 단순히 계층과 세대, 지역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까닭을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기는 정치적 선택, 적어도 기성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정치세력화가 이번 대선에 임하는 노동의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문제를 다루고 피부에 와닿는 결과를 성취해야 한다. 2천만 노동자의 총의가 희미하고 정치적 노선이 모두 제각각인 척박한 환경에서 노동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결단에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거악의 도래를 눈앞에 두고 이데올로기적 차이로 사분오열한다면 모든 노동자와 공동체 전체 구성원 앞에 죄인이 될 뿐이다. 우리 연맹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쟁취투쟁을 통해 정치적 선택의 효능을 맛봤다. 의제를 생산하고 투쟁을 추동하는 주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되, 노동을 이해하고 실천의지가 있는 정치세력과 적극적으로 공조한 결과였다. 연맹은 이번 대선에서도 동일한 기조 아래 공공기관 지배구조와 운영체계의 근본적 혁신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주도, 안전한 일터조성, 자회사 노동자 실질 처우개선 같은 정책과제를 요구하고 협약했다. 대선 공간을 활용해 공공노동자의 내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 선택은 비단 공공노동자의 이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불합리한 차별 철폐, 취약계층 보호, 사회안전망 확충 같은 보편적 의제와도 연결돼 있다.

이번 대선은 이념에 따른 노동의 정치 선택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해 보는 기회가 돼야 한다. 정치에 대한 노동의 접근을 새롭게 정립하는 한편, 계급투쟁의 변화된 모습을 상상하고 정치 앞에서 훼손된 노동자 연대 복원을 위한 화두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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