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노사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재설정을 위한 요구안을 제출했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는 다음달 3일까지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한다. 2013년 이후 9년여 만에 바뀌게 되는 타임오프 한도.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을 들어 봤다.

ILO 기본협약·노조법 개정 취지 고려해야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

▲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
▲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

정부가 지난해 4월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약은 노조전임자 급여문제에 대해 법률과 정부 개입을 배제하고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국회는 ILO입장의 일부 반영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을 폐지하고 정부 산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를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이관하는 법 개정을 단행했다.

특히 노조법 부칙에 “법 시행 즉시 근로시간면제심의위가 조합원수, 조합원의 지역별 분포,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연합단체에서의 활동 등 운영실태를 고려해 근로시간 면제한도 심의에 착수할 것”을 명시했다. 유급 노조활동 시간의 상한을 규제하는 종전 틀을 유지하면서도 과도한 행정적 개입인 현행 근로시간 면제한도 고시를 개선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ILO 권고와 노조법 개정 취지를 고려할 때 타임오프 개선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현행 근로시간 면제한도는 노사 자율교섭의 여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현재 조합원 규모에 따라 10개 구간으로 타임오프 시간을 촘촘히 규제하는 것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다. 세분화된 현행 면제한도 구간을 통합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해야 한다. 조합원수 300명 미만 노조의 경우 파트타임 사용인원을 풀타임 사용인원(1인 연간 2천시간)의 3배수 이내로, 300인 이상의 경우 2배수 이내에서 나눠 쓰도록 한 제한도 폐지돼야 한다.

둘째, 조합원 1천명 이상 기업에만 조합원의 지역별 분산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하는 불합리성도 개선돼야 한다. 1천명 미만 노조의 경우도 조합원이 전국 분포해 있는 경우 노조활동의 어려움은 같다. 교대제 근무 등 사업장 특성에 따른 타임오프 한도 조정도 필요하다. 교대제 사업장의 경우 노조의 고충처리 활동, 조합원 교육이나 간담회, 조합원 투표, 교섭결과 설명회 등의 활동을 시간을 변경해 가며 여러 차례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대제 사업장에 비해 노조활동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셋째, 노조법 부칙 3조에서 명시한 대로 ‘연합단체에서의 활동’ 즉 최소한의 상급단체 파견 전임활동이 보장되도록 근로시간 면제한도를 조정해야 한다. 타임오프 제도시행 후 특히 상급단체 전임자수가 70% 가까이 축소됐다. 노사합의로 상급단체에서의 유급 전임활동이 가능하도록 타임오프 한도 조정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 개선과 합리적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상급단체의 역할강화가 필요하다.

넷째, 노조활동 및 노사관계 활동이 산업안전·중대재해 예방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재해율이 높은 중소 영세사업장에서의 안전보건·산재예방 대책이 더욱 시급히 요구된다. 이에 노사합의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위원 등 안전보건·산재예방 전담자를 두는 경우 타임오프 한도 적용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 특히 중소·하청기업의 노조활동이 산업안전·중대재해 예방에 기여하도록 하고, 타임오프 제도로 인해 이들의 노조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기 근로시간면제심의위는 개정 노조법의 취지가 이번 심의에 올바르게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ILO 기본협약 비준과 노조법 개정에도 근로시간면제심의위가 고용노동부에서 경사노위로 이관만 됐을 뿐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한국노총은 현 사회적 대화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개정 노조법 폐기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실태조사 반영한 ‘합리적 축소 조정’ 필요
황용연 한국경총 노사대책본부장

황용연 한국경총 노사대책본부장
▲ 황용연 한국경총 노사대책본부장

근로시간면제 제도는 노동조합 간부 등이 사용자의 동의하에 근무시간 중 일정 범주의 활동을 임금의 손실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유급으로 처리해 주는 제도다. 그러나 사용자가 노조업무 종사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필수적 노조활동에 대해서만 합당한 수준에서 근로시간을 면제해 주고 있다. 일본은 노조전임자에게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면 부당노동행위(지배개입·경비원조)로 간주하고 있고, 영국도 ‘단체협약 체결’ 같은 합당한 수준 내에서만 유급으로 인정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은 상급단체 노조전임자는 상급단체 자체적으로 채용해 노조 재정으로 급여를 충당하고, 개별 기업에서는 전혀 지원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유급처리 대상 업무를 교섭·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등 노조법 또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업무(노사공동의 이해관계에 속하는 활동)와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관리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전문가 3인과 노동계와 경영계 위원이 참여하는 실태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했고, 실태조사는 실태조사단에서 합의한 설문지를 통해 실시했다.

설문지는 현행 근로시간면제 제도 내에서 조사할 수 있는 노조활동을 최대한 적어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단체교섭 준비시간, 교섭을 위한 이동시간과 간부수련회, 교육, 집행부 이·취임식 등 노조 자체 활동을 기재토록 했다. 그리고 조합원 모집활동, 상급단체 활동시간까지 포함했다. 이뿐 아니라 한국노총의 제안으로 2013년 실태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던 근로기준법 같은 노동관계법상 노사합의 및 협의 관련 활동 등의 시간까지 설문 문항에 포함시켰다.

실태조사 결과, 평균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에 사용된 시간’은 단체협약으로 정해진 근로시간면제 시간 중 21.2%(사측 응답), 24%(노측 응답)에 불과했다. 조합원 1천∼4천999명 구간에서도 노동조합 활동시간은 현행 근로시간면제 한도의 절반 수준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합원 5천명 이상 구간의 노동조합 활동시간도 현행 5천명∼9천999명 기준의 한도인 2만2천시간의 절반에 불과했다.

경영계는 노조업무 종사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실태조사 결과 단체협약으로 정해진 근로시간면제 한도에서 실제 ‘노동조합 활동에 사용된 시간’을 고려했을 때 현행 한도의 ‘합리적 축소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현행 근로시간면제 한도 가운데 1천~4천999명 기존 2개 구간을 4개 구간으로 세분화하고, 조합원 5천명 이상 구간은 통합해 2만시간 이내로 한도를 축소해야 한다. 실태조사 결과 조합원 1천명 이상 사업장의 노동조합 활동시간은 현행 한도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교통이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상황에서 물리적 거리감은 노조활동에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지역분포 가중치를 폐지하는 안을 냈다. 초기업 단위 노조의 경우 단체교섭 등 노동조합의 주요 활동이 본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산하조직의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20% 축소하도록 했다. 또한 근로시간면제 제도 관리를 위해 근로시간면제 사용계획서 제출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현행 근로시간면제 제도는 2010년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시행에 대한 보완책으로 도입됐다. 금번 3기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제도 도입 이후 10여년이 지난 상황에서 현장 실태발표와 집단심층면접(FGI)을 통해 근로시간면제 제도가 도입 취지와 달리 방만하게 운영되는 다수 사례들을 확인했다. 따라서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해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합리적으로 축소 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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