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40만명으로 추산하는 보험설계사는 보험산업의 꽃으로 불린다. 그렇지만 실상은 착취에 가까운 수수료 계약과 해고에 속수무책인 특수고용직 신분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대면영업 위기, 이로 인해 더욱 가속화하는 보험산업 디지털 전환은 보험설계사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매일노동뉴스>가 부당해촉을 겪은 보험설계사 사례를 소개하고 보험산업의 미래를 살펴봤다.

글 싣는 순서
① 1년, 그가 투사가 되는 시간
② 영업으로 배불린 보험사, 보험설계사를 버렸다

임금액을 누락한 (근로)계약서가 현실에 존재할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일부 보험설계사 위촉계약서에는 수수료 조항이 누락돼 있다. 특수고용직인 보험설계사는 보험상품을 팔고 유지하고 이에 대한 수수료로 연봉을 받는다. “한 만큼 번다”는 특수고용직 특성상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하는데 일부 보험사의 위촉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를 공론화했다. 그는 같은달 5일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일부 보험사가 보험설계사와 맺는 위촉계약서 내용 중에 계약서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은 회사가 바꿀 수 있다는 조항을 악용하고 있다”며 “보험사와 보험설계사가 맺는 계약의 핵심은 보험판매 수수료인데 이 변화를 회사 마음대로 한다는 계약은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아예 계약서가 없는 보험설계사도 있다. 첫해 위촉계약은 갖고 있더라도 이후에 계약을 갱신하면서 위촉계약서를 별도로 작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매년 변동하는 수수료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사례도 있다. 오세중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장은 “금융감독원에 신고해도 그냥 검사업무 참고 예정이라고만 답변한다”고 말했다.

해촉했다며 줘야 할 수수료 안 주는 보험사

이 같은 ‘깜깜이’ 수수료는 보험설계사를 착취하는 좋은 도구다. 많은 보험사들이 보험설계사 해촉 뒤 그가 관리하던 보험의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최근 법인보험대리점(GA) 업계에 진출한 한화생명 자회사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해촉 FP(Financial Planner, 보험설계사 지칭)에 대한 수수료 지급은 해촉 당월 1회에 한해 해촉 전월 신계약 모집 및 유지 성과에 따른 수수료를 지급하며 기타 수수료는 지급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오세중 지부장은 “보험계약은 보험설계사의 위촉계약 유지 여부와 관계없이 유지된다”며 “회사가 해촉을 이유로 보험설계사에게 모든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회사는 보험계약 체결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가져가고 보험설계사는 받아야 할 수수료를 부당하게 약탈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지부는 보험사가 보험설계사에게 줘야 할 수수료를 부당하게 편취하면서 1년간 1조2천억원가량의 부당이익을 얻고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고객 해지환급금 후려치고 설계사에겐 환수

보험사가 설계사를 통해 얻는 이익은 또 있다. 보험사는 고객이 보험을 해약하면 해지환급금을 지급한다. 대신 보험설계사에게 이미 지급했던 수수료는 환수한다. 보험업법상 보험설계사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수수료 환수는 불법이지만 입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환급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해지환급금도 문제다. 보험사는 해지환급금을 지급할 때 사업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하고 지급한다. 사업료에 해당하는 부분은 사실 보험설계사에게 지급한 수수료 등이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해촉된 보험설계사) 보험계약은 관리자가 없어져 흔히 해약 또는 실효한다”며 “이때 보험설계사에게 지급된 수당분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고, 설계사는 모집수당을 환수당해 보험사만 이득을 얻는다”고 지적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보험설계사의 고객은 지인인 경우가 많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가 지난해 5월21~25일 GA 소속 설계사 2천6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천272명(48.2%)이 친인척과 친구를 상대로 보험을 팔았다고 밝혔다. 보험산업이 사실은 보험설계사의 등에 업혀 성장해 온 셈이다.

설계사 팔아 몸집 불리더니 이제는 ‘거리 두기’

역설적이게도 이런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던 보험사가 최근에는 되레 보험설계사를 밀어내고 있다. 특히 보험상품을 만들어 직접 판매까지 하던 보험사(원수사)는 보험판매조직을 떼어 별도의 자회사를 수립하는 방식, 이른바 ‘제판분리’를 속속 마쳤다. GA는 보험상품을 만들지 않는 대신 세 곳 이상의 보험사 상품을 비교 판매할 수 있는 판매채널이다. 보험연구원은 지난해 ‘보험회사 자회사형 GA 성과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GA채널은 영업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했다”며 “보험사를 상대로 한 GA의 협상력이 강화하면서 (보험사는) 매출변동 확대 같은 문제 해소를 위해 자회사형 GA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유통채널에 제조사가 종속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GA가 안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보험업계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비대면 판매를 강화해 보험설계사 지위를 흔들고 있다. AI는 현재 고객의 진료나 투약정보, 내원기록 같은 검진데이터를 분석하는 보험인수 분야와 손해사정 등에 도입이 이뤄지는 단계다. 하지만 곳에 따라 이미 AI를 활용한 판매채널을 강화한 곳들도 있다. 자회사를 만들어 보험설계사의 소속을 변경한 한화생명은 최근 AI를 보험심사 등에 도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비대면·디지털 보험모집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이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내년 1월부터 시작하는 마이데이터사업은 AI를 활용한 보험상품 판매에도 날개를 달아 줄 전망이다.

AI가 확산하면 보험설계사는 고용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보험연구원은 올해 9월9일 발간한 ‘인공지능(AI)의 발전에 따른 보험업 법제 정비 방향과 과제’ 보고서에서 “고객과 보험사가 직접 접촉할 수 있게 해 보험 가입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제거하기 위한 현재 중개채널 우회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보험설계사나 GA의 지속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보험설계사를 사라질 직업으로 전망한 셈이다.

보험은 안 팔고 대출에 열 올리는 보험사들

보험사가 보험 외 수익구조를 강화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보험산업 경쟁이 치열하고 더 이상 신규판매를 통한 수익 증대가 어렵게 되면서 보험영업 손실이 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의 보험영업 적자규모는 26조7천676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은 오히려 자산운용에서 나온다. 지난해 보험사의 투자영업이익은 30조9천613억원이다. 또 다른 분야는 대출이다. 보험사의 대출총액은 지난해 기준 252조8천억원이다. 가계대출이 123조2천억원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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