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사진 가운데)와 손진우 상임활동가(사진 오른쪽). <정기훈 기자>
▲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사진 가운데)와 손진우 상임활동가(사진 오른쪽).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시대, 산업재해는 더 이상 사고가 아니다. 기업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중대한 범죄다. 이 범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노조는 무엇을 해야 할까.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위한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을 펴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류현철(49·사진 가운데) 소장과 손진우(45·사진 오른쪽) 상임활동가를 만나 물었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새로 이전한 사무실에서 24일 오전 만난 이들은 “어떤 노동을 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위험의 양상에 차이가 있을 뿐 위험은 어느 일터에나 존재한다”며 “재해조사와 위험성평가에 노조가 직접 참여해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 시행된다. 시행 전부터 법의 모호성을 둘러싼 논란이 크다.

류현철 :
중대재해처벌법은 가치 중심 입법으로 미비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법안을 정교하게 구성한다고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대재해는 왜 일어날까. 지금까지 재해조사는 기인물(재해발생 근원이 된 기계·장치 또는 환경) 중심으로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 그쳤다. 이를테면 건설공사 중에 노동자가 떨어져 사망했다면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건설공사의 어떤 구조가 영향을 미쳤는지는 보지 않고 추락 사실만 조사하는 식이다. 앞으로는 중대재해가 일어난 ‘구조’를 낱낱이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관행이 싹 바뀌어야 한다. 검찰의 기소 관행도 바뀌고 재판을 통해 적절한 양형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법만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를 드러내고 사회적 감시를 해야 한다. 재해조사 결과부터 공개해야 한다.

손진우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하려면 회사 밖에 있는 로펌 변호사를 만날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는 것이 먼저다. 사장님이 처벌받는냐, 아니냐는 문제로 접근한다면 누군가 죽은 자리에서 또 죽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재해 발생 ‘구조’ 밝히려면
재해조사보고서부터 공개해야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되면 노동조합 활동도 종전과는 확실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류현철 : 중대재해처벌법 논의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들이 어떻게 하면 처벌을 면할 것인가에만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의 허점들만 들여다보고 중요하게 다룬다. 이런 환경에서 재해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만무하다. 그래서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조의 참여권이라는 권리 확장뿐만 아니라 재해 원인을 밝혀내고 재발을 막는 실무적 역량을 실질적으로 갖추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 노조가 단시일 내 역량을 갖추기는 힘들 수 있다.

류현철 : 기존 재해조사 결과를 드러내는 것부터 해야 한다. 재해조사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부터 출발할 수 있다. 기존 재해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노동자 관점에서 재해조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노조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원칙이 없다. 대개 사안별로, 사회적 관심 여부에 따라 다른 양상과 심도로 조사되는 경우가 많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안전전문가들이 대거 로펌으로 갔다. 이에 대해 비판도 필요하지만 노동계 대응 역량을 키울 시스템은 어떤지 점검도 필요하다. 실력 있는 안전보건 활동가를 키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지금, 무엇보다 노조의 활동 방향에 결정권을 가진 대표자의 자각과 관심이 중요하다.

손진우 : 그동안 노동조합에서도 노동안전보건을 전문가 영역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안전과 건강은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고 모두의 조건을 규정짓는 기준이다.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의사결정권자의 선택에 이런 인식과 태도가 배어 있어야 한다. 제한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시간에서 노조활동을 어떻게 안배할 것인지, 누가 전임을 할 것인지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인식 변화를 체감할 정도로 바뀌고 있다. 김용균법이라고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노조도 분명 달라졌다.
 

▲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 <정기훈 기자>
▲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 <정기훈 기자>

“실력 있는 노동안전 활동가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조 대표자 인식과 태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고 점검하도록 했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 또 이 과정에서 노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류현철 :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안전보건관리체제’라는 별도의 장이 있다. 체제는 주로 인적·조직적 자원을 임명하고 배치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같은 노동자 참여 구조도 여기에 포함된다. 안전보건관리체계는 그런 것들이 실제 가동될 수 있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된다. 회사 규모나 상황에 맞게 최선의 안전보건 조치를 했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나오는 ‘위험성평가’와 같다. 사업장에 어떤 위험이 존재하는지 사업주도 알아야 하고 노동자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 위험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대응조치, 예방체계를 구축하는 것, 그러한 시스템이 안전보건관리체계다.

노동자 입장에서 위험성평가를 제대로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위험을 낱낱이 드러내고 기록해야 재해가 발생한 이후에 이러한 위험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재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손진우 : 어떤 사업장에서도 위험은 존재한다. 형태가 다를 뿐이지 노동 과정 어디에나 위험은 늘 있다.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어떤 위험에 노출되고,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지난해 철도 노사가 처음으로 위험성평가를 공동으로 했다. 서울지역에서 시범실시를 한 것이다. 그렇게 규모가 큰 공공기관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몇 명이 나올 정도로 노조도 강한 사업장에서 그동안 위험성평가를 한 번도 노사가 같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지 않나.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족이 원하면 대응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응하지 않는 노조도 있다. 하지만 유족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사망사고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 안전보건의 심각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동료가 죽은 자리에서 또 누군가 죽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 손진우 상임활동가. <정기훈 기자>
▲ 손진우 상임활동가. <정기훈 기자>

-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그나마 안전하다. 문제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다.

류현철 : 50명 미만 사업장은 3년 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관리자나 보건관리자 선임의무를 비롯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성하는 인력·조직·예산 규정들 적용이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나오는 고용노동부 지침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3년간 이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여러 측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만약 중대재해가 발생했는데도 노동자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고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노조를 찾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노조가 있는 조직이 더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기업도 노조활동을 백안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휘하는 재해예방 기능에서 노동자의 참여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위험에 처한 노동자일수록 안전의 최저선이 ‘노조 가입’이라는 인식이 퍼지도록 해야 한다. 산별노조 역할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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